공무원을 결심한 계기(中): 임포스터가 된 융합형 인재

공시생 잔혹사 - 7

by pajaroazul

'XX아, 죽으면 안 돼.'

고등학교 수업 시간 중 죽지 말라는 여러 통의 문자 메시지를 받은 적이 있다. 구석에서 포털 메인을 보고 계시던 선생님이 나지막이 헉 소리를 내시며 말씀하셨다. "스티브 잡스가 죽었다네?" 문자들은 소식을 접한 친구들이 노파심에 보낸 것이었다. 우상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4층 교실에서 뛰어내리기라도 할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뛰어내리지 않았다. 하교 길에 평소라면 쳐다보지도 않을 사과를 사서 우적우적 씹어먹는 것으로 마음을 다독였을 뿐이다.


그를 알게 된 건 우연한 계기였다. 어학연수 중이던 2007년, 친구도 영어도 마뜩잖았던 유학생의 유일한 낙은 하교 후에 보는 <심슨가족>이었다. 중간광고 때문에 맥이 끊기면, 인터넷으로 관련 트리비아를 검색하곤 했다. 그중 하나가 "호머 심슨의 어머니 모나 심슨은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의 여동생 이름에서 유래했다."였다. 하하, 무슨 회사 이름이 과일이야. 호기심이 동했다. 대학 중퇴자에, 차고에서 시작한 회사라. 엉성하지만 낭만적이네. 애플의 규모와 그의 사회적 지위를 알게 된 후에도 소감은 여전했다. 세상이 아이폰이 얼마나 혁신적인지, 회사 주가총액이 얼마나 되는지 떠들어도, 나는 그와 함께 일한 이들의 (욕설에 가까운) 증언과 그의 강박장애, 자란 동네나 뒤지고 다녔다. 위인이라기보다 성격파탄과 태생적인 콤플렉스에도 성공한, 매우 흥미로운 연구대상이던 셈이다.


성향이나 성격이 무엇이라 정확히 정의 내릴 순 없지만, 본인의 성격이 한국 사회에 부적합하다는 사실은 진즉에 자각하고 있었다. 무던하지 못하다, 예민하다, 조용하다가도 불합리한 일에는 윗사람일지라도 직언을 퍼붓는다, 시키는 것보다 제 방법이 낫다면 그쪽을 선택한다, 등등... 정의감이 넘치는 건 아니고, 논리나 감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을 가만 놔두지 못한다. 눈치가 빨라 크게 미움받지는 않지만, 조직 입장에서 걸리적거리는 유형이다. 1년 남짓한 어학연수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부터 이런 성향이 본격적으로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자유롭게 발언하도록 유도하고 격려하는 뉴질랜드 공교육이 본성을 깨워버 것이다. 평생토록 갈아내고, 고치고, 다듬기나 하라던 내 성격이 사실 큰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아버다. 유아기 때부터 "성격 죽이라."라고 타박한 부모와 싸울 용기가 난 것도 이즈음이었다. 성격 결함의 원인이야 천차만별이고, 고아로 입양되어 백인 남성으로 살아간 잡스와 멀쩡한 중산층 가정에서 동양인 여성으로 살아가는 내가 같다고 말할 심산은 추호도 없다. 예나 지금이나, 어째서 잡스에게 그토록 정서적인 공감을 느꼈는지는 불분명하다. 용자 수준을 넘어선 뻔뻔함과 찌질하기 짝이 없는 후회. 꼭 몸으로 부대껴야 배우고 반성하는 그놈의 성질머리. 위대한 걸 만들고도 스스로 망쳐버리는 자기 파괴성. 양가적인 모습으로 점철된 삶. 잡스는 그런 사람이어도 멋진 삶을 살 수 있다는 걸, 쭈구리처럼 구석에서 '역시 내 근간이 글러먹었어.'라고 중얼거리지 않아도 된다는 걸 보여주는 일종의 반례였다.


2011년 잡스가 사망하기 전후로 한국의 기업인·정치인·일부 교육자들은 한국에도 잡스 같은 인재를 배출해야 한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당시 대학 전형 중에는 '다빈치형'이니 '융합형'이니 하는 수식어구들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문이과를 나누지 말자는 둥, 공대에게도 인문학과 예술을 가르쳐야 된다는 둥. 의도야 좋았겠지만, 잡스 같은 인재가 만들어진다는 논리는 당시 고등학생인 내가 봐도 이상했다. 부모님이랑 싸우다 열 받아서 마음에도 없는 대학으로 진학하고, 얼마 안 가 때려치우고, 콜라병이나 주워다 모으면서 반 노숙 생활을 하지 않나, 자기 입맛에 맞는 캘리그래피·인문학 수업을 도둑 청강하는 그런 삶을 괜찮다고 할 어른이 한국에 있다고? 진짜?


너무 냉소적인 거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딴에는 이유가 있다. 내 대학시절이 '잡스처럼 살아보려는 나와 그것을 말리거나 미쳤다고 흉보는 주변 간의 기싸움'으로 요약되기 때문이다. 첫 대학에서, 취업을 위해 진학한 상경계가 맞지 않자 평소 관심 있었던 디자인·영어 수업만 골라 들었다. C를 준 전공 교수가 글러먹었다며 툴툴댔지만, 청강이나 타 전공 수업에선 A+를 쓸어 담는 에이스였다. 미술이 하고 싶어 자퇴했으나 새로 간 대학에서는 엉뚱하게도 정치외교학을 전공했다. 물론 딴생각하는 건 여전해서, 학점 교류까지 해가며 VFX, 인터렉션 디자인을 수강했고, 코딩 광풍이 불어닥치자 컴퓨터에도 손을 댔다. '문송하다'는 통곡소리가 남의 이야기가 아닐 고학년 무렵, 대학 내에는 사회과학부·인문계열 주제에 코딩이라도 안 하면 안 된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당시 나는 자퇴와 재수로 늦어진 졸업, 일관되지 않은 공부 패턴 지적에 진절머리가 나있었다. 이에 더해 각종 대기업 인턴 최종 면접에서 줄줄이 떨어진 상황이었다. KT 면접관은 '서류 보고 흥미로워서 어떤 학생인지 궁금해서 불렀다. 그런데 회사는 제너럴리스트나 창의력 넘치는 사람을 반기지 않는다.'는 솔직한 충고까지 곁들였다. 초조했던 23살은 남의 시선을 의식해 상경계로 진학했던 19살의 실수를 그대로 답습했다. IT기업에 들어가 보겠다며 복수전공을 신청했고, 파이썬·자바·데이터베이스·C언어를 동시 진행하는 기행을 저질렀다.


당시도 마찬가지지만 최근까지도 몇몇 지인들은 '넌 잡스처럼 산 게 아니라 팔랑귀라서 이것저것 들쑤시고 다닌 인생'이라며 비아냥댄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잡스처럼 살기의 본질은 이러한 삽질이다. 무엇이 더 이득인지 머릿속으로만 계산하고, 테스트지 몇 장으로 적성을 결정하는 거 말고. 성격 검사 백날 해봐야 '기업은 부적합이고 공무원은 상극이니 예술이나 하시오.'라 나올 텐데. 재능도 훈련도 부족한 나지만 꿈만 좇다 굶어 죽을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이런 사람일지라도 세상에서 할 수 있는 분야 두어 개 즈음은 있어야지. 몸으로 부딪히고, 같은 실수도 반복해보고, 잔재주 하나씩 건질 만큼 여러 분야에 몰입도 해보고. 어른들이 그렇게 염불외듯 강조하는 청춘이라며?


그래서 남은 게 무어냐고 묻는다면, 관심과 허영을 구분하는 법, 흥미를 지속시키는 법, 능력 안과 밖의 일을 인정하는 법. 어린 시절의 나는 이런 것들이야말로 대학에서 배워야 하는 일이라 믿었다. 선생이고 교수고 미디어고, 스탠퍼드 연설까지 보여주며 'Stay foolish, stay hungry.'라길래 어른들도 이런 모험과 실수를 괜찮다고 생각하는 줄 알았다.


순진하기 짝이 없었다.


한국 사회가 말하는 '잡스처럼 살기' 혹은 그 같은 인재를 원한다는 말의 의미는, 시스템을 고친다거나 안전망을 만들어서라도 도전하는 젊은이들을 돕겠다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우린 아무것도 안 할 거지만 어디선가 스티브 잡스·마크 저커버그·일론 머스크가 튀어나와 주기를 바란다는 일종의 희망사항이었지.


우습게도 핀잔 먹던 잔재주들은 나이를 먹으며 빛을 발하고 있다. 얕게나마 배운 코딩 덕에 컴퓨터에 대한 이해가 빠르다. 밖에선 몰라도 컴맹뿐인 주변에서 난 컴퓨터 석사 즈음은 된다. 영상 편집 기술도 요긴하게 써먹는다. 영문학 수업으로 늘린 독해력 덕분에 원서도 훨씬 수월하게 읽는다. 베트남어, 일본어, 중국어를 모두 두드리며 지지고 볶은 끝에 나와 맞는 언어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통계학과 돈까지 들여 배운 데이터 마이닝 덕분에 학사임에도 논문 데이터 분석도 눈치껏 할 수 있고. 배워서 남 주냐는데, 내 덕 본 사람 많잖아. 혀를 차던 그들은 이제야 '네가 그때 그걸 한 게 꽤 도움이 된다.'며 멋쩍게 웃다.


가끔씩 생각한다. '제너럴리스트는 환영받지 못한다'라고 말한 부장님의 회사가 처음으로 한국에 아이폰을 들여왔다는 아이러니한 사실. 이 땅의 얼마나 많은 준(準) 잡스들, 소위 '짭스'들이 전문성 없다, 방황한다, 무모하다는 손가락질에 지쳐 정반대 방향의 공무원이 되기로 급발진했을지. 어느 날 공직사회서 각성한 짭스들이 튀어나와도 상사들은 당황하지 마시길 바란다. 걔 원래 그런 애였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