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의 무게

공시생 잔혹사 - 10

by pajaroazul
평균
명사
1. 여러 사물의 질이나 양 따위를 통일적으로 고르게 한 것.

2. 수학 여러 수나 같은 종류의 양의 중간값을 갖는 수. 산술 평균, 기하 평균, 조화 평균 따위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산술 평균을 이른다.


SNL KOREA의 인턴기자가 인기였다. 유튜브에서 뜨길래 봤는데, 왜 재밌어하는지 알겠더라. 실제로 학부 시절에 성실한 학생들이 저런 식으로 발표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격양되었으면서도 절제된 어조, 준비해온 것을 모두 쏟아내려는 열의로 흐르는 식은땀, 모르는 부분을 지적당할까 잔뜩 움츠려있는, 긴장한 미어캣 같은 자세. 경험이 쌓일수록 묘하게 느슨해지는 모습이나 자신만만해하는 태도까지.


그렇게 알고리즘을 따라 영상 몇 개를 시청하는데 삼성 드림클래스 광고가 떴다. 2021년, 집에서 막대사탕을 물고 나오는 여학생. 그녀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는 2036년 미래의 성공한 자기 자신이란 콘셉트로 찍은 광고였다. 모르겠다, 내가 벌써 밀레니얼 꼰대라 그런가. 거기 나오는 여학생들 하나같이 신형 Z플립 들고 다닐 거 같았다. (브랜드가 브랜드인 만큼 아이폰은 뺐다.) 30대 전후로 보이는 미래의 그네들은 하나같이 잘 나가고, 힙스터에, 아마도 저체중이었다. 돈도 많아 보였다. 열심히 머리를 굴렸을 카피라이터 내지 마케팅 팀이 그려졌다. 누구를 타깃으로 했는지 알 것 같은데, 묘하게 찝찝했다.


처음엔 기분이 왜 가라앉았는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며칠 전, 언어논리 시간에 평균 개념을 복습하다 불현듯 두 영상이 떠올랐다.


아닌 척하긴 했지만 노력하는 학생이었기에, 인턴기자가 왜 웃기는지 이해가 된다. 그런데 정작 나는 한 번도 저런 식으로 발표한 적이 없다. 왜냐하면 많은 학생들이 저런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제에 책 좀 읽었다고 클리셰가 그리 싫다. 새내기라고 해서, 뭘 모르는 학부생이라고 해서 꼭 저렇게 발표해야 하나? 저래야 좀 젊은이 같나? 성실함은 저런 식으로밖에 입증할 수 없는 건가? 여유 있거나 솔직하게 할 수는 없나, 어차피 1학년이 뭘 모르는 건 당연한 건데? 뒤에 가서 교수님 성함을 동네 친구처럼 함부로 뱉는 아이들도 발표 때만큼은 산신령이라도 만난 듯 굽실대는데, 저 정도로 먼저 굽혀야 하는 이유는 또 뭔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고학년이 되어서는, 면접에 무조건 올림머리를 하고 정장은 스커트로 입어야 한다며 고집 피우는 동기들을 보며 데자뷔를 느꼈다.


하긴, 인간으로서나 학생으로서나 나는 순 배짱이었다. 한 게 있든 없든 아는 만큼 내보였다. 가끔씩 준비해온 게 있는 날은 잘난 척도 했다. 완전히 망한 적도 있고, 교수님한테 된통 털린 적도 있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거나, 부족한 점까지 시정하지 않은 건 아니다. 인성 나쁜 어른하고까지 굳이 실랑이할 만큼 눈치가 없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진정 나에게서 비롯되지 않은 연유로 인해, 가령 거짓이나 강요로 인해 굽히지 않았을 뿐이다. 막 나갔다고 평해도 할 말은 없다. 확실한 건, 그런 날 보고 역정을 내시는 교수님보다 (아예 없진 않았다.) 웃음을 터뜨리시거나, 따로 불러 더 가르침을 주시거나, 밥을 사주시는 분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사실이다. A교수님의 새로 커피머신을 들였다는 자랑을 들으러, 시카고 학회에 갔다가 트럼프 초콜릿을 사 오신 B교수님을 놀리러 오피스를 두드린 걸 보면 뭐, 운이 억세게 좋은 것도 있다. 외람되지만, 내 대학 친구의 절반이 강사, 교수, 졸업한 지 한참 된 선배들이었으니 말이다.


인턴기자 방식이 현실서 좋네, 나쁘네를 평하려는 게 아니다. 클리셰가 클리셰가 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고작 아이들 몇 번 가르쳤을 뿐인 나조차 저런 학생들이 예쁘다. 어리숙해도 열심인 학생, 거짓말 못하는 학생, 빳빳한 풀냄새가 가시지 않은 하얀 스케치북 같은 학생. 안다. 내가 워낙 꼬인 사람이라, 혹은 지독한 취향 탓에 반대급부로 간다. 피해의식도 조금은 있다. 하나의 틀, 하나의 상이 존재하고 거기에 '얼추' 들어맞아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던 사람이라서. 걸 정립한 이들이 의도했든 안 했든, 선택의 폭이란 내게 아주 좁게만 다가왔다. 꼬질꼬질하고 낡은 노트 같았던, 내면이 복잡하다는 소리나 듣던 학창 시절의 나는, 막연히 이상하다, 오만하다, 꼭 그렇게 해야겠느냐는 피드백 같지도 않은 피드백을 받곤 했다. 고등학교 교장, 취업 면접관들은 목적어는 생략한 채 내게 그렇게들 뭔가를 죽이라고 했다. 피차 서로 말하지 않은 단어가 무엇인지 알면서 고상한 척 말해주지 않는 그들에게 악이 받쳤다. '너희들이 원하는 대로는 안될 거다, 그지 깽깽이들아!'란 심보였다. 유약한 내가 제 길이 아니라고 생각한 공부를 지금까지 해온 거 보면 어지간히 분하긴 했나 보다.


드림클래스 광고 이야기로 돌아가서.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이 뭔지 아는가? 15년 정도 간격을 두고 저 준의 사회적 성공을 거두려면-물론 이제 막 30대에 들어선 여성들이 입고 있는 고급진 옷들 누가 준 것일지도 모르고, 단지 빼입은 채 열정을 쫒는 (백수) 청년일지도 모르지만-연립 아파트로 안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었다. 저 집은 부모님 소유인가? 전세인가? 다주택 소유자인가? 학군은 어디? 공부는 어느 정도 하지? 공부에 비교우위가 없다면 다른 예체능 실력은? 버스 타고 학원 가는 건가? 아니면 댄스학원? 연예계라면 중학교 때 벌써 회사 소속 연습생이어야 하는 거 아닌가? 유튜브로 대박을 치거나 인플루언서가 된다는 내가 모르는 전제가 숨어있는 건가? 대학에 갔다면 취업이 잘되는 과를 갔겠지? 플랫폼 관련 세법이 2036년에도 아직도 그대로려나? 아니 다른 것보다, 넘쳐나는 부를 SNS에 의도치 않게 광고하시는 따님의 회사가 이런 바른 생각과 시각으로 대한민국 청소년들을 바라보고 계신다는 말이지? 보상금 주는데 11년씩이나 걸렸던 과거는 이제 정말 청산인가 봐!


순식간에 이런 생각이 지나가는 나는 과연 배배 꼬인 성격과 사회과학도라는 조합이 만들어낸 괴물인가.


농담이나 사회비판을 하려던 건 아니다. 광고 속 시시콜콜한 설정에 대한 불만이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아이들을 향해 차디찬 잔소리를 늘어놓고자 컴퓨터를 킨 것도 아니고. 스스로 학생이었던 과거에도, 20대가 얼마 남지 않은 청년인 지금도, 앞으로 노동인구로서의 정점 시기가 다가오는 근래에도 이런 상(像)에 조금도 공감할 수 없는 이유가 내가 꼰대/도태자/아웃사이더여서인지가 궁금했다. 어디 가서 이야기했다가는 자의식 과잉 내지는 잘난 척이란 소리를 들을까, 다들 멍청해서 너처럼 못 사는 줄 아느냐는 손가락질을 받을까 두려워 속으로만 삼키는 질문들. 다들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무릇 한국에서 나고 자란 이에게 '다르다'는 자각에 가장 먼저 따라오는 게 우월감이 아닌 열등감과 불안이라는 사실을 알아주지 않아서 서러운 걸까. 그 정도의 개성이 그리 큰 다름인지. 자기 뜻대로 살아가는 것 같아 멋있고 부럽다고 말하는 그들은, 무엇이 그렇게 무서운 건지. 평균이 편하다는, 아니 적어도 겉으로라도 편해 보이는 친구, 동기, 가족들의 그림자 꽁무니를 겨우 따라가는 게 한평생토록 얼마나 버거운지, 끝끝내 이해받고 싶은 걸까.


평균이 너무 어렵다. 다들 그렇게 느끼지만 꾹 참고 살아간다는 것조차 내겐 '평균적인 능력'이고, 그조차 없어서 곤란한 인생이다. 완전한 공감이 아닐지언정 논리와 경험으로 인턴기자 영상에 실소를 지었듯, 내 모난 부분도 조금은 인정받을 수 없으려나. 그게 정말 모난 부분인지는 차치하고서라도.


평균
명사
이해의 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