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모가 달라질까요(下)

공시생 잔혹사 - 13

by pajaroazul

작년 겨울, 친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시어머니와 애증관계인 어머니, 부모님을 향한 서운함이 컸던 아버지에 대해 글을 쓴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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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하지 못한 일은 아니었다. 몇 달 전부터 병원은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었다. 운 좋게도 27살이 되는 동안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겪은 적이 없어, '죽음' 이란 그 자체로 생소하고 이질적 것이었다. 대체 그게 무엇인지, 어떤 태도로 맞아야 하는지 아는 바 없이, 덜컥 상제가 되어버렸다.


할머니의 부고 소식을 가장 먼저 접한 건 나였다. 물론 전화는 아버지가 받으셨다. 전화는 아버지가 받았는데 부고를 먼저 접했다는 게 무슨 소리냐고? 평일 점심시간, 아버지의 휴대폰이 뜬금없이 울려댔다. 불길했다. 보험사 광고나 은행업무 때문이라면, 점심시간에 전화가 올 리 없다. 게다가 벨이 너무 오랫동안 울린다. 마침 아버지는 화장실에 계셔서 듣지 못하셨다. 평소 같았더라면 내가 대신 받거나, 수신자를 확인하고 아버지께 휴대폰을 가져다 드렸겠지만 그날은 그러기 싫었다. 그래서 사서함으로 넘어가게 놔두었다. 10분 후, 전화를 확인하신 아버지가 부고 소식을 듣게 되셨다. 막내인 아버지는 그제야 손위 형제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소식을 전하셨다.


오늘날까지도, 전화가 왔단 걸 알고 있었단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방에서 다른 일을 하느라 바빠 눈치채지 못했던 것처럼 꾸몄다. 그러나 나는 당시 내가 바닥에서 문서 정리를 하고 있었으며, 전화가 처음 울리던 정확한 시간, 벨이 울린 횟수, 사서함으로 넘어가기까지 바닥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채 망부석처럼 굳어있었단 것을 기억한다. 아버지가 방문을 열고 '할머니가 돌아가셨대.'라 하시고 나서야, 짐짓 놀란 척 '그래요?'라 대답했단 것도. 놀란 척, 차분한 척,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지,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알고 있는 척.


사촌 어른들은 장례식 첫날, 저녁 10시가 되자 집에 돌아가버렸다. 아무렇지도 않게 가버리는 형제들을 보며 아버지는 낙담하셨다. 혼자라도 있어야겠다며 불 꺼진 빈소에 머무셨다. 감기에 걸려 끙끙대는 나머지 가족들과 집에 돌아온 나는 그런 아버지가 마음에 걸렸다. 한편으로는 큰 아버지와 고모들에게 화가 났다. 아무리 부모가 미웠어도,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준 어머니를, 가시는 길에 차디찬 빈소에 내팽개쳐두는 건 도리가 아니었다. 찌질한 막내에 비하면 번듯한 대학에 대기업 중역까지 하고, 유명하단 집안에 시집·장가들어 잘 먹고 잘 살았으면서, 자기 엄마를 위해 고작 이틀 밤도 못 새우겠다니. 손위 어른들만 아니었다면 머리를 콱 쥐어박고 싶을 정도로 부아가 치밀었다. 렁거리는 분노에 '자기 자식한테 똑같이 당하라지'라고 중얼댔으니 잠이 왔을 리 없다. 결국, 버스도 돌아다니지 않는 새벽 4시, 배게와 잠 깨는 사탕 따위를 배낭에 대충 쑤셔 넣고 택시를 잡았다. 요지는, 진심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손위 형제에게 느꼈을 서운함과 분노, 슬픔을. 특히 집안의 어른이라는 첫째에게 느꼈을 실망감을 말이다.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 내게 아버지는 옛날이야기를 해주셨다. 할머니가 젊었을 적 어땠는지, 아빠가 꼬맹이었을 때 뭘 하고 살았었는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손주들 중 유독 날 예뻐하셨다는 말도 빼놓지 않으셨다. 난 손위 사촌형제들도 많고, 아들도 아닌데 왜 그러셨던 것 같냐고 여쭈었다.


"아마도 두 분을 그대로 빼다 박았기 때문이 아닐까."


두 분은 나의 히스테릭한 감정선이나 변덕스러운 행동도 별스럽지 않게 이해하셨다고 한다. 되려 자신이 어렸을 때 똑같았다며 웃음을 터뜨리셨다고. 울적했다. 두 분이 날 돌보아주신 건 아주 어렸을 때라, 기억이 흐릿하다. 4살이 채 되지 않았을 때 할아버지는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할머니와 떨어져 살게 된 10대부터는, 조부모의 사랑과 편애가 죄책감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것만 같았다. 어린 시절 상대적으로 방치됐었던 형제들은 나를 질투했고, 지난 20년 동안 잊을만하면 서운한 감정을 가감 없이 표현했. 곤란하기 짝이 없는 입장이었다. 조부모님이 내 돌잔치만 호텔에서 열어주신 게 내 탓인가? 조부모에게 서운 했던 것만큼이나 나 또한 어머니에게서 큰 서운함을 느낀 건 왜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 엄마, 아빠 또한 당신 가정 내에서 비슷한 입지였던 터라, 둘째와 셋째에게 공감하시기에 바빴다. 부모가 내 편을 들어준 기억은 없는데, 내가 동생에게 화를 내며 다가갈 때마다 두 분이 (물리적으로) 막아선 적은 흔하니. '넌 사랑받았으니, 특별대우받았으니 욕심부리지 마. 동생들에게 마땅히 더 잘해야 해. 첫째의 의무를 다해야 해, 친척들처럼 굴어선 안돼. 운이 좋은 줄 알아.'


심지어 난 한동안 두 분을 미워하기까지 했었다. 할아버지·할머니의 편애 때문에 동생들이 날 더 미워하게 되었고, 부모는 첫째를 대함에 있어 정서적인 요구에 귀 기울이기보다 책임만 강조하게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억조차 나지 않는 아기 때의 일로 평생 감정적인 짐을 지고 살아가야 한다니 불공평하잖아! 그런데 내가 당신들의 성격을 빼닮아서 예뻐하셨다니. 그때 문득 깨달았다. 물론 내 부모는 끔찍이 날 사랑하겠지만, 정말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스럽다고 여겼을 사람들은 조부모님밖에 없었으리란 걸. 정확히는, 인간적으로 날 좋아한 사람들은 그들뿐이었으리란 걸. 그렇다는 건, 결함 투성이에 지랄 맞은 날 있는 그대로 좋아해 주는 사람이 세상에 더는 없다는 것이고. 상실이 뭔지 모르겠지만, 이런 식으로 진행되기도 하나?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뭘 놓치고 있는지 자각조차 하지 못하다가 어느 날, 이렇게 황망하게 알게 되는 건가? 기억을 하든 못하든 간에, 조건 없는 사랑을 해준 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동시에 그런 애정을 이젠 영영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마치 오래된 사진을 처음 발견하듯, 찾아내게 되는 식으로?


('인사처보다는 정신과에 먼저 가는 편이 좋겠어'편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