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서 세상은 손을 내밀지 않는다. (下)
공시생 잔혹사 - 16
by pajaroazul Mar 9. 2022
Trigger Warning.
이 게시글에는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울증, 자살 등)
한국 방송에서는 흔히들 'OECD 자살률 1위'라는 제목을 걸어두고는, 전문가를 불러다 자살을 막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떠들고는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몇 번씩이나 그 문 앞을 서성거려보니 소위 '소중한·중요한 사람'이란 작자들이 어쩌면 제삼자보다 내 상태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문턱을 어슬렁거린다는 걸 알려도, "인생이 원래 그런 거야.", "별 수 없잖아."라고 툴툴댈 뿐,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그때 깨달았다. 사람들이 자살을 막을 수 없는 게 아니라, 막지 않는 거란 걸.
지나친 소감이려나? 아니라고 반박하고 싶으려나?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우울에서 허덕이다 보면 자신을 포함한 인간 전반의 별의별 꼴을 다 보게 된다. 친구나 가족을 잡고 하소연해봤자 소용없다. 그들은 우울증 환자만큼이나 여유가 없으며, 어쩌면 더 자신의 감정과 정신건강에 대해 무디다. 괜히 솔직하게 말했다가 피해야 할 사람으로 찍혀 절교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차라리 벽에 대고 소리 지르는 쪽이 낫다. 자, 이제 어쩔까?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워볼까? 다시 폭식해볼까? 무정신으로 돌아다니다 도로에 뛰어들어볼까? 아니면 지난번 쓰다만 유서를 마무리하고, 옥상에 올라가는 연습을 해볼까? 레지던스 대여 비용은 얼마일까? 병원에서 받은 2년 치 약을 한꺼번에 복용하면 되지 않을까? 별의별 단어들을 검색해보다 현타가 온다. 죽는 게 너무나 쉽다는 것과, 죽고 싶은 사람이 넘쳐난다는 사실에. 이것들은 심각한 우울증 환자가 아니더라도, 한 번쯤 죽고 싶었던 적이 있는 인간이라면 공감하는, 참으로 일상적인 경험들이다.
그렇게 목록에 적힌 일들을 하나씩 해나가다 보면(심지어 수없이 반복하다 보면), 궁극적인 죽음 빼고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기도 하다. 친구들은 들어주려 최선을 다하지만, 본인이 겪어보지 않은 이상, 아니 설령 우울증을 겪었다 할지라도 개개인의 경험은 천차만별이라서, 이해하지 못한다. 더군다나 단순히 '슬픔', '우울함'의 감정을 넘어 구체적인 증상, 행동 장애가 발생한 경우 공감할 수 있는 폭은 더더욱 줄어든다. 고통의 뿌리가 깊을수록, 사적일수록 설명은 더 까다로워진다. 마음의 병 또한 암과 마찬가지로, 잠복기간이 길고 발견이 늦을수록 예후가 좋지 않다.
결국 자살예방 상담전화를 걸었다. 24시간 국가에서 운영하는 핫라인. 오래전부터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걸어본 적은 없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으로부터 판에 박힌 위로를 들을 바에야 다른 걸 시도하겠다는 심보였다. 하지만 그날은 별 수 없었다. 가장 별로라고 생각한 방법이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다. 그런 게 있기나 하다면. 통화는 특별하지 않았다. 여러 번 상담을 하다 보면 이 판에도 법칙이 있음을 눈치채게 된다. 과거 노력의 일환이랍시고 많은 논문, 자료를 찾아 읽은 데다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상담은 다 한 번씩 해보려 들었으니... 수화기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멘트들은 익숙했다. 힘든 게 정상이에요, 오늘 햇볕은 쬐었나요, 취미 활동을 해봐요, 명상은 어때요, 진료는 받아봤나요, 밥은 먹었나요. 정석적인 멘트긴 했지만 그녀는 진심을 다했다. (적어도 내겐 그렇게 들렸으니 되었다) 나는 쉬지 않고 자신을 향한 비난을 쏟아냈다. 그녀는 짐짓 비장한 투로 원하는 게 무엇이냐 물었고, 나는 '내가 제발 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라고 답했다.
그 말이 새로운 것도, 새삼 상처가 된 것도 아니었다. 다만 놀랐을 뿐이다. 우느라 웅얼웅얼 대던 내가 아주 명쾌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내뱉은 유일한 문장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한 말인데 내가 한 말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 말에 깃든 조소와 냉기에 소름이 끼쳤다. 전화를 끊자마자 병원을 찾기 시작했다. 일이 아예 내 손에서 벗어났다는 직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맞는 의사를 찾기가 얼마나 힘든지, 검사비에, 예약에, 약 부작용까지 생각하면 가기도 전에 지쳐버리지만, 그러지 않으면 죽는다. 확신이 들었다. 드디어 쫄보인 나 같은 인간도 죽을 용기가 생겼다. X발.
뜬금없지만, 대한민국 정신과에 사람들이 얼마나 미어터지는지 아시는가. 대학 병원 아닌 동네병원도 예약 잡기가 힘들고, 잡아도 가서 몇십 분씩 기다리는 게 예삿일이다. 9시 반 문 여는 시간에 뛰어갔는데도 대기자가 벌써 11명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성공이었다. 의사는 꽤 젊은 편이었다. 아니면 동안이든가. 의사의 '어쩐 일로 오셨나요?'란 다정한 질문에 눈물을 터뜨리는 환자도 있다지만-나도 정신과 초진 때는 그랬다-이번엔 달랐다. 닳고 닳은 내게 그따위 여유는 없었다. 숨도 쉬지 않은 채 약력과 상담·진료 경험, 앓고 있는 대표적인 증상과 심한 문제들만 골라 전달했다. 따발총처럼 쏘아대는 말을 그가 알아들은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머릿속은 '의사 양반, 살려줘! 약 줘! 도와줘!'란 세 마디가 강강술래처럼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진료실에서 나가는 내 등에 대고 공부는 잘했냐고 묻는 의사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네'라 답한 뻔뻔함을 후회하며 첫 번째 방문이 끝났다.
'상실과 전이'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