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서 세상은 손을 내밀지 않는다. (上)

공시생 잔혹사 - 15

by pajaroazul

Trigger Warning.

이 게시글에는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공황장애, 우울증, 자살 등)

독자들이여, '인사처보다는 정신과에 가는 편이 좋겠어'를 쓸 당시만 해도, 난 내가 정말 정신과에 가게 될 줄은 몰랐다. 무슨 말인고 하면, 작년 시험 때 공황 발작이 있었고, 작년 말 별개의 이유로 가족들이 심리상담을 권유했지만, 공시생을 빙자한 백수 주제에 회차에 몇십만 원에 육박하는 상담은 사치였다. 공황 발작이라든가, 엉망진창인 수면 패턴이라든가, 강박증세가 조금씩 심해지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뭐?' 싶었지. 여러모로 우려스럽긴 했다. 졸업 이후로 생리는 불규칙한 수준을 넘어 하혈인지 아닌지 헷갈릴 정도로 들쑥날쑥했고, 한 달의 2/3를 PMS 증상과 함께 보냈다. 주기가 끝난 지 1주일이 채 되지 않아 또 피를 한 바가지 흘렸을 땐, 겁에 질려 부랴부랴 산부인과로 향했다. 초음파로 들여다본 난소엔 물혹이 그득했다. 심각한 병은 아니고, 전반적인 호르몬 불균형과 건강 저하가 원인이란다. 알고 보니 내 오른쪽 난소는 '주기마다 물혹 만드는 취미를 가진' 변태였다. 잠깐 동안 약을 복용했지만, 만성적이라 달리 뭘 할 수가 없었다. 의사는 스트레스받지 말고,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하라고 충고했다. '차라리 물을 와인으로 바꾸라 그러지?' 라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친절하기 그지없는 의사 선생님의 얼굴을 보고는 마음을 접었다.


공황발작, 공황장애... 뭐라고 부르든 영 언짢은 어감이다. 장애라기엔 다소 가볍게 느껴지고, 단순한 증상으로 여기기엔 무거운. (순전히 주관적인 의견이다) 연예인들의 '공밍아웃'으로 유명해진 덕에 괜한 반감까지 든다. 패션 우울증이 생각나기도 하고. 게다가 필자는 특정 상황에서만 불안한 것이 아니라 어릴 적부터 늘 예민하고 불안해하는 아이였다. 부모님은 어떤 행동이 유별나다고 분석하기보다는, 전반적인 성격 탓이라 치부하셨다. 최근까지도 난 모든 학생들이 시험 시간에 뛰쳐나가고 싶다는 충동이나,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이 시험을 치느니 죽어버리겠다'란 목소리를 꾹꾹 누르며 의자에서 버티는 줄 알았다! 아니면 엄마 말대로 내가 소심한 겁쟁이에, 아빠 말대로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최악의 결과만 상정하는 쫄보라 그렇다고 믿어버렸지.


하여간에, 수험생이 공황장애가 있다고 하면, 그것도 현장에서 99%의 확률로 증상이 나타날 게 확실하다 하면 뭐가 되겠는가? 지금껏 물심양면 날 지원해온 부모님의 얼굴을 어떻게 본단 말인가? 또 내가 그런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면, 두 번씩이나 수능을 치며 대학에 간 건 뭐라고 설명해야 하는가? 수없이 치렀던 시험들은 어떻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속된 말로, '인정하면 ㅂㅅ밖에 더 돼?'란 생각이었다.


아냐, 난 그런 거 없어. 그냥 공부를 덜 해서, 그날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그랬던 거야.

심리 상담과 정신과, 자살과 같은 단어들을 본능적으로 '나약함'과 연결시키는 가족들 사이에서 뭘 어쩌란 말인가. 또다시 그들을 가르치고, 설득하고, 나를 변호하는 지리멸렬한 과정을 거치고 싶지 않다. 주변에 날 설명해도 이해를 받을까 말까 한 상황이 지겹고 버거웠다. 그래서 효율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본인 상태를 얼렁뚱땅 무시하자! 그러다 지난주, 5급 행시 고사장에 갔다. 딴에는 공포를 '이겨보겠다' 내지 '극복해보겠다'며 간 것이었다. 눈치챘겠지만, 내 아이디어가 아니라 학원강사와 주변의 조언이었다.


해당 시험이 나와 전혀 무관한 시험이란 점을 상기시키며, 호흡법이나 엉뚱한 생각(죄다 3번으로 찍어보는 거야! 지금이 아니면 언제 해보겠어?) 따위를 이용해 침착함을 유지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자명했다. 만약 이 자리가 관련이 있는 시험이었다면, 여러 가지 의미로 난 이미 끝장났으리란 걸. 쉬는 시간, 기다란 복도를 걷는데 실소가 나왔다. '왜 나 같은 인간이 공무원이 되려고 했던 거지? 말이 안 되잖아!'


젠장, 그랬다. 날 아는 그 누구도 내가 이 직업에 어울린다거나, 합격 후 무난하게 근무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가장 심각한 것은 수험생이라면 마땅히 합격 후의 기뻐하는 모습이라든가, 하다못해 안도하는 모습이라도 그려져야 하는데, 전혀 그러질 못한다는 점이었다. 백만 명 즈음의 사람들이 원한다는 그 자리에 들어가, 매일 야근하겠지. 말만 9 to 5인 거 알고 하는 거잖아, 다들? 7급 호봉으론 집은커녕 학자금 갚기도 버거울 것이다. 글을 쓴다든가 다시 미술을 배운다는 건 말도 안 된다. 그게 가능했다면 왜 이 땅의 넘쳐나는 회사원들이 자아실현은 쓰레기통에 처박은 채 월급날만 기다리며 버티겠는가? 피 터지는 경쟁을 이기고 들어간 5급 사무관들이 왜 3년이 안되어 뛰쳐나가겠는가?(타 부서는 모르겠지만 내가 지원하는 직렬은 그렇다) 공무원은 반드시 필요하고, 많은 국민들에게 중대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지만, 세상 모든 청년들이 이 일을 하려고 달려들어야 한단 말인가? 대체 얼마나 많은 잠재력과 능력들이 경력조차 되지 않는 공부에 몇 년씩 묶여 썩고 있는 건가? 공익을 위해서? 사익을 위해서? 국민 연금이 아작 난 이 마당에 공무원 연금이 보장된다는 약속을 어떻게 믿는다는 건가? 하루가 멀다 하고 수십 개의 직업이 사라지며, 일어날 것 같지 않던 3차 대전이 코앞에 와있는 마당에, 아니 거창한 담론까지 갈 것도 없다. 평생 몸 바쳐 일한 직장에서 나이 오십이 안되어 잘린 부머 세대 아버지를 뒀으며, 직장 때문에 투신하는 공무원 소식이 일상인 밀레니얼들은 대체 어떤 '보장'에 매달리고 있는 건가?


올해 정부는 7급 공무원 선발 인원을 작년 대비 절반 가량(이상) 줄였다. 그리고 그 사실을 예고도 없이, 시험이 6개월 남은 올 1월에 공표했다. 코로나라는 구실을 대지만, 2020년에도, 2021년에도 팍팍 늘렸던 인원을 이제 와서 반토막 낸 건 정권 기조에 따라 마구잡이로 늘려 뽑아댄 후폭풍 탓이다. 공고가 떴던 날 기가 막혀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어떤 국가가 일꾼을 이런 식으로 대우하는지, 사기업 1차도 아닌 국시라는 시험이 이렇게 뻔뻔할 수 있는지 어이가 없었다. 지금까지의 선발이 무리했고, 얼토당토 하지 않았다면 그에 대한 책임은 기득권/정부/어른들이 져야 할 터인데 왜 무고한 수험생들이 덤터기를 써야 하는가. 적어도 1년 전에는 알려줬어야지. 반토막은 너무하잖아.


돌아오는 지하철 안, 큰 탈 없이 자리를 지킨 날 칭찬했다. 그런데 그때부터가 진짜였다. 시험장에서 눌렀던 불안과 두려움, 온갖 감정들이 올라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강도가 세졌다. 주말 내내 방에 틀어박혀 죽고 싶다는 생각에 몸을 까딱할 수가 없었다. 쉴 틈도 없이 눈물이 흘렀다. 한 가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자고 일어나면 괜찮을 거다, 며칠 지나면 나아질 거다, 오래간만에 긴장해서 그런 거다... 온갖 핑곗거리를 꺼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진퇴양난인 상황을, 아무리 이해해보려 해도 이해되지 않았다. 이제는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뭘 잘못했는지 따위를 생각해볼 여력도 없었다. 졸업 후 1년 반이 지난 현재, 나는 시험장서 패닉에나 빠지는 모자란 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억울함, 분노, 회의... 이런 감정들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작년, 아니 훨씬 이전부터 꾸준히 축적되어 왔다. 새삼스럽게 화가 난다거나 울컥한 것이 아니다. 지쳤을 뿐이다. 모든 게 끝나버렸으면 좋겠다, 2년 전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구질구질한 미래가 현재가 된 것처럼, 앞으로의 인생도 거지 같은 일들로 가득 차겠지. 연애도, 결혼도, 친구도, 취업도, 성과도, 자아실현도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상태. 그만하고 싶다. 언제까지고 '나를 바꾸면 세상이 바뀔 것이다'라는, 자기 계발서에나 나오는 만트라에 매달리며 심리 상담을 받고, 공부하고, 경쟁해야 하는가. 이겨도 응당한 대가를 받는지조차 의문스러운 이 경기에서, 재벌 3세가 아닌 이상 어차피 다 죽게 되는 경기에서 출전권이라도 얻어보겠다며 아등바등거리는 이 똥꼬쇼를 언제까지 해야 하는가.


몇 달 전부터, 내 카톡 창엔 유서 같은 글들이, 인터넷 검색 기록에는 일산화탄소 중독을 비롯한 온갖 자살 방법들로 차있었다. 스트레스 받아서 그런거라고, 수험생 때 다들 그런 거 아니겠냐며 사태를 가장 가볍게 넘기려던 사람은 나였다. 그건 어느 날 갑자기 든 충동이 아니다. 인내심이 없어서 벌어진 일이 아니다. 변한 건 죽음에 대한 충동이나 우울 자체라기보다, 그것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 내지 체력이었다.


그만 살자, 이 정도면 그만해도 될 거 같아.




(下)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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