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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병진 Mar 30. 2019

비디오용 영화는 있지만, IPTV용 영화는 없다

비디오로는 영화를 봤지만, IPTV로 보는 일은 거의 없다

넷플릭스와 왓챠, 푹, 티빙을 정기결제로 사용한다. 출퇴근 시간이나 잠들기 전에는 챙겨보지 못한 드라마나 예능프로그램을 스마트폰으로 본다.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보는 경우도 다르지는 않다. 시간을 보내기 위해 왓챠나 넷플릭스를 뒤적거린다. 주로 이미 봤지만 한 번쯤 더 보고 싶은 영화를 보는 편이다. 그게 아니면 극장에서는 일부러 찾아보지 않았지만, 볼만할까 싶은 기대감으로 처음 보는 영화를 재생시킨다. 어떤 때에는 문득 다시 보고 싶은 장면을 찾아보기 위해 스트리밍 어플을 구동시킨다. 최근에는 JTBC ‘너의 노래는’에서 정재일의 ‘옥자’ 음악을 소개한 부분을 보고 넷플릭스에서 ‘옥자’의 을지로 상가 장면만 다시 본 적이 있었다. 때로는 스트리밍 어플을 플레이스테이션이나 크롬캐스트를 이용해 TV에 띄워서 본다. 일 때문에 챙겨봐야 하는 영화, ‘버드 박스’처럼 넷플릭스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영화, 혼자 사는 집을 채워줄 백색소음으로서의 영화를 그렇게 본다. 한국 고전영화를 봐야 할 때도 한국영상자료원 유튜브 채널에 등록된 영화를 TV에 띄워서 보는 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보고 싶은 영화를 제일 먼저 보는 곳은 극장이다. 최근에는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넷플릭스를 띄워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를 클릭했다가 5분쯤 보다가 껐다. 한 장면 안에 여러 레이어를 배치해놓고 롱테이크로 촬영한 이 영화를 TV로 보면 안 되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돌아오는 주말에 파주의 명필름 아트센터에서 ‘로마’를 관람했다. 백사장에서 바다 한가운데까지 이어진 클레오의 사투를 내 집의 32인치 TV가 아닌 돌비애트모스 사운드와 4K 상영 시스템으로 경험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로마’처럼 영화 미학을 극대화시킨 작품만 극장에서 보는 건 아니다. ‘극한직업’, ‘마약왕’, ‘범블비, ‘PMC: 더 벙커’, ‘스윙키즈’, 등등 당대의 화제작은 모두 극장에서 관람했다.   


극장도 가고, 스트리밍 어플도 쓰고, TV로도 영화를 보지만  IPTV의 영화 페이지에 뜬 극장 동시 상영 영화를 많게는 10000원, 적게는 5000원의 돈을 결제해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보고 싶은 영화가 IPTV에 뜨기를 기다리기 전에 극장에서 보기 때문이다. 네이버 영화 페이지의 관람객 평에는 종종 ‘굳이 극장에서 볼 필요 없는 IPTV용 영화’라는 평이 올라온다. 내 입장에서 굳이 극장에서 볼 필요가 없다고 여겨진 영화는 그냥 안 봐도 영화다. 그게 아니라면 간혹 왓챠나 넷플릭스, 티빙의 월정액 영화관 페이지에서 구동시켜 스마트폰으로 봐도 되는 영화다. 그만큼 개별 콘텐츠에 돈을 결제하는 경우는 드문반면, 월정액으로 보는 영화는 많다.  


미리 본 관객들이 ‘IPTV용’영화로 평한 영화들은 IPTV가 없었던 과거에 ‘비디오용 영화’로 불렸을 것이다. 그때는 나도 극장에서 보고 싶었지만, 볼 수 없었던 많은 영화를 비디오로 보았다. IPTV용 영화는 없어도, 비디오용 영화는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극장 접근성에 있다. 필름-비디오-IPTV-모바일로 이어지는 영화관람 시스템의 변화에서 함께 짚어야 할 중요한 변화가  스크린 수의 증가다. ‘비디오용 영화’를 봐야 했던 그 시절에는 극장에서 보고 싶은 영화가 있어도 쉽게 볼 수 없었다. 일단 시내 중심가로 나가야 했고, 줄을 서서 티켓을 구매해야 했으며 인기 많은 영화는 매진되는 일이 잦았다. 그래서 그 영화가 비디오 테이프로 유통될 때까지 기다려서 봤다. 홀드백에 따라 비디오 테이프로 본 영화가 명절날 TV에서 방영되면 그것도 또 봤다. 하지만 지금은 멀리 가지 않고도 극장을 이용할 수 있는 시대다. 극장이 많아진 동시에 디지털 상영이 가능해지면서 한 편의 영화를 수천 개의 스크린에서 상영할 수 있게 됐고, 그래서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내가 보고 싶은 시간에 상영하는 극장에서 볼 수도 있다, 극장을 여전히 최우선의 관람환경으로 생각하는 입장에서 지금 극장에서 안 본 영화는 놓친 영화가 아니라 선택하지 않은 영화일 뿐이다. 그러니 굳이 IPTV의 극장동시상영영화를 선택할 이유가 없는 것이고, 월정액 시스템이 있는 이상 ‘이거나 볼까’ 싶은 영화도 IPTV로 볼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단, 이동통신사에서 VIP 고객에게 준 포인트를 소진하기 위해 보는 경우는 간혹 있다.)  


영화를 담는 매체가 필름에서 디지털로 이동하고, 스크린 수가 증가하고, 관람환경이 스마트폰까지 확대되면서 나는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내가 원하는 환경에서 볼 수 있게 됐다. 또한 월정액 시스템을 통해 수많은 영화들을 리모컨으로 채널 바꾸듯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영화가 실망스러웠을 경우 느끼는 낭패감도 적어졌다. 디지털 상영과 스크린 수의 증가는 극장 관람의 기회를 늘렸고, 스트리밍 어플의 월정액 시스템은 24시간 ‘무비 앤 칠’(Movie and Chill)을 가능하게 했다. 더 이상 필름의 질감을 경험할 수 없다는 아쉬움 같은 건 없다.(내가 아쉬워한다고 해서 제작자들이 필름으로 찍어줄 건 아니니까) 비디오 출시일이나 첫 TV방영일을 고대했던 시대의 간절함도 아쉽지 않다. (왜 기다림을 아쉬워해야 하나) 영화는 더 가까워졌고, 더 빨라졌고, 더 다양해졌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환영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시대다. 


*한국영상자료원이 발행하는 '영화천국' Vol.66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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