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쩌다 35살에 LG트윈스의 팬이 되었나.

한 번도 운동을 좋아한 적이 없던 사람이 야구에 빠진 사연

by 강병진

오늘은 (2013년)9월 14일이다. LG는 NC와의 경기에서 1:0으로 승리했다. 어제도 1위였고, 오늘도 1위다. 내일도 모레도 1위일 거 같다. 나는 좀 심드렁해졌다. 삼성이 더 분발해서 LG와 계속 순위 다툼을 하다가 막판에 가서 LG가 1위를 확정해 한국시리즈에 직행하면 좋겠다. 야구라는 게 쪼는 맛이 있어야지. MBC 청룡시절부터 LG팬이었던 친구는 진정한 LG팬이 아니라며 나에게 욕을 해댔다. “어디서 그런 큰일 날 소리를! 언제든지 맛이 갈 수 있는 게 LG라고!” 어쩔 수 있는 게 아니다. 야구중계방송을 본 게 4개월째. LG팬이 된 것도 4개월째다. 야구를 좋아하며 살아온 세월이, 정확히 말하면 스포츠라는 것에 관심을 가져본 게 35년 인생 중 4개월뿐이라는 얘기다. 조금 우스운 사연이 있었다.


2012년은 격동의 해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여자 친구는 유학을 떠났고(헤어진 건 아니다), 이직을 했다. 변화에 변화가 수도 없이 겹치는 터라, 나는 무너지고 있던 멘탈을 의식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 이직까지 했더니, 진짜 ‘멘붕’이 왔다. 전 직장은 영화전문지고, 현 직장은 여성패션지다. 새로운 차원으로의 이동은 나에게 실존적인 고민을 안겼다. 나는 누구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인가. 내가 잘해왔던 건 무엇이고, 못하는 건 무엇이었던가. 집에만 오면 기절하듯 누워 밝아오는 내일을 두려워했다. 할 수 있겠나. 이대로 계속 할 수 있겠나.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에도 겁을 먹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LG팬인 친구가 ‘야구’를 꺼냈다. “LG에 임찬규라는 투수가 있어.” 그래서 듣게 된 그날의 비극. 경기 시작 전, 고양이가 그라운드에 난입했던 날이었어. 에이스 투수인 주키치가 5연속 삼진을 잡아주었지. 점수는 4:1. 그러다 9회 1사 1루일 때, 임찬규가 등판 한 거야. 그해 임찬규는 신인왕 후보였어. 그런데 5연속 볼넷을 내주었지. 결국 LG는 역전패를 당했어. 그때까지 LG는 1,2위를 오가고 있었는데, 이 경기를 기점으로 하락해 결국 7등으로 그해를 마감했어. 그날 선수 대기실 구석에서 임찬규가 울고 있었대. TV에서는 그날 경기의 하이라이트가 방송 중이었는데, 이병규가 임찬규를 TV 정중앙에 앉으라고 했대. 임찬규가 망가지는 걸 스스로 지켜보게 한 거지.“


눈물이 날 뻔 했다. 씩씩함으로 사랑받던 어린 투수가 멘탈 붕괴에 허우적댄 사연에 깊이 공감했다. 충분히 빠른 공을 제대로 꽂아 넣을 수 있었던 임찬규는 그날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도 못해버렸다. 지금 내가 딱 그랬다. 임찬규, 그리고 LG를 응원해보고 싶었다. LG가 살아난다면 나도 기운을 얻을 것 같았다. 친구는 각오를 단단히 하라고 했다. LG가 어떤 팀인 줄 알아? 지난 10년간, 한 번도 가을야구를 못했다고. 매년 올해는 다르다고 하면서도, 결국에는 예년과 다를 게 없던 팀이야.” 주위의 야구팬들 또한 내가 야구 때문에 상처받기를 원하지 않았다. “왜 이런 자학과 고통의 세계로 들어오려고 해요?” 어느 후배의 말은 그래도 기분이 좀 좋았다. “이제 선배도 믿을 수 있는 남자가 됐군요.” 알고 보니, 지난 10년간 LG를 버리지 않을 만큼 강한 인내심을 가진 남자들이 소개팅 시장에서 각광받고 있다는 슬픈 이야기였다. 그들은 올해도 LG를 응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올해를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살아온 지 10년이 넘었다.


임찬규로 시작된 LG에 대한 관심은 지난 6월 2일, 광주에서 열린 LG 대 기아의 경기에서 ‘사랑’으로 폭발했다 7회까지 4점차로 뒤지던 LG가 손주인의 안타에 임정우와 이병규의 홈 쇄도, 그리고 봉중근 – 문선재 배터리의 활약으로 역전승을 했던 날이다. 야구란 이런 것이구나. 그날 밤 하이라이트만 20번 넘게 돌려봤다. 내친 김에 ‘직관’이란 것도 했다. 2013년 8월 11일. LG와 두산의 경기가 열린 잠실구장의 외야석에 앉았다. 바로 뒷자리에 앉은 한 여성 팬은 상대 팀에 대한 온갖 욕을 늘어놓고 있었다. 기회를 틈타 돌아봤더니, 좀 참하게 생겼다. 어쩌면 그녀도 10년 전에는 그저 웃고 박수치고 한숨만 쉬던 여린 소녀 야구팬이 아니었을까? LG를 응원하면서 사랑은 아픔이 됐고, 아픈데 더 아프지 않으려 욕설을 선택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그날의 경기에서 LG는 또 승리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오늘까지 LG는 대부분의 경기에서 ‘결국에는 이기는 야구’를 해왔다. 친구에게 따졌다. 너가 한 이야기랑 다르잖아. 왜 이렇게 잘해. 친구는 그때마다 “이러다 무너지는 게 바로 LG”라고 말했다. 정말 LG는 어느 경기도 마음을 놓게 해주지 않았다. 이번에도 ‘위닝’이겠지 싶으면 ‘스윕’을 당했다. 편하게 이길 것 같았던 날에도 결국에는 봉중근이 나와서 간신히 마무리를 했다. 또 어떤 날에는 봉중근마저 블론을 기록하며 역전패를 당했다. LG의 야구란 드라마의 긴장감은 이길 것인가, 질것인가에 있는 게 아니었다. 승패를 떠나 그들은 극복할 것인가, 무너질 것인가를 놓고 스스로를 저울질을 하고 있었다. ‘DTD’로 요약할 수 있는 지난 10년 동안, LG는 결국 무너지는 야구를 해왔을 것이다. 그런데 (너무나 감사하게도) 내가 야구를 보기 시작한 올해의 LG는 결국 극복하는 야구를 해왔고, 그래서 그들의 올해는 ‘약속의 789’로 요약하게 됐다. 붕괴된 멘탈을 추스르려는 그들의 안간힘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과연 패션지에서의 내 인생도 결국에는 ‘약속의 789’로 요약할 수 있게 될지. 권용관이나 신재웅처럼 다시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게 될 것인지. 그리고 극복과 좌절의 경계에 서 있는 LG의 몇몇 선수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과연 임찬규는 유리 멘탈을 극복할 수 있을까? 이대형은 발이 먼저 나가는 타격 폼을 고칠 수 있을까? 이동현에게 하나 밖에 남지 않은 인대는 언제까지 그의 팔을 버텨줄까? 하지만 LG가 2013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할 수 있을까,란 질문은 하지 않는다. 이제 나도 ‘엘레발’ 쯤은 조심할 줄 아는 4개월차 LG팬이다. 정말 행복했던 여름이었다.


*이 글은 <젠틀맨 코리아> 2013년 10월호에 기고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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