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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병진 Jul 21. 2018

스포츠와 정치의 아름다운 만남

영화 <우리가 꿈꾸는 기적 : 인빅터스>(Invictus , 2009)

"어차피 그깟 공놀이..." 나는 이 말을 프로야구 커뮤니티에서 종종 보았다. '야구'를 '그깟 공놀이' 쯤으로 폄하하는 말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말을 꺼내는 사람들에게는 슬픈 사연이 있다. 자신이 사랑하는 야구팀이 연패에 빠지면, "내가 왜 야구에 이렇게 목을 매나" 싶은 회의가 찾아오는데, 그때마다 '야구'에 대한 애정을 무시해보려 애쓸 때 나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깟 공놀이'라는 말의 진심은 '애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하지만 증오하고, 증오하지만 사랑하는 그래서 결국은 헤어질 수 없는 그런 존재. 누군가에게는 스포츠가 그렇게 강력한 주문이 되기도 한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이 열리기 전과 후의 상황도 비슷해 보인다. 사실 그 어느 때보다도 관심이 적은 올림픽처럼 보였다. 나라 안 팎으로 관심이 쏠리는 이슈가 많아서이기도 했고, 그런 이슈들에 비해 스포츠는 매우 하찮아 보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올림픽을 치르는 브라질 내의 정치, 경제적 상황이 불안하다는 것도 이번 올림픽을 바라보는 시선에 일조했다. 그 나라의 국민들도 그리 반기지 않은 올림픽을 왜 바다 건너의 우리가 기대해야 하는가. 하지만 한국 대표팀 선수들의 승전보가 들리고, 이전에는 몰랐던 그들의 개인적인 사연들이 보도되면서 사람들은 결국 올림픽에 열광하게 되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들이 세계적인 영웅들과 겨루어 이겼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 개개인의 드라마가 사람들을 감동시킨 덕분이기도 하다. 평소 스포츠를 좋아하던 사람뿐만 아니라, 아무런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이 드라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4년마다 찾아오는 올림픽, 그리고 아시안 게임과 월드컵 등의 국가대항전은 그러한 속성 때문에 종종 정치인에게도 좋은 기회가 되곤 한다. 윤희운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 기고한 '올림픽과 대통령 지지율'이란 글에서 "올림픽에서의 선수단 성적이 좋으면 대통령의 국정지지율도 오르는 현상이 있다"고 지적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 끝나고 나서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큰 폭으로 올랐다. 한 조사에 따르면 올림픽 시작 전 10%대였던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끝나고 나서는 30% 수준까지 수직 상승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서는 2002년 월드컵이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국정지지율 역시 월드컵 4강 신화 이후 적지 않게 상승했다." 그리고 그러한 이유에 대해 "국가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을 형성하게" 하고 "대통령과 국민이 한 팀을 응원하며 유대감을 갖게 하는 효과"가 있으며 "올림픽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정치적 악재를 가리는 커튼효과"를 발생시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꼭 이러한 효과 때문이 아니더라도, 사실 스포츠팬들은 정치인이 스포츠 선수들을 찾아 격려하는 모습이 중계되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공정한 룰의 지배하에 오로지 실력으로만 평가받는 스포츠의 세계에 비해 정치는 공명정대한 원칙을 주장하면서도 수많은 반칙이 이루어지는 세계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스포츠 팬의 시선에서 볼 때 본질적으로 스포츠와 정치는 서로를 포용할 수 없는 양극단에 있다. 물론 현실은 그렇지 않지만 말이다.   


하지만 스포츠를 정치에 이용했는데도 사람들의 박수를 받은 사례가 있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연출하고 모건 프리먼과 맷 데이먼이 주연을 맡은 영화 <우리가 꿈꾸는 기적 : 인빅터스>가 바로 그에 대한 이야기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제 막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대통령으로 취임한 넬슨 만델라(모던 프리먼)다. 흑인 인권 운동가였지만, 백인들에게는 '테러범'으로 불리며 27년간 교도소에 수감되었던 그가 교도소를 나왔을 때부터 남아공 내의 흑백갈등은 극으로 치달았다. 당시 남아공의 백인들이 넬슨 만델라의 석방에 갖는 두려움은 영화의 첫 장면에서도 묘사된다. 도로를 가운데에 두고 한 쪽에서는 백인 소년들이 럭비를 하고 있다. 다른 한 쪽에서는 흑인 소년들이 축구를 하는 중이다. 그때 교도소에서 나온 넬슨 만델라가 차를 타고 도로를 지나간다. 흑인 소년들은 그를 향해 손짓을 하는 반면, 백인 소년은 코치에게 그가 누구냐고 묻는다. 코치는 이렇게 말한다. "테러범인데 석방됐지. 나라가 개에게 넘어가는 이 날을 기억해야 해." 이후 대통령에 취임한 만델라는 영국과 남아공 대표팀의 럭비경기를 보러 갔다가 남아공의 내부갈등을 목격한다.   


백인들은 남아공의 새로운 국기와 국가를 사용하지 않았고, 흑인들은 남아공 팀이 아닌 영국팀을 응원한다. 국가대표팀은 하나이지만, 인종갈등의 기억을 지우지 못한 남아공의 국민은 2개의 부류로 나뉘어 있는 것이다. 넬슨 만델라는 남아공의 미래를 위해서는 하나의 승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럭비 대표팀의 주장인 프랑소아 핏나르(맷 데이먼)와 함께 1995년 남아공 럭비 월드컵에서의 우승을 기원한다.   


영화 속에서 넬슨 만델라는 럭비협회 회장에게 '입김'을 불어넣는다. 럭비 월드컵 홍보를 위해 대표팀 선수들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캠페인을 열어주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다. 이 캠페인의 모토는 '하나의 팀, 하나의 조국'이다. 이 모토는 사실 매우 정치적으로 읽힌다. 자신을 향한 정치적인 공세를 지우고 싶은 권력자들이 '국민 대화합'을 강조할 때 써먹기 좋은 모토랄까? 하지만 넬슨 만델라의 '입김'에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오히려 자신에 대한 공격을 감수했다는 것이다. 이미 백인에 대한 적대감으로 가득한 흑인들은 넬슨 만델라의 취임과 함께 '복수'를 다짐하는 상황이다. 백인들이 그토록 사랑했던 럭비 대표팀의 이름과 엠블럼까지 바꾸려고 한다. 이때 넬슨 만델라는 "정치적 입지가 흔들릴 수 있다는" 참모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직접 사람들을 설득한다.   


"백인들은 이제 적이 아닙니다.
우리처럼 남아공의 국민이자, 민주주의 사회의 동반자입니다. 그들은 스프링복스를 소중히 여깁니다. 그걸 빼앗으면 그들을 잃습니다. 그들이 우려한 대로 치졸한 복수를 한다고 보여질 뿐이지요. 그들을 놀라게 해줘야 합니다. 연민과 자제력과 관대함으로 말입니다."  


넬슨 만델라가 꿈꾸는 새로운 남아공은 흑인들을 억압하던 백인의 세계를 지우는 것이 아니다. 그는 전 정부에서 일하던 백인 직원들과 함께 일하려 했고, 자신의 경호팀에도 백인 경찰들을 채용한다. 그리고 백인들이 사랑하던 문화와 가치를 존중하려고 한다. "그들이 아끼는 걸 다 뺐으면 서로를 불신하는 악순환이 될 뿐이야. 그 악순환의 고리를 못 끊으면 우리는 자멸하게 돼." 백인들이 아끼던 문화를 존중하는 한편, 그 문화를 흑인들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넬슨 만델라는 '하나의 팀, 하나의 조국'이란 캠페인을 유도한 것이다.   


넬슨 만델라는 스포츠를 통해 남아공의 미래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린다. 백인과 흑인이 함께 하나의 대표팀을 응원하고, 그 대표팀이 우승이라는 선물을 안겨주고, 그래서 남아공 전체 국민이 같은 기쁨을 공유하게 되고, 그렇게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일을 시작해보자는 것. 실제 남아공 럭비 대표팀은 1995년 럭비 월드컵에서 뉴질랜드 팀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결과적으로도 성공한 스포츠와 정치의 만남이었지만, 넬슨 만델라의 큰 그림은 본질적으로도 스포츠를 정치에 이용하려한 다른 사례와는 다르다. 스포츠를 통해 국정 지지율을 높이고, 정치적 악재를 가리려 한다는 것은 갈등을 잠시 잊게 만들 뿐 현실을 나아지게 만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넬슨 만델라는 스포츠를 이용해 실제적인 변화를 이끌려고 했다. 남아공 럭비 대표팀의 1995년 럭비 월드컵 우승이 스포츠와 정치의 아름다운 만남으로 기억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또한 정치적 원한이 서린 연쇄적인 복수극을 종식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스스로 복수심을 자제할 수 있는 정치인, 그리고 복수심을 진정시킬 수 있는 정치인이라면 전 국민의 응원을 받을 자격이 있다. 


*2016년 8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블로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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