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 간 당신이 한 대라도 덜 맞는 방법

군대에서 구타가 사라졌다고 하지만...

by 강병진

군대에서 이유 없는 구타는 없다. 이유 없이 맞았다는 군인들의 이야기는, 사실 맞은 이유를 모른다는 뜻이다. 혹은 스스로 맞을 짓을 한 적이 없다는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밥에 고추장 좀 넣어서 비벼먹고, 책장에 꽂혀 있던 책 한권 빼서 잠깐 읽었고, 내무반 빨래걸이에 속옷을 널어놓았을 뿐인데, 왜 맞아야 하는가. 그런데 그거 맞을 짓 맞다. 심지어 먼 산을 바라보며 한숨만 쉬어도 맞을 수 있는 게 군대다. 당신을 때린 고참은 당신 짬밥일 때, 꿈도 꿀 수 없던 일들이라서 그렇다. 식탁 위의 고추장은 일병부터 먹을 수 있고 책은 상병부터 읽을 수 있으며, 내무반 빨래걸이는 상병 5호봉은 되어야 사용할 수 있는 등의 규칙들을 이제 갓 들어온 신병이 파괴하려 드는 상황인 것이다. 일병 급의 고참들은 분명 그런 당신과 당신의 동기들을 새벽의 화장실로 불러낼 거다. 그리고는 '겁 대가리를 상실했다'고, '개념이 없다'고, '빠졌다'고 갈구며 구타할 것이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제대한 지 10년이 된 민방위 아저씨가 당시를 추억하면서 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아무리 좋아졌다고 하는 요즘 군대라고 해도 사회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사병세계의 규칙들이 달라졌을 망정,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 같다. 사병의 진급은 회사의 진급과 다르다. 회사에서는 높은 자리에 오르면 마호가니 책상에 가죽의자를 제공하지만, 사병은 진급을 한다고 해도 똑같은 침상에 똑같은 관물대를 사용해야 한다. 월급이 올라봤자, 의미 없는 금액이다. 어깨에 견장을 달아준다고 해도 책임만 늘어날 뿐, 그에 따른 권력까지 인정해주지는 않는다. 즉 진급에 따른 프리미엄이 없기 때문에 사병들은 자기 세계 안에서 프리미엄의 규칙을 만들어야만 지긋지긋한 군 생활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고작 고추장이나, 후식으로 먹는 누룽지 정도라고 해도 말이다.


그러니 당신이 구타를 피해 예쁨 받는 후임병으로 거듭나는 첫 번째 단계는 이러한 규칙들을 일찌감치 파악해 자신의 행동반경을 규정짓는 것이다. 복학생 선배들에게 미리 듣는다고 해도 크게 쓸모는 없을 거다. 육군, 해군, 공군마다 다르고 각 군단사령부 마다 다르고 사단마다, 대대마다, 각 소대 내무반 마다 다를 테니까. 규칙을 파악했다면, 이제는 고참들의 시험과 맞서야 할 때다. 말년에 다다른 병장고참이 사람 좋게 웃으며 건넨 고추장은 곧 악마의 키스다. 이 고추장을 받아들인다면, 그 광경을 지켜본 다른 고참들은 또 다시 당신을 새벽의 화장실로 초대할 것이다. 모범답안은 무조건 '괜찮습니다!'이다. 고추장을 건네는 고참이 짜증을 내고, 급기야 불같이 화를 내며 때리려고 해도 '괜찮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외쳐야 한다. 그 고참에게는 재미없는 일이겠지만, 당신은 절대 맞지 않는다. 오히려 고참들에게 '개념 있는 A급 신병'으로 각인될 것이다. 이렇게 그들이 구축해놓은 세계를 '과장된' 말과 행동으로 존중하는 것만으로도 군 생활 동안 당신이 견뎌야 할 구타의 70%는 피할 수 있다.


고참이라는 자들은 대부분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욕망을 함께 품고 있다. 후임병을 마음껏 요리하고 싶다는 것, 하지만 그럼에도 좋은 고참이고 싶다는 것. 아예 인간이기를 포기한 고참이 아닌 이상에야, 웬만한 고참들은 후임병들의 욕구를 잘 알고 있다. 그들에게도 때로는 인심 쓰듯 고추장과 담배를 먼저 권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고추장을 먹어도 되겠습니까?"라는 식으로 먼저 물어보는 게 예의일 거라는 착각도 금물이다. 당신이 먼저 고추장이 먹고 싶다고 말하는 건, 그들에게 좋은 고참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뺏는 거다 다름없기 때문이다. 고참들이 스스로를 좋은 사람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야 말로 후임병 시절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는 궁극의 전략이다. 경험상 가장 좋은 꼼수는 고참에게 '헤어지자는 애인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는 것이다. 이건 모든 군인이 거부할 수 없는 주제인 동시에, 고참과 후임병이 계급을 떠나 서로가 같은 처지에 놓일 수 있는 소재다. 애인이 없다면 가상의 애인이라도 들이밀면 된다. 고참은 분명 당신에게 담배 한 가치를 권하며 이야기를 들어줄 것이고, 후임병의 고민을 듣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전지적 시점에서 바라보며 만족스러워 할 거다. 너무 우습고, 유치하고, 얕지 않냐고? 그게 군대인 걸 어쩌겠나. 안타까운 건,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는 알 수 없었다는 거다. 군대를 다녀온 당신의 선배들이 모두 이런 이야기를 하겠지만, 그들 역시 나처럼 일단 얻어맞은 후에야 깨달음을 얻었을 것이다. 인간이란 그렇게 별 수 없는 존재다. 그리고 그런 진리를 알아차릴 수 있는 곳이 바로 군대다.


*이 글은 '쎄씨캠퍼스' 2011년 9월호에 기고됐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