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병진 Jul 27. 2018

'마션'의 아름다운 삭제

리들리 스콧은 끝까지 낙관적이다. 

마크 와트니를 구하기 위해 NASA는 보급선 발사를 서두른다. 그런데 애써 만든 보급선이 공중에서 폭발해버린다. 쏟아부은 시간과 돈과 정성이 해양쓰레기가 되어버린 상황. 이때 뉴스를 보던 중국국가항천국(중국의 NASA와 같인 기관)의 수뇌부는 이렇게 말한다. “이건 정치가 아니라, 과학이야. 우리가 도와줘야해.” 


<마션>의 원작을 먼저 읽었는데도, 이 장면의 감흥은 컸다. 사실 원작의 중국국가항천국은 과학으로 정치를 하려고 한다. 그들은 비밀리에 개발한 태양신호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NASA의 차기 화성탐사선에 중국인을 태워줄 것으로 요구한다. 이들의 진짜 목적은 중국의 우주기술이 미국의 수준과 거의 동등하다는 점을 전 세계에 알리는 것이다. 그처럼 <마션>의 원작자인 앤디 위어는 화성에 혼자 남은 탐사대원의 생존기를 구상하면서 이 사건이 지구 전체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까지 현실적으로 상상했다. 이건 과학이 맞지만, 과학 또한 정치와 국제관계의 영역 안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리들리 스콧 감독은 이러한 맥락을 과감하게 삭제해버린다. 


<마션>은 처음부터 끝까지 긍정적인 기운으로 가득한 영화다. 화성의 미아는 감자를 심어가며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을 성실히 실행하고, 지구의 사람들은 그를 구하기 위해 ‘야근’을 마다하지 않는다. 너무 감상적인 게 아니냐고? 그렇게 감상적인 태도로 우주를 바라보는 게 <마션>의 시선이다. 저 밖의 세계에는 두려운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이 있을 것이라는 설렘, 그래서 언제나 그곳으로 향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믿음, 무엇보다 마크 와트니의 대사처럼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의지를 갖고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간다면 어느새 생존해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라는 안도감. 다소 순진하고 이상적으로만 들리는 경구들이지만 리들리 스콧은 주저하지 않는다. 너무 낙관적이지 않냐는 비판의 여지까지 껴안은 것처럼 끝까지 낙관적이다. 그러니 사람을 구하겠다고 나서는 일에 정치나 외교와 같은 단어들을 거론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덕분에 <마션>을 보는 동안 정치가 풀지 못한 문제들을 과학이 대신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위로를 받았다. 때로는 정치적 계산보다 과학의 심장이 필요하다는 걸 보여주는 아름다운 삭제다.  


*2017년 12월, '아레나 옴므 플러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