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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병진 Jul 31. 2018

군생활을 했던 곳에 다시 가봤다. 그런 미친 짓을 했다

그것도 두 번이나 갔었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중에 다시 그곳에 가보고 싶은 사람은 거의 없을 거다. 다들 미친짓이라고 그런다. 슬픈 일이다. 20대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보낸 곳인데, 심지어 먹고 자고 맞고 울고 했던 곳인데 그 시절은 결코 추억이 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나는 제대한 지 10년이 지난 후에 그곳을 갔었다. 우연히 간 게 아니었고, 그 주변에 다른 일이 있어서 간 것도 아니었다. 그때는 2012년이었다. 여러 가지로 힘든 일이 많았던 시기였는데,  당시 나는 약 3개월 동안 거의 매일 군생활을 하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왜 하필 나는 말년병장이 아니라 이등병이란 말인가? 꿈속에서 나는 언제나 걸레를 빨고 있었고, 누군가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매일 그런 꿈이 반복되자, 나는 그곳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싶어졌다. 그냥 잠시 그곳을 보고 있으면, 오히려 군생활에 빠진 꿈을 덜 꾸지 않을까? 내 안의 트라우마와 맞서는 그런 기분? 같은 거였다.  2012년 2월의 어느 날, 친구와 술을 마시며 다시 그곳에 가봐야겠다는 말을 던졌고, 내가 군생활 동안 친구 중에 유일하게 면회를 와줬던 그도 동행하기로 했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 날 버스틀 타고 화천으로 갔었다.  

다시 찾아간 그곳에서 별 다른 걸 했던 건 아니다. 군생활 기간 동안 아침마다 구보를 뛰었던 길을 걸었고, 돌담 쌓을 때 필요한 돌을 주었던 공터에서 담배를 몇 대 태웠다. 휴가 때면 버스를 타던 정류장 근처에서 돈까스 하나 씩을 사먹었다. 그리고 사진을 찍었다.  

정면으로 마주한 효과가 있었는지, 그때 이후로 한동안 꿈속에서 이등병이 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가끔씩 꿈 속에서는 그때 그 곳이 나온다. 다행히 예전만큼 몸과 마음이 지칠 때는 아니어서 2012년 그때만큼 괴로운 건 아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6년 후인 지난 2018년 6월 25일. 나는 또 그곳에 갔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가려고 했던 게 아니다. 여름휴가를 맞이해 평소 가보고 싶었던 곳을 가보자는 생각이 있었다. 그중 한 곳이 철원에 있는 노동당사 건물이었다. ‘발해를 꿈꾸며’의 뮤직비디오에서 보고, 종종 다른 이들이 찍은 사진으로만 보았는데, 이 건물 자체에 흥미가 생겼다. 그래서 철원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침 근처에 내가 군생활을 했던 곳이 있으니 들러보자 했던 것이다. 철원에서 화천으로 향하는 동안 조금씩 눈에 익은 길이 나타났다. 그리고 드디어 그곳에 도착했다. 그런데... 


내가 2년 간 군생활을 했던 그곳은 더 이상 부대가 아니었다.  

부대 앞에 물이 흐르던 냇가는 풀로 가득했다. 막사가 있어야 할 곳에는 풋살경기장과 테니스장이 있었다. 식당이 사라졌고, 내가 동료들과 만들었던 뒷산으로 향하는 계단길은 산책길로 정비되어 있었다. 아무런 안내문도 없었다. 아무래도 이 동네 주민들을 위한 체육시설로 개조된 듯 했다.  

그래도 내가 함께 쌓았던 돌담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곳이 사라졌다는 게 한 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저주하고 싶은 기억이라면, 그 기억을 만든 장소가 아예 사라지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내가 군생활을 했던 곳이 사라진 대신, 따뜻한 기억의 장소 하나가 남아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괜찮았다. 부대 앞에 있던 면회소 건물, 그안의 놀이터는 그대로 있었다.  

2001년 6월 21일, 그날 제대한 나는 전역식에서 막걸리 한 병을 거의 원샷해야 했다. 마시라고 시키니까 마신 거였다. 그리고는 부대 문을 나와 이곳에 늘어져 있었다. 나를 데리러 오기로 한 아버지를 기다려야 했다. 내 눈은 반쯤 풀린 상태였지만, 아버지의 자동차가 들어오는 광경은 지금도 똑똑히 기억난다. 차에서 내린 아버지는 크게 웃으며 나한테 손짓을 했었고, 그날 나는 아버지와 서울로 오는 길에 이천에 들러 목욕을 함께 하고, 곤지암에 들러 소머리 국밥을 먹었다. 아버지는 운전을 해야하기 때문에 나 혼자 소주를 마셨다. 혹시라도 나중에 다시 이곳을 찾는다면, 그때는 군생활의 기억보다 아버지와 보냈던 그 시간이 먼저 떠오를 것 같다. 꽤 괜찮은 미친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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