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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병진 Aug 01. 2018

'공작'은 첩보원들이 벌이는 '밀당'의 세계를 그린다

아주 폭넓은 '밀당'이다.

첩보스릴러 영화인 ‘공작’에는 피와 살점이 튀기는 총격전도 없고, 무너지는 건물도 없다. 총을 손에 쥐는 사람들은 있지만, 그들의 무기는 얼굴과 말이다. ‘공작’의 첩보원에게 주어진 미션은 누구를 제거하거나, 누군가의 음모를 파헤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공작’은 실제 대북공작원이었던 암호명 흑금성의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실형을 산 그는 출소 후 역시 ‘공작’이란 제목의 수기를 내놓았다. 영화에서 흑금성이 되는 인물은 정보사 소령 출신의 안기부 요원인 박석영(황정민)이다. 1993년, 남한 정부와 안기부는 북한의 핵개발이 어느 단계에 올랐는지에 대한 정보를 찾느라 혈안이다. 북의 고위층에게 접근해서 정보를 캐내라는 명령을 받은 박석영은 경남 마산 출신의 대북 사업가로 위장해 베이징에 들어간다. 수개월 동안 여러 사람을 만나며 북한에서 생산된 물건을 판매하는 업자들과 접촉한 박석영은 그들을 통해 베이징에 주재하는 북한의 고위 간부 리명운(이성민)을 만난다. 진짜 공작은 이제부터 시작된다. 리명운은 남한의 정보사 군인 출신인 그를 믿지 않고, 지속적으로 테스트를 벌인다. 박석영은 이 모든 테스트를 감지하고, 통과해야만 한다.

‘공작’이 그리는 공작의 바탕은 심리전이다. 주인공 박석영은 자신에게 테스트를 걸어오는 리명운의 제안들을 무조건 수용할 수가 없다. 그 중에는 함정이 있고, 덫이 있기 때문이다. 말과 연기력을 무기로 싸우는 이들의 심리전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박석영이 북한 고위급 인사들을 대하는 태도다. 이를 가장 적절히 묘사할 수 있는 말은 ‘밀당’일 것이다. 때로는 비굴하게, 또 때로는 대범하게. 박석영을 연기하는 황정민은 이 밀당의 스펙트럼을 수시로 오간다. 그 과정에서 비밀을 감춘 사람들의 표정과 행동을 섬세하게 포착한 윤종빈 감독의 연출은 긴장감의 밀도를 높이기에 충분하다. (공작 상황에서 말소리를 녹취할 때 사용하는 녹음기를 어떻게 꺼야하는가, 그 녹음기는 어떻게 감춰야 하는가까지 보여준다.) 실제 제작진은 배우들이 “말을 겉으로 뱉는 상황과 말에 진심을 담는 상황을 구분해서 촬영했다”고 한다.


‘공작’의 예고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영화 속 공작의 가장 중요한 미션은 북한 고위급과 만난 후 북한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때 ‘공작’이 보여주는 북한의 풍경은 지금까지 한국영화들이 묘사했던 북한의 모습과 비교할 때 가장 넓고 높다. 대동강이 흐르는 평양의 전경을 하늘에서 내려다보거나, 자동차에 탄 인물의 얼굴 뒤로 평양의 시가지를 스쳐가게 하거나, 평양의 아파트 밀집지역을 조망하는 앵글은 실제 기록영상이 아닌 이상 한국의 극영화에서 본 적이 없었던 앵글이다. 호쾌한 액션과 육중한 무기가 등장하지 않는 ‘공작’에서 경험할 수 있는 스펙터클이 있다면, 바로 영화가 보여주는 북한의 전경일 것이다.


‘공작’이 그리는 시대는 대한민국에서 50년 만에 정권교체를 앞두고 있던 그 때다. 실화를 소재로 한 만큼 영화는 실제 당시 사건들을 곳곳에 배치한다. 등장인물들이 벌이는 공작과 그에 따른 사건들을 실제 당시 뉴스장면을 통해 다시 확인시키는 방식이다. 실제 사건을 몰랐어도 그때 그 시절의 아나운서와 앵커들이 뉴스를 전하는 장면에서는 이 영화가 실화를 얼마나 담아냈는지 더 궁금해질 수 밖에 없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면 또 다른 이야기가 궁금해질 것이다. ’공작’은 남한과 북한의 정상이 처음 만나 악수를 하고, 남과 북의 연예인이 함께 핸드폰 광고를 찍었던 시절의 바로 직전에 벌어진 실화에 대한 이야기다. 어쩌면 2018년 판문점과 싱가폴에서 벌어진 세기의 사건들에도 이보다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있을지 모를일이다. ‘공작’은 그처럼 또 다른 공작에 관한 이야기를 보고 싶게 만드는 영화다.

*2018년 7월 허프포스트코리아에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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