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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병진 Aug 04. 2018

이와이 순지의 새로운 영화는 '러브레터'에서 출발한다

그의 신작에 관한 소식을 들었다. 

인터넷 이전에 PC통신이란 세계가 있었다. 1997년 재수생 시절 누나가 만든 아이디로 처음 하이텔에 접속했다. 그때 번개도 하고, 정모도 하면서 만난 사람들 사이에서 ‘러브레터’란 영화에 대한 소문이 돌았다. 어떤 사람은 부산에 있는 하이텔 이용자에게 부탁해 ‘러브레터’를 녹화한 비디오 테이프를 얻어서 봤다고 했었다. 도대체 어떤 영화이길래, 이 난리인거지? 


난리의 실체를 확인한 건, 1998년 대학에 입학해 영화동아리에 들어갔을 때였다. 동아리방 캐비넷에는 수많은 비디오 테이프가 있었고, 그 중에 ‘러브레터’도 있었다. 바로 위의 선배들은 이 영화를 보고 또 본 상황이었다. 그리하여 드디어 마주하게 된 ‘러브레터’. 사실 처음 10분 동안 이 영화가 이야기를 어떻게 전개시키고 있는지 감을 잡지 못했다. 방금 연인의 죽음을 추모하다가 연인의 졸업 앨범을 뒤졌던 여자는 왜 또 갑자기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는가. 그리고 저 여자는 왜 자신이 쓴 편지를 자신에게 보내고 어디서 온 건지 의아해하는 건가. 그러다가 두 명의 여성이 얼굴만 같은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이 영화에 빠져들었다. 이후 ‘러브레터’는 일본영화가 공식 수입시기 시작하면서 한국장에 걸렸다. 이전에 정식으로 개봉한 ‘카케무샤’와 ‘하나비’는 흥행에서 참패했지만, (사실 대중적으로 흥행할 영화가 아니기는 했지만) ‘러브레터’는 약 1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미 저화질 비디오로 본 사람들은 극장의 큰 스크린에서 다시 보고 싶어했고, 소문만 들었던 사람들은 실체를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사실 ‘러브레터’는 1995년에 제작된 영화였다. 

그 이후 이와이 순지가 만든 영화는 대부분 한국관객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러브레터’의 붐을 타고 ‘4월 이야기’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됐고, 2001년 ‘릴리 슈슈의 모든 것’과 2004년 ‘하나와 앨리스’가 개봉했다. 이와이 순지가 직접 연출한 최신작은 ‘립반윙클의 신부’ (2016)다. 하지만 20년 전, ‘러브레터’를 본 사람들은 아직도 이와이 순지에게서 ‘러브레터’만을 떠올린다. 30년 전, 그 영화를 본 나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와이 순지가 또 ‘편지’에 관한 영화를 만든다고 한다. 2019년 개봉 예정인 이 영화의 제목은 ‘러브레터’의 연작처럼 들리는 ‘라스트 레터’다. 

일본 ‘닛칸스포츠’의 보도에 따르면, ‘라스트레터’는 1990년대 후반 이와이 순지의 영화를 좋아한 사람이라면, 반가울 수 밖에 없는 조건들을 갖추고 있다. 일단 대략적인 이야기를 보자. 


“이야기를 시작하는 주인공 유리는 언니 미사키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 언니의 동창회에 나간다. 그때 자신의 첫사랑이었던 남자 미카사를 만난다. 미카사는 유리를 미사키로 오해하고 그녀에게 “내가 당신을 영원히 그리워한다면 믿을 수 있을까”란 내용의 메모를 전한다. 언니에게 향하는 편지이지만, 유리는 대신 그에게 답장을 보낸다. 단, 자신의 주소를 쓰지 않고 보내는 편지다. 답장을 받은 미카사는 졸업앨범을 다시 찾아서 미사키의 주소를 찾아 편지를 보낸다. 그런데 이때 편지를 받은 건 미사키의 딸 아유미다. 이때부터 엄마를 대신해 아유미는 과거에 엄마를 사랑했던 남자와 대신 편지를 주고 받는다.”


영락없는 ‘러브레터’의 또 다른 판본이다. 일단 얼굴이 비슷한 두 명의 여성이 나온다. '러브레터'에서는 이름이 같은 두 남녀 때문에 오해가 발생하지만, 여기서는 얼굴 때문에 오해가 발생한다. 그리고 '나에게 보낸 편지가 아니지만, 대신 읽고 답장을 보내는' 설정이 나온다. (심지어 이때도 졸업앨범에 기재된 주소를 쓴다.) 현재까지 보도된 내용으로는 편지를 주고 받는 과정애서 미카사와 미사키의 과거 학창시절 에피소드가 나온다고 하는데, 이 또한 '러브레터'에서 봤던 형식이다. 후지에 이츠키와 와타나베 히로코는 편지를 주고 받고, 이츠키는 히로코가 사랑한 남자 이츠키의 학창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또 하나. '라스트레터'에도 여배우의 1인 2역이 나온다. 영화 속에서 엄마를 대신해 편지를 쓰게되는 아유미 역에는 배우 히로세 스즈가 캐스팅됐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와 '세번째 살인'의 그 배우다. 히로세 스즈는 이 영화에서 엄마 미사키와 현재의 아유미를 둘다 연기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1990년대 이와이 순지의 팬이라면 반가워할 소식이 또 있다. 이 영화에서 미사키의 동생 유리를 연기하는 배우는 바로 마츠 다카코다. '4월 이야기'에서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을 연기했던 그 배우 말이다. 

'라스트 레터'에 대한 보도를 보면서 여러 생각이 겹쳤다. 이와이 순지는 과거의 성공방식을 또 욹어먹으려고 하는 걸까,란 우려. 그리고 그럼에도 이 영화가 개봉하면 다시 볼 수 밖애 없을 거란 예상이다. 보도에 따르면 이와이 순지는 '라스트 레터'에 대해 “SNS로 소통할 수 있는 시대에 편지에 관한 이야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말했다고 한다. 여러모로 20년 전, 그때 그 사람들을 추억에 젖게 할 작품일 듯. 기회가 된다면 1998년 그때 동아리방에서 함께 비디오테이프로 '러브레터'를 봤던 사람들이랑 단체관람이라도 하고 싶다.  


P.S 첫사랑 남자는 후쿠야마 마사하루가 연기한다. 음악은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 '릴리 슈슈의 모든 것'에 참여했던 고바야시 다케시가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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