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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병진 Aug 07. 2018

봉준호의 영화에서 '고기' 먹는 장면들의 의미

그의 영화에서 '육식'은 긍정적인 식생활이 아니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에 대해서는 여러 평가가 있었다. 그래도 공통된 의견 중 하나는 “영화를 보고 나면 고기를 먹지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옥자’는 “목살, 등심, 삼겹살이 될” 슈퍼돼지 옥자의 거친 운명에 관한 이야기다. 더 많이 먹고 싶다는 사람들의 욕심에 의해 개발된 옥자는 미자의 품을 벗어난 순간 ‘식품’의 대접을 받는다. 영화가 드러내는 학대와 도살의 풍경을 보는 순간, 고기를 먹어온 과거에 죄책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옥자’는 고기의 운명을 통해 필요 이상으로 많이 만들고 많이 소비하는 시대의 단면을 비추는 영화다. 그런데 '옥자' 이전에도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서 ‘고기를 먹는 것’은 그리 긍정적인 식생활이 아니었다. 그의 전작들을 살펴보면 고기를 먹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뭔가를 감추고 있는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영화속에서 조롱 당하거나, 죽고 말았다. 기억을 더듬어 한 명씩 살펴보자. 시작은 봉준호 감독의 장편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3)의 한 장면이다.


1. 어느 아파트 지하실의 비밀스러운 주방

아파트의 지하실은 보일러실이자, 창고이고, 길고양이들의 쉼터이자 아이들의 아지트다. 그런데 ‘플란다스의 개’속 지하실은 어느 노숙자의 잠자리이자, (거짓인지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보일러에 애정이 많았던 보일러 김씨의 무덤이고, 경비원 변씨(변희봉)가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공간이다. 변씨는 이곳에서 (아마도 주민이 버렸을) 런닝머신으로 운동을 하고, 얼큰한 찌개를 끓여 먹기도 한다. 그리고 그가 가장 환영하는 찌개거리는 바로 개다. 주변에 있던 사람이 사라지자, 바로 개의 사체에 묻은 흙을 털어내는데, 이 순간 배우 변희봉이 연기한 경비원의 달뜬 얼굴은 개고기에 대한 그의 집착을 보여주었다. 영화 ‘괴물’에서는 괴물이 물고온 사람의 사체를 저장해두는 하수구가 있었다. 말하자면 ‘플란다스의 개’의 지하실이 이 경비원에게는 괴물의 하수구였다.


2. 끔찍한 시체를 발견한 사람들의 회식

그들은 그날 시체를 발견했다. 이번에 발견된 연쇄살인 피해자보다 늦게 발견됐지만, 사실상 먼저 죽은 여성의 시체다. 봉준호 감독은 이들이 부검실에서 시체를 살펴보는 장면에 바로 불판에 고기가 올려지는 장면을 붙였다. 부검실에 놓인 시체와 고기가 한데 엮이면서 끔찍함은 배가 되지만, 형사들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고기를 먹는다. (끔찍함을 느끼는 건 관객뿐이다.) 이 고깃집은 백광호의 아버지가 경영하는 곳이다. 형사들은 백광호에 가혹 행위를 했던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이곳에 온 듯 보인다. 박두만은 백광호에게 나이키, 아니 ‘나이스’ 신발을 선물하고, 조용구는 “나중에 길에서 형 만나면 도망가지 말고 인사도 하고 그래라”라고 말한다. 사실상 폭력 가해자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대충 뭉개려는 상황인 것이다. 이 장면의 ‘고기’는 이 형사들이 사건을 대하는 무신경한 태도를 드러낸다.


3. 미국에서 날아온 이들의 바베큐 만찬

경치 좋은 곳에 가면 일단 고기부터 굽는다. 이런 행동은 한국인만의 특성인 줄 알았다. 하지만 ‘괴물’을 보면 미국인들도 고기 굽는 걸 좋아한다. 가족들과 현서를 찾아 헤메다 경찰에 검거된 강두는 그에게 바이러스가 있을 것이라는 미국 의료진들의 집요한 오해에 의해 수술을 당한다. 몸에는 마취약이 잔뜩 들어갔고, 수술한 자리는 회복도 되지 않았지만 강두는 의지를 꺾지 않았다. 자신의 피가 든 주사기를 의료진의 목에 들이대며 사람들을 위협하자, 수술실의 문이 열린다. 수술실 밖은 넓은 벌판이다. 그리고 미국 의료진을 비롯한 사람들이 바베큐 파티를 하고 있는 중이다. 괴물에 의해 전파된 바이러스는 처음부터 없었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처럼 태연하게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이 장면의 바베큐 그릴은 분명 그들에 대한 조롱의 의미로 그 자리에 놓여있었다.


4. 누명(?)을 벗은 아들에게 해주는 음식

“원래 관가에 갔다 오면 몸보신부터 하는 거야.” 도준(원빈)은 경찰서를 두 번 다녀온다. 다녀올 때마다 엄마는 닭백숙을 해준다. “더덕이랑, 구기자까지 넣어서 푹 고은”거라 “심지어 정력에도 좋은” 닭백숙이다. 도준이 진태(진구)와 어울리다가, 부시지도 않은 벤츠의 백미러 때문에 경찰서를 다녀왔을 때 엄마는 이런 저런 말이 많다. 하지만 살인혐의로 경찰서에 다녀왔을 때는 별 말이 없다. 이번에 말이 많은 쪽은 도준이다. “엄마, 내가 생각을 좀 해봤거든. 종팔이 걔 있잖아. 왜 옥상에 올려놨을까, 시체를. 그 높은데에… 내 생각엔 잘보이라고 그런 거 아닐까? 얘 지금 피 질질 흘리고 있으니깐, 빨리 병원 데려가고. 그래서 사람들 제일 잘보이는데다 올려놓은 거지.” 도준의 이 말에서는 그의 진심을 알 수 없다. 영화를 본 사람은 도준이 애써 자신을 감싸려는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장면이다. 그말을 들은 엄마는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닭을 먹을 뿐이다. 엄마는 그렇게 믿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5. 세계의 지배자만이 즐길 수 있는 스테이크

“미디엄 레어 괜찮나?” 인류 최초로 꼬리칸부터 엔진칸까지 와본 커티스에게 윌포드는 스테이크를 대접한다. 상상하기도 싫은 재료로 만든 단백질 블록만 10년 넘게 먹어온 커티스에게는 놀라운 순간이다. 하지만 자신의 앞에 앉아 태연히 스테이크를 먹는 윌포드는 더 놀라운 진실을 말한다. 커티스가 가진 생각과 의지와 믿고 있던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상황이다. 거칠게 정리하자면, 커티스의 혁명 또한 윌포드의 계획하에 있었다는 것이다. 윌포드의 스테이크는 꼬리칸의 단백질 블록과 비교할 때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음식이다. 하지만 이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윌포드의 공간, 정확히 말하면 기차 아래의 공간에는 아이들이 있었다. 시스템의 전복과 파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설국열차’에서 스테이크는 그처럼 힘겹게 세계를 지탱하는 사람들이 있으므로 즐길 수 있는 음식인 것이다.



*2017년 6월 허프포스트코리아에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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