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개봉 당시, 영화에 대한 혹평이 많아서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유튜브에서 우연히 액션 장면들을 보게 되어, 호기심에 디즈니플러스로 영화를 틀었는데, 결국 스토리가 궁금해서 다 보게 되었다. 확실히 마블 영화는 뭔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마력같은 힘이 있는 것 같다.
이 시대의 테마, 정체성
주인공 비어스는 크리족이 사는 행성에서 욘로그에게 훈련받으며 크리행성의 전사로 활동한다. 임무 수행 중 탈로스에게 붙잡히면서 지구로 불시착하게되고, 거기서부터 간혹 기억속에서 보았던 과거의 흔적들을 찾게 되고 슬슬 정체성을 찾기 시작한다. 영화를 보다가 문득 내가 존경하는 분이 나에게 해주었던 말씀이 생각났다. '요즘 영화의 트렌드는 정체성 찾기'라고.
돌이켜보면 내가 봤던 마블영화들의 첫번째 이야기는 '정체성 찾기 또는 나를 증명하기'의 맥락을 벗어나지는 않는 것 같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어. 나는 이런 히어로였어.' 라는 발견을 통해 주인공은 다시태어난다. 주인공의 얼굴에 환희가 보이던 안보이던, 영화는 그때부터 가열차게 달려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주인공은 Hero 본연의 모습들을 점차 찾아나가기 시작한다.
우리는 그러한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 같다. ('대리'라는 단어의 어감이 어떻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만큼 영화를 통해 느끼지 못했던 만족을 느낀다는 얘기다.) 그만큼 나의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은 인생에 있어서 필수 불가결한 이슈인 것 같다. 그리고, 그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모두 몰입하게 된다. 주인공의 희노애락이 나의 희노애락이 되어간다. 어느새 그 몰입을 통해 우리도, 우리 자신을 찾아보고 싶다는 열망과 그 과정을 즐겨보고 싶다라는 마음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적에서 아군으로, 아군에서 적으로
영화의 스토리는 처음엔 단순해 보였다. 권선징악을 보여주는 기본적인 구조라고 생각했다. (나는 권선징악의 구조를 좋아한다. 영화에서만큼은 단순해지고 싶어서이다. 악에게 명분을 굳이 주는 영화를 굳이 찾아서 보고 싶지 않다. 안그래도 삶은 충분히 복잡하다 ㅎㅎ) 그런데 영화를 보는 중반 쯤에, 반전이 일어난다. 주인공을 훈련시켜왔던 욘로그와 함께했던 크리족이 자신을 속여왔던 적이었고, 자신이 적이라 생각했던 탈로스가 사실은 아군이고, 착한쪽이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영화는 반전을 준다. (그런데, 반전하면서 나만 놀란 것 같다. 주인공은 크게 놀라지 않는 눈치였다..)
영화를 볼 때는 '오 그래도 반전이 있는 영화다'라는 생각 정도로 넘어갔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여운이 남았다. 삶에서 만나는 다양한 경험들 속에서 나와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어느새 나를 적으로 돌렸을 때 (내가 믿었던 사람들이 사실은 나를 믿고 있지 않다는 걸 내가 알아버렸을 때의 느낌을 말한다. 음... 사실 꼭 적이라 표현할 수는 없다. 다만 기분이 별로일 뿐이다) 또는 그 반대로 나를 싫어하거나 미워하는 줄 알았던 사람들이 알고보니 나와 같은 마음인 것을 발견했을 때 (그리고 사실 그전까지 나는 그들을 줄기차게 싫어했을 때) 그 느낌과 기억들이 생각났다.
두가지 경우 모두 사실 기분은 별로다. 적인줄 알았을 때의 그 속상함과, 적이 아님을 알았을 때의 그 미안함은 둘다 부정적인 감정이고, 결국 스트레스가 된다. 이러한 감정의 기복이 싫기 때문에, 나를 포함해서 현대인들은 numb하게 있으려고 하는게 아닌가 싶다. 중립을 지키는 것이다. 그래서 감정을 involve하지 않으려 하는 것도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또는, 그러한 반전이 사실 불편하다. (하지만 우리는 반전영화를 좋아한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안정을 추구하고 살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변화들은 우리를 놀래키고, 긴장하게 만들기도 한다. 상당한 스트레스인 것이다. 그게 투사되었기 때문인지 주인공의 감정기복이 크지 않은 모습이 낯설다. 그리고 멀게 느껴진다. (주인공의 덤덤한 모습을 봤을때부터 영화의 몰입도가 떨어지기 시작한것 같다)
아쉬웠지만, 괜찮은 영화
주인공이 각성하는 장면은 살짝 미약하긴하다. 그리고 이 부분이 관람자들이 혹평하는 포인트이기도 하다. 비록 내가 기대감없이 영화를 보긴했지만, 그래도 나쁘진 않았다. 각성하는 장면해서 한가지 key takeaway(오늘의 교훈이라고 해야할까 싶다)를 뽑는다면 이것이다.
누군가의 진심어린 한마디는 삶을 바꿀만한 충분한 기제가 될 수 있다
사람의 말에는 힘이 있다. 결국 주인공 친구의 진심어린 한마디로 주인공은 결국 악을 타파하고, 친구들을 지켜내고, 기억도 찾아내고, 우주를 지키는 역할을 시작하게 된다. 그렇다. 캡틴마블의 탄생이다. 캡틴 마블이 제일 세다고 들었는데, 앞으로의 영화에서 캡틴 마블의 출연에 밸런스를 어떻게 맞춰나갈지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