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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 the Deer Aug 19. 2024

13번째 직장을 다니며 느끼는 것들#1

새로운 사무실은 낯설지만 그래도 익숙한 곳, 직장.

Intro


벌써 두달이 지났다.

보통 새로운 직장에 가면 적응하느라 반년은 걸렸던 것 같다. 생각보다 적응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업무는 물론 주변 환경과 대인관계, 분위기, 루틴 등 생각보다 몸이 적응하느라 애를 많이 쓴다.


나 역시 적응하느라 애를 많이 쓰고 있다. 수많은(?) 이직 덕분에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머리로는 알았지만, 당사자인 내 몸뚱아리는 여전히 애를 쓰고 있다. 퇴근길이면 그리 기쁘면서도 몸은 축축 쳐저서 집에 돌아가곤 했다.


그러면서도 몇가지 느끼는 것들이 있었다.



새로운 사무실은 낯설지만 그래도 익숙한 곳, 직장.


적응은 역시 힘들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하고, 그 사람을 알아가고, 그 사람에게 나를 알리는 것.


으.. 쉽지 않다. (내가 MBTI 'I'라서 그럴 수 있다) 특히, 내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는 과정은 시간이 소모되는 일이기에 쉽지 않다.


내가 있던 곳은 다 나를 알고 있으니, 편하고 마음이 놓이는 부분도 있지만, 새 직장은 다르다. 나의 좋은 면부터 알리는 것이 아무래도 안전하고, 향후 직장생활에도 도움이 되니까. 마치 코르셋을 한 여인처럼 나도 모르게 좋은 면만 보이고자 매사에 조심조심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그러다가 화장실 거울을 보며 혼자 웃곤 한다. '애쓴다 너'라고 말하며 ㅎㅎ)


그러면서도 한편,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된다. '조급해할 필요 없이 나를 차근차근 보여주면 되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예전에는 나의 장점을 어필하고자 노력을 많이 했었다. 그러면서 괜한 오해를 사거나, 불필요한 기대를 일으켜서 오히려 더 힘들어졌던 경험들이 많았다. 그리고, 매사에 피곤했다. 내가 아닌 '장점 많이 가진 나'를 어필하려고 했으니, 힘들었다.


오해를 풀거나 그르친 일을 바로 잡느라 시간을 더 쓰거나 힘들게 연기를 하는 것 보다, 그냥 서서히 나를 알리는 것이 안전하고 매력적인 방법인 것 같다.



서서히 나를 알린다, 당신이 나를 알아가도록.


'밥먹을 때 굳이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나는 'I'이다. 혼자 있어야 충전되는 타입. 굳이 말을 만들어서 하진 않는다. 그리고 밥먹는 시간에 주식시장이나 어제 뉴스를 얘기하며, 상대방과 그리 대단한 관계가 형성되진 않는다. 그냥 '반찬'삼아 하는 얘기들에 어쩌면 나도 상대방의 반찬으로 거기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밥먹을 때 그냥 관심가는 얘기들, 하고 싶은 얘기들만 한다. 하지만, 상대방이 마음에 있는 얘기를 할때는 진지하게 반응한다. 그 때는 절호의 기회다. 왜냐하면 그때는 관계형성이 될 수 있는 골든타임이기 때문이다.


말을 많이 안해서, 나를 과묵하다 할 수 있다. 그럼 그냥 나는 웃으며 '네'라고 한다. 그뿐이다. 과묵하다고 해서 배척당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중에 활발하게 대화하면 '오늘 기분되게 좋아보이네'하며 덩달아 신나하는 상대방을 발견하곤 한다.


'잘 모르는 건 모른다고 얘기한다'


직장에 적응할때, 내가 모르는 부분은 특히 더 들키고 싶지 않다. 사실 다 그렇다. 잘보이고 싶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몰랐다는 것을 나중에 들켰을 때 문제가 더 커진다는 것이다.


모른다고 할때, 상대방의 반응이 신경쓰이겠지만, 괜찮다. 아는척했다가 들통나는 것이 더 힘든일이다. 상대방이 어떻게 곡해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정직하지 않다느니, 왜 아는척하고 난리나느니, 별로라느니. 갖다붙일 수식어들이 많아진다. 특히, '너 모르는구나'로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 '정직' 또는 'integrity' 문제로 불거지는 건 정말 별로인 일이다.


사실 '모른다'라는 말이 자연스러운 excuse로 써먹을 수 있는 때는 입사초반일 때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입사한 지 얼마 안된 신규입사자에게 주어지는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여기서 몇 번 이 주문을 써먹었다. '아직도 이 것을 모르냐' 라는 눈총을 받긴 했지만, 괜찮다. '인성에 문제가 있을지 모른다'라는 말보다 훨씬 낫다.



다시 발견하는 것, 직장의 행복 < 가정의 행복


몸이 힘들었던 적이 있었다. 새벽 2시까지 야근하고, 집에 돌아와 다음날 다시 저녁까지 야근하고 집에 간적이 있다. 허허허 다 그런거지라고 애써 너털웃음을 지어가며 집에 도착했을 때, 첫째가 말했다.


" 아빠, 밥 차려줄까? "


갑자기 모든 피로가 말끔히 사라지며, 눈에 생기가 돌았고, 아이를 향한 놀라운 사랑이 올라왔다. 아이는 무덤덤하게 챙겨주고 있었지만, 그 모습에 나는 큰 감동을 받았고, 사랑을 느꼈다. 아 이게 사랑이구나 라고 탄복하며 말이다.


반대로, 회사에서 거하게 칭찬을 받은 적이 있었다. 퇴근길에 발걸음이 참 가볍고, 미소를 띠며 집에 갔던 것 같다. 역시 인정받고 있어 후후 라고 생각하며, 누구와 부딪혀도 '어휴 바쁜가 보다' 라며 넒은 마음으로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다. 그렇게 집을 왔는데, 아이들이 소리지르며 싸우고 있었다. 별것도 아닌 이유를 가지고 말이다.


이전의 영광은 모두 사라지고, 지옥이었다. 결국 나도 폭발했고, 우리는 그날밤 다 힘들었다.



Outro.


지금 야근하고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13번째 직장이 마지막일까?


ㅎㅎ 알수 없다.


하지만, 예전보다 느끼는 것들은 더 많아지는 거 같다.

무덤덤하지 않고, 그래도 계속 느끼는 점이 있으니 다행이다.


계속 쓸 것들이 생기니까. 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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