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부담을 퇴근길에 떨쳐내지 않으면, 나는 가정에서 이 기운을 뿜어낼 것 같다는 타당성(?)에 기초하여,
짜릿한 액션무비를 골랐다. 그래서 고른 영화가 매드맥스였다.
V8
'V8'을 외치며, 손가락을 깎지끼고 절하는 모습은 굉장히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기발했다. 어찌 보면 매드맥스의 배경에는 차가 전부인 세상이다. 이동하기 위해서는 차 밖에 없는데, 차를 만들 수가 없는 세상이다. 그래서, 기존 차들을 분해, 조립해서 새롭게 차를 만들어 낸다. 정말 귀한 자산인 셈이다. 그래서 그 자산을 운전하는 운전대는 너무 소중한 나머지, 따로 보관한다는 컨셉인 것 같다. 운전대를 잔뜩 쌓아놓은 곳에 깎지끼고 숭배하듯 인사하는 설정이라니.. 설정이 재미있으면서도 뭔가 기발했다.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등장인물들.
등장인물 누구하나, 멀쩡한 사람이 없다. 몸이 성하지 않거나, 병이 있는 환자이거나, 정신적으로 온전하지 못하다. 여주인공은 한쪽 팔의 절반이 없고, 남주인공은 강력한 트라우마로 현실에서 몇초씩 정신을 못차린다. 악역들과 조연들은 말할 것도 없다.
마치 '다 누구나 고통을 안고 힘들게 살아가는 거야. 하지만 Life goes on!' 이라고 감독이 말하는 것 같다.
우리가 사는 현실과 전혀 달라보이지만, 영화속 현실은 사실 닮아 있다. 고통이 없는 사람은 없으니까.
예전에 고통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의 경로가 달라진다는 말씀을 교회에서 들은 적이 있다. 고통으로 인해 우리는 인성이 삐둘어진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베테랑이 될수도 있다. 즉, 마치 진주조개가 고통 속에서 진주를 품어 만들어내는 것처럼 삶의 역풍을 온전히 견뎌낸 사람들에겐 어떠한 종류의 평안이 있다. 나는 이것이 '연륜이 느껴진다'는 표현으로 사람들에게 많이 회자된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영화는 척박한 디스토피아지만, 사실 우리의 내면과 닮아 있는 부분이 있어서인지, 그들의 인상씀과 찌푸림이 그리 낯설지가 않다.
강력한 액션씬.
강력하고 간단하게 한번 설명해보겠다.
'이 영화를 보다가 지하철 정거장을 놓쳤다.'
끝. ㅎㅎㅎㅎ
속도감과 저돌적인 액션이 긴장하게 만들면서도 정말 재미있다. 배경 음악도 참 예술이다. (사실 어제도 한번 더봤다 ㅎㅎ) 후속편인 퓨리오사보다 덜 잔인한데, 더 재미있는 것 같다. (퓨리오사는 좀 잔인하다 ;;;)
예상 가능한 생각: 정말 자연을 보호해야겠다.
식물을 Green이라고 하고, 물을 Aqua Cola라고 한다. 흔한 식물과 물이 아니라 자원이상의 재화가 되어버린 설정은 정말 자연보호를 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보면서 전쟁이 나면 안되겠구나, 자연보호해야겠구나.. 지금 이 시대에 살고 있는게 감사하다라는 생각이 든다.(디스토피아 영화를 보고 얻는 흔한 교훈이지만 중요한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기다림 - 고통 - 회피 - 직면
퓨리오사(여주인공)는 어린시절부터 장성(?)하기까지 탈출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나무랄 곳 없는, 정말 대단한 인내와 치밀함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기다리다 보면 지치고, 고통스러우면 이상한 선택을 하기 마련인데, 그녀는 미치거나 이상해지지않고 또렷하게 목적을 향해 기다려왔다. 내적 승리다.
어쩌면, 이런 것이 뚜렷한 목적의 힘이 아닐까 싶다. 목적이 분명하고 명확할 때, 기다릴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 같다. 아니, 삶의 힘이 생기는 것 같다.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책제목처럼 말이다.
(이하의 글은 스포일러입니다.)
그러나, 그 목적이 바스라졌을 때, 얼마나 괴로웠을까? 퓨리오사에게 정말 아픈 깨달음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낙원이라고 생각하고 간 곳에 결국 낙원이 없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오히려 영화는 너무 간략하게 보여준게 아닌가 한다. 으아! 하고 울부짖는 30초컷으로 끝나는데.. 이게 그녀의 기다림과 그에 따른 허무함과 고통을 나타내기엔 역부족인것 같다.) 기다린 만큼, 기대한 만큼이 고통이 컸을 것 같다.
그 고통 때문이었는지, 퓨리오사는 결국 다른 낙원으로 가자고 한다. 거기에는 낙원이 '있을거라고'한다. 그녀를 리더로 따랐던 이들은 묵묵히 따라 나선다. 그녀의 결심과 의지는 결연해보이지만, 처음과는 다르다. 뭔가 복잡하고 불안함이 따르는 이들에게 느껴졌다. (사실 따르는 이들에게도 대안이 없긴 마찬가지였다) 그 광경에서 퓨리오사는 마치 뭔가 회피하려는 듯 앞만 주시하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낙원이 있을꺼야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길을 나섰을 때, 맥스(남주인공, 톰하디)가 돌아와서 말해준다.
"거기 가면 아무것도 없어. 그냥 사막이야"
"우리가 돌아 갈 곳은, 우리가 나왔던 그 곳이야"
이 말을 들었을 때, 퓨리오사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니가 뭘 알아 임마!"
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았을 것 같다;
(물론 나만 그럴 수 있다;)
그러나 퓨리오사는 달랐다. 그녀는 그 말을 받아들였고, 그들은 돌아가기로 선택한다.
역시, 멋진 퓨리오사.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최근 예배 중에 나온 말씀으로, 뇌리에 확 꽂혔던 말씀이다. (목사님께서 성경말씀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셨는데, 말씀인 줄 알고 '아멘' 했다 ㅋ)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의 이직 중에 '도망침'이 1도 없었을까?
적절한 이직 사유는 언제나 있었다. (회사가 망했다던가, 회사가 지방으로 갔다던가, 힘들(?)다던가 ㅎㅎ)
그러나 거기에 회피하고 싶은 나의 역동이 전혀 없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장애물이 다가올 때 피하는 것처럼, 피하는 것이 분명 있었지만, Esc 버튼 처럼 뭔가 Escape하고 싶었던 역동은 항상 있어왔다. (그러니 13번이나 이직을 했겠지 ㅎㅎㅎㅎ ㅜㅜ)
다행인 것은 가정이나 믿음생활에서 도망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직장의 차원에서는 낙원이 없는 것을 막 발견한 퓨리오사처럼
여기보다는 나을 것 '같다'는 느낌이 몇번의 이직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