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듯 도서관 가기

퇴직과 이직 사이

by As the Deer


어제부터 집근처 도서관으로 출근하고 있다.



아침 8시50분쯤 도서관 문 앞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

짐작컨데, 도서관 문이 9시에 열어서 줄을 서 있는 것 같았다.

나도 줄을 섰다. 많이 와본 사람 처럼.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우르르 계단으로 이동했다.

나도 따라 갔다. (웬지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사람들은 2층에서 여기 저기 흩어졌다.

각자 자기가 원하는 자리가 있나보다.


5초간 망설이다 나는 노트북을 쓸 수 있는 자리를 찾아나섰다.

자리에 가방을 던져놓고, 내 자리를 휴대폰으로 사진 찍어 아내에게 보냈다.


'나 오늘 여기 있을꺼야'라는 뜻으로 사진을 보냈다. (혹시 아내가 걱정이라도 할까봐)




#1


자리에 가방을 던져놓고, 이곳 저곳 다녀보기 시작했다. 어디에 뭐가 있는지, 내가 누릴만한 것은 뭐가 있는지 찾아봤다. 그러면서 눈에 들어온 것이 몇가지가 있다.



평일에도 도서관에는 사람이 많다.


한 30분쯤 지났을까. 도서관 좌석이 거의 꽉 찼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아서 놀랬다. 한가지 인상깊었던 것은 다양한 연령대다. 취준생으로 보이는 젊은세대부터 내 또래로 보이는 사람들, 그리고 노년층이 많이 보였다.


취준생 및 공무원 준비 하시는 분들은 다들 바빠보였다. 책도 이만큼씩 쌓여 있고. 아마 저녁에나 집에 돌아갈 모습이었다. 열심히 하는 모습이 웬지 기특해보였고, 부럽기도 했다.


내 또래로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 호기심과 궁금증이 많이 생겼다. 왜 여기에 있을까? 그들도 나처럼 퇴사를 하고 온 걸까?그들과 눈이 마주치면 그들의 눈도 살짝 놀라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뭔가 반갑게 인사라도 나누면 좋을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현실에선 불가능했다. 그들의 표정은 다들 근엄한 표정이었다. (나도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니 내 표정도 근엄한 표정이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적절하게 셋팅된 얼굴표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이가 되도록 쌓여왔던 고통과 자기방어적이면서도 약간의 디펜스 성격의 근엄한 표정인 것 같다. 반갑긴 했으나, 그들의 마음은 알 수 없으니 당연히 눈 마주치고, 눈은 다른 곳으로.... 다만,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궁금하기 때문에, 그들이 뭘하는 지는 은근히 보았다. 맞은 편에 앉아있으면 굳이 빙 돌아서 뭘 하는지 슬쩍 보았다. 어떤 자격증을 공부하거나, 부동산 관련 공부를 하는 모습들이었다. 딱히 특별한 건 없었다. 예상 범주 내에 있었다.



은퇴자분들과 노인분들이 정말 많았다.


어떤 노인분을 보게되었다. 화장실 가까운 곳에 계셔서, 오며 가며 지나쳤는데, 그 분은 자리에 앉아서 책을 읽는 것 같지 않았다. 책은 들고 계셨으나, 그분은 사람구경을 하시는 것 같았다. 지나가는 사람의 표정, 행색을 관찰하고 계셨다. 이따금씩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고 휴대폰을 확인하다가 다시 자리에 앉고는 이곳 저곳을 쳐다보시곤 했다.


많은 노인분들이 계셨다. 그분들은 딱히 어떤 목표를 가지고 오신 분들 같지 않았다. 그냥 한가로이 오신 분들 같기는 한데.. 뭔가 안쓰러웠다. 내 옆에서 책을 읽으시던 분은 한 5분 책을 읽다가 한숨을 푹 쉬시고, 창문을 바라보고. 또 책 읽다가 한숨을 푹 쉬시고 창문을 바라봤다. (꽤 신경쓰였다) 가끔씩 나를 쳐다보는 것 같은 불편한 시선이 느껴지기도 했다.


어떤 노인 분은 한없이 지루한 표정이었다.

어떤 노인 분은 졸고 계셨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어디선가 내쉬는 한숨 소리가 들리고 있다)



#2


은퇴자분들과 노인분들의 얼굴을 보며 자연스럽게 자기 성찰을 하게 되었다.


은퇴.


그 어느때보다 가깝게 와닿는 느낌의 단어다. 멀리 있는 것 같았으나, 이제는 내 삶으로 비집고 들어온 것 같다.

(그 느낌이라면, 마치 누군가가 은퇴 라고 큰 글씨로 쓴 종이를 내 눈 앞에 내밀고 있고, 나는 굳이 저기 왼쪽끝을 바라보며 안보려고 하는 느낌이다)


은퇴. 내 또래라면 누구나 할 고민이다.

나 역시 다시 어디라도 이직을 해야할지, 아니면 뭘 해야할지 고민하고 있다.


그런데 선뜻 이직으로 향하기가 쉽지 않다.

이제는 어느 조직이든 가서 책임을 지는 자리로 가야하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또 나와야하는 그 조직에 내 에너지를 쏟아 뭔가를 하기엔, 받게 될 월급이 한시적이라는 생각이 지금은 지배적이다. 결국 내가 일한만큼만 또는 그것보다 적게 월급을 가져가게 될텐데.


내 노동력은 앞으로 한계가 있다. 길어야 몇 년. 그 시간들을 회사에서 주는 급여와 치환하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아직 내 머릿 속에 지배적이다. 급여가 많건 적건, 그 사용되어진 시간으로부터 받는 급여가 나의 노년을 다 보상해줄까?





아니다.



나는 오늘 도서관에서 이것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


내가 여기서 만난 노인 분들과 중장년층분들은 분명 가정을 위해 치열하게 삶을 살아내신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분들이 마주하고 있는 지금은 주체할 수 없이 넘쳐나는 시간이다.


항상 직장에서 주어진 task에 정신없이 과업을 시간별로 쪼개 해냈지만,

이제는 task는 없고 넘쳐나는 시간들에 둘러 쌓여 있다.

넘쳐나는 시간들을 마치 task처럼 쳐내기 바쁜 것 처럼 보였다. (일을 쳐낸다는 표현을 종종하곤 했다)

그분들의 힘없는 발걸음과 책읽는 모습이, 시간이 가기를 바라는 모습들로 비춰져서 한 편으로는 마음이 짠했다.


한편으로는 긴장된다.

나는 과연 어떤 노년을 보내게 될까?

나는 그 넘쳐나는 시간들을 향한 준비가 되어있을까?

그리고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아.. 그래.



중요한 건 무엇을 준비하느냐에 대한 부분이다.




#3


'은퇴 후 어떻게 현금흐름을 만들 것인가'


유튜브에 가장 많이 뜨는 영상이기도 하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쪽집게처럼 알고 띄워준다)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 나는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은퇴 후에 '현금흐름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치우진다면, 나의 인생을 '먹고 사는 문제'로만 셋팅하게 되는 문제가 생길 것 같다.


그렇게 되면...



나느 다시 또 은퇴를 꿈꾸지 않을까?



그렇다고 FIRE족이 되어 현금흐름을 자랑하며 매일 쉬며 여행하는 것도 아닌거 같다. (매일 쉰다고? 매일 쉬다 보면 쉬는 게 아마 일이 될 것이다.)




예전에 목사님 설교에서 이런 말씀을 들었다.


"인간은 무엇인가에 자신의 존재를 기투하도록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헌신의 모습을 띠게 됩니다."


처음 들었던 말이지만, 100% 알아들었던 말이었다.



맞다.


그래서 부르심이라는 단어, 콜링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가 남다른 것 같다.


'무엇을 하도록 지어진 존재'


생각만해도 짜릿하다.


왜냐하면, 지난 18여년간의 직장생활,14번의 이직에 대한 해답이 될테니까.

(어쩌면 알게 된 그 순간 눈물이 핑 돌 수도 있다 ㅎㅎ)



목적에 대해.


예전에 봤던 영화 중에 아이로봇이라는 영화가 있다 (윌스미스 주연, 2004년)


마지막 부분에 아주 감명깊게 본 장면이 있다.

주인공 로봇 Sonny가 nanite라는 바이러스 칩을 꺼내기 직전의 대화이다.



"Do you think we are all created for purpose?

I'd like to think so."


Sonny가 자신의 팔을 보며 말한다.


"Denser Alloy. My father gave it to me"


(※ 참고: Sonny의 팔만 다른 로봇들과 다르게 강철 합금(?) 으로 만들어졌다. Nanite는 손을 뻗으면 손이 부식되는 통에 담겨있는데 Sonny의 팔은 그 부식을 견디게 만들어졌다)


그리곤 팔을 뻗고, 자신의 목적을 이뤄나가기 시작한다.



20대에 본 영화인데도,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팔을 이리저리 돌려보고 살펴보며, 손을 집어넣을때, 분명 기쁠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던 것 같다.


"삶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는 느낌"


어쩌면 나는 그 기쁨을 지금까지 기다리는 것 같다.



부르심을 찾고, 그것에 나를 기투하는 삶.


그곳엔 분명

삶을 생동감있게 만드는,

그리고 시간을 온전하게 사용하게 만드는 힘이 있을 것 같다.



시간이라는 유한한 자원을 만족스럽게 소비하는 느낌.


아마 시간이 모자란다고 느낄 것이다.

여유라는 것을 찾기 위해 애쓰게 될 것이고, 시간을 안배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얼굴에는 생기가 넘칠 것 같다.



그리고, 여유를 정말 여유답게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따라

저 Sonny가 참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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