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회사 가야 되지 않아?

by As the Deer


둘째를 데리고 병원에 가는길에 둘째가 먼 산을 바라보며 무덤덤한 듯 말했다.

평소에 속얘기를 잘하지 않는 아이라, 이틀간 집에 있는 아빠를 보고 생각한 것을 꺼낸 것 같았다.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뭐라고 해야할지 할말이 생각이 안났다.


한 10초 후에 이렇게 말했다.


" 응 그래 가야지. 아빠도 다 생각하고 있어"




점심에 먹으려고 목살을 사왔다.

맛있게 구워먹고

소파에 앉아서 아이들과 딸기를 먹고 있었다.


시간은 오후 2시.

회사에 있다면 정신없이 일을 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졸음을 이겨내면서)


첫째가 말했다

"나는 아빠가 집에 있으니 너무 좋아"

중1 올라가는 딸이 이렇게 말해주다니, 나는 일단 합격선상에 있는 아빠가 아닐까라는 착각에 빠져들었다.

입꼬리는 당연히 귀에 올라갔다 (다시한번 special thanks to 시티힐아카데미)


둘째가 말했다.

"나는 안좋아. 아빠가 회사에 가면 좋겠어"

오늘 두번째로 듣는 얘기였다.


"야, 그래도 좋잖아 아빠 있어서"

"그래, 그런데 나는 아빠가 일하면 좋겠어"


어쩌면 장모님도, 우리 엄마도 하고 싶었던 얘기를 둘쨰가 알아서 얘기해주고 있다.


역시 웃음이 났지만 마냥 좋지는 않았다 ㅎㅎ.


내가 브런치를 시작할 정도로,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직장생활이었다.

직장생활이 담고 있는 여러가지 의미 설명하자니 엄두가 안났다.


마치 햇빛을 프리즘에 비추면 무지개 색깔이 나오듯,

돈버는 것 이상의 여러 의미를 담는 직장생활을

초6 어린이에게 말하기에 시간도 부족했다.

(내가 말을 길게하면 아이들이 싫어한다. 5마디 넘어가면 잔소리가 되는 듯 하다)


"아빠가 회사를 가거나, 돈을 벌거나 할꺼야. 너무 걱정하지 마"


딸기가 깨끗이 비워진 접시를 치우며 아이들에게 말했다


"일단은 이 시간을 누리자"


동문서답 같지만, 내 진심이기도 했다.

이 시간을 누리고 싶었다.





다시 오지 않을 이 시간.



지금 이 시간 (아빠가 백수고, 아이들이 방학인 이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손에 모래를 담으면 어느샌가 스르륵 빠져나가는 모레 처럼

담아 둘 수 없는 이 시간들 말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어느새 저녁이 되었다. 나는 책을 본답시고 누워있다가 거의 잠들기 직전이었다. 그때, 아이들이 안방으로 두두두두 달려왔다. 나는 "뛰지 마 뛰지 마"를 연신 외쳤다.


아랑 곳 하지 않고 아이들은 키득거렸고, 첫째는 다리를 베고 눕고, 둘째는 팔을 베고 누웠다. 몸은 살짝 불편했지만, 마음은 참 편했다.


"아빠, 내일 뭐 해?"

첫째가 물어봤다.


"글쎄.. 내일은 중고서점이나 갈까? 공원도 가고"

"좋아!"


둘째는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래도 싫지 않은 눈치였다. (눈으로 웃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다시 회사로 돌아가든, 다른 일을 시작하든, 결국 이 순간을 추억하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다.


아니 알고 있는 것이 흐트러지지 않게 자꾸 마음에 새기고 있다. 우리 첫째, 둘째 아이들의 볼을 만지면서. ㅎㅎ (나중에 아마 못만지게 할 것 같다 ㅎ)


놀 줄 아는 사람이 논다고 ㅎㅎ 이 시간을 누리려고 노력 중이다.

그래서 지금은 그냥 이 시간을 누리려고 한다. 오늘처럼 아이들이 잠들어 조용히 숨 쉬는 소리를 들으면서 말이다.


아이들이 잠든 뒤, 거실에 혼자 남아 창밖을 봤다.


밤하늘에 별이 희미하게 보여서 다행이다.



이 시간이 다시 오지 않는다는 거,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조금만 더 누리려고 한다.



"Chi va piano, va sano e va lontano."(천천히 가는 사람이 건강하게 멀리 간다.) — 이탈리아 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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