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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40s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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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 the Deer Jul 06. 2022

소나기에게 당했다

아이들을 데리러 가야 하는 임무(?)를 띠고 커피숍에 앉아있었다. 어떤 아저씨가 우산을 갖고 들어오길래 밖을 보니 비가 오고 있었다. (물론 나도 아저씨다) 아침에 날씨 어플 봤을 때는 비 소식이 없었는데 이상했다. 다시 어플을 보니 역시 비 온다는 그림이 없다. 근데 그림 밑에 한 줄로 쓰여있다.


"곳곳에 소나기 올 수 있으니 우산 챙기세요"


뭔?


비가 제법 왔다. 평소 같으면 그냥 기다렸을 것이다.

그런데 불안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들에게 전화가 왔다. 알겠다고 하고 창밖을 보니 비가 좀 약해졌다. 그냥 우산 없이 걸어 다니는 분도 한두 분 보였다. 그래서 나도 길을 나섰다.


편의점에서 우산을 살까 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때,

"여보 우산 좀 그만 사!"

라고 외치던 아내의 목소리가 생각났다.


순간 기분이 별로였다.

'흥! 안 사!'라고 말하는 표정이 저절로 지어졌다.

나는 필요할 때 사는 것 같은데 아내가 보기엔 아닌가 보다. 그래서 오늘은 안 사기로 했다.


조금 길을 가는데 굵은 빗방울이 툭툭 떨어졌다.

뭐지? 했는데 계속 툭툭 떨어졌다.

앞에 보니 어떤 아저씨가 나무 아래 비를 피하고 서계셨다. (물론 나도 아저씨다) 나도 그 나무로 들어갔다.


툭툭. 비가 계속 떨어진다. 나도 아저씨도 각자 앞만 쳐다보고 있다. (왠지 말을 걸어야 할 것 같은 근거리였다) 바로 그때, 장대비가 쏴아 쏟아지기 시작했다.


쏴아-


정말 쏟아졌다.

'나무야 제발 버텨줘'라고 속으로 빌며 나는 초조하게 기다리기 시작했다. 옆을 보니 사람들이 막 뛰어다닌다.


툭 툭 툭-


어느새 나무를 뚫고 비가 내 뒷머리를 적시고 있다.  내 마음도 모르고 비는 그칠 줄을 모른다.

어느새 와이셔츠가 젖어서 팔과 어깨에 딱 붙었다.

구두도 다 젖었다. 바지도. 

아이들이 계속 전화하는지 전화기로 계속 진동이 온다.


아오...


고민이 된다.

갈까? 말까?


그때

"에에이~~"

옆에 있던 아저씨가 소리를 내며 뛰어나간다. 손으로 비를 가리며.


그 광경이 우스워 10초 정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도 용기를 내어 합류했다.

"에에이~~~"


편의점으로 뛰어갔다. 우산을 4개를 샀다. 내 꺼, 아이 둘 꺼, 아내 꺼. 그리고 아이들을 데리러 갔다.

문자로 아내에게 비가 와서 우산을 샀고, 아이들과 함께 당신을 마중 나가겠다고 했다. (아내는 고마워했다. 흥 당연히 그래야지)


아이들과 옆에 있던 사람들이 나를 쳐다본다. 생각보다 많이 젖었나 보다. 아이들이 재미있어했다. 아이들이 좋아하자 나도 덩달아 허허허 좋았다. 그런데 불현듯 나는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비가 그치면 안 되는데'


아이들과 새로 산 우산의 포장을 벗겨내고 우산을 쓰고 집으로 향했다. 빗줄기가 약해졌다. '안돼. 더 세게 와야 해.'라고 속으로 외치며 갔다.

"아빠, 햄버거 사줘"

둘째가 말했다. 며칠 전부터 약속했던 거라 노브랜드에 가서 햄버거를 하나 사 갖고 나왔다. 그 사이 비가 더 가늘어졌다.

"안돼 비가 와야 돼 내가 집에 갈 때까지!"라고 내가 허공에 말하자 아이들이 키득거렸다.


비가 거의 그쳤다. 사람들이 우산을 접기 시작했다.

"아빠 기분 안 좋겠다~" 첫째가 말했다.

"아니야~ 괜찮아"라고 말했다.

사실은 기분이 안 좋은 게 아니라 화가 났다.


아내를 만났다.

"아빠가 비가 그쳐서 화가 났구나"

아내가 말했다. (역시 아내는 다 안다)


집으로 가는 길, 나는 혼자 성큼성큼 걸어갔다. 아이들과 아내는 뒤에서 오늘 있었던 일을 재잘재잘 얘기하며 걸어왔다.


일기를 쓰고 있는 지금. 이불 킥을 두 번 했다. 왜 나는 소나기 때문에 화가 났으며 그게 다 들통이 났는가 ㅜㅜ (소나기에게 당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마음이 넓어지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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