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데리러 가야 하는 임무(?)를 띠고 커피숍에 앉아있었다. 어떤 아저씨가 우산을 갖고 들어오길래 밖을 보니 비가 오고 있었다. (물론 나도 아저씨다) 아침에 날씨 어플 봤을 때는 비 소식이 없었는데 이상했다. 다시 어플을 보니 역시 비 온다는 그림이 없다. 근데 그림 밑에 한 줄로 쓰여있다.
"곳곳에 소나기 올 수 있으니 우산 챙기세요"
뭔?
비가 제법 왔다. 평소 같으면 그냥 기다렸을 것이다.
그런데 불안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들에게 전화가 왔다. 알겠다고 하고 창밖을 보니 비가 좀 약해졌다. 그냥 우산 없이 걸어 다니는 분도 한두 분 보였다. 그래서 나도 길을 나섰다.
편의점에서 우산을 살까 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때,
"여보 우산 좀 그만 사!"
라고 외치던 아내의 목소리가 생각났다.
순간 기분이 별로였다.
'흥! 안 사!'라고 말하는 표정이 저절로 지어졌다.
나는 필요할 때 사는 것 같은데 아내가 보기엔 아닌가 보다. 그래서 오늘은 안 사기로 했다.
조금 길을 가는데 굵은 빗방울이 툭툭 떨어졌다.
뭐지? 했는데 계속 툭툭 떨어졌다.
앞에 보니 어떤 아저씨가 나무 아래 비를 피하고 서계셨다. (물론 나도 아저씨다) 나도 그 나무로 들어갔다.
툭툭. 비가 계속 떨어진다. 나도 아저씨도 각자 앞만 쳐다보고 있다. (왠지 말을 걸어야 할 것 같은 근거리였다) 바로 그때, 장대비가 쏴아 쏟아지기 시작했다.
쏴아-
정말 쏟아졌다.
'나무야 제발 버텨줘'라고 속으로 빌며 나는 초조하게 기다리기 시작했다. 옆을 보니 사람들이 막 뛰어다닌다.
툭 툭 툭-
어느새 나무를 뚫고 비가 내 뒷머리를 적시고 있다. 내 마음도 모르고 비는 그칠 줄을 모른다.
어느새 와이셔츠가 젖어서 팔과 어깨에 딱 붙었다.
구두도 다 젖었다. 바지도.
아이들이 계속 전화하는지 전화기로 계속 진동이 온다.
아오...
고민이 된다.
갈까? 말까?
그때
"에에이~~"
옆에 있던 아저씨가 소리를 내며 뛰어나간다. 손으로 비를 가리며.
그 광경이 우스워 10초 정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도 용기를 내어 합류했다.
"에에이~~~"
편의점으로 뛰어갔다. 우산을 4개를 샀다. 내 꺼, 아이 둘 꺼, 아내 꺼. 그리고 아이들을 데리러 갔다.
문자로 아내에게 비가 와서 우산을 샀고, 아이들과 함께 당신을 마중 나가겠다고 했다. (아내는 고마워했다. 흥 당연히 그래야지)
아이들과 옆에 있던 사람들이 나를 쳐다본다. 생각보다 많이 젖었나 보다. 아이들이 재미있어했다. 아이들이 좋아하자 나도 덩달아 허허허 좋았다. 그런데 불현듯 나는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비가 그치면 안 되는데'
아이들과 새로 산 우산의 포장을 벗겨내고 우산을 쓰고 집으로 향했다. 빗줄기가 약해졌다. '안돼. 더 세게 와야 해.'라고 속으로 외치며 갔다.
"아빠, 햄버거 사줘"
둘째가 말했다. 며칠 전부터 약속했던 거라 노브랜드에 가서 햄버거를 하나 사 갖고 나왔다. 그 사이 비가 더 가늘어졌다.
"안돼 비가 와야 돼 내가 집에 갈 때까지!"라고 내가 허공에 말하자 아이들이 키득거렸다.
비가 거의 그쳤다. 사람들이 우산을 접기 시작했다.
"아빠 기분 안 좋겠다~" 첫째가 말했다.
"아니야~ 괜찮아"라고 말했다.
사실은 기분이 안 좋은 게 아니라 화가 났다.
아내를 만났다.
"아빠가 비가 그쳐서 화가 났구나"
아내가 말했다. (역시 아내는 다 안다)
집으로 가는 길, 나는 혼자 성큼성큼 걸어갔다. 아이들과 아내는 뒤에서 오늘 있었던 일을 재잘재잘 얘기하며 걸어왔다.
일기를 쓰고 있는 지금. 이불 킥을 두 번 했다. 왜 나는 소나기 때문에 화가 났으며 그게 다 들통이 났는가 ㅜㅜ (소나기에게 당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마음이 넓어지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