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의 재발견 #10 절망의 심연

by As the De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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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로 내려가는 새벽길.


이제 더 이상 맥도널드가 먹고 싶지 않았다.


진절머리가 났다. 그냥 빈 속이 나았다. 월요일 회사에 가도 오전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다. 잠이 부족한 것도 있겠지만 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정말 몸을 지치게 했다. 편도로 2시간반에서 3시간 거리였다. 월요일 오전 회의는 거의 잠과의 사투였다.


사람들은 아직도 지방이전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나는 굳이 말하지 않는다. 이미 온몸으로 체험하고 있기 때문에 입으로 되새김질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화가 날 뿐이다. 물론 부부가 함께 지방으로 온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아내는 직장을 다니고 싶어 했다. (참고로 아내는 이직을 한 번도 안 했다)


밤에는 이제 아내의 전화를 되도록 안 받으려고 한다. 아이가 울면서 전화하는 것일 테니. 그것을 다 알고 있으니, 전화가 오기만 해도 마음이 아팠다. 이제는 고통을 잊으려 주구장창 영화만 본다. 야심 차게 샀던 투자 관련 서적은 이제 라면 냄비 받침대가 되어 표지가 너덜너덜해졌다. 영화를 보며 라면을 먹으니 라면도 무한대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보고 나면 밀려오는 허탈감. 그리고 라면으로 인한 기분 나쁜 포만감. 스트레스가 쌓여갔다.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어쩌면 벗어나기 위해 영화를 본 거 같다. 그러나 이제는 더 강한 자극이 필요했다. 더 말초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방법. 일탈과 현실의 경계에 있는 것들.


그러나, 일탈 뒤에 다시 돌아가야 할 원위치에 서는 건 너무 괴로운 일이다. 시원하게 일탈한뒤, 내가 다시 서야할 자리, 지켜야 할 자리에 다시 서야만 할 때 나에게 요구되는 건 페르소나이다. 나를 아름답게 포장하고 있는 그것.


나는 위선이 너무 싫었다. 잠시 분출되는 시간을 통해 고통이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오히려 더 큰 자극을 쫓을 뿐이다. 고통을 상쇄하기 위한 자극. 그리고 다시 서야할 자리에 섰을때, 가면을 써야 하는 고통. 그 더해진 고통을 해소하기 위한 더 큰 자극. 악순환이 반복되고, 묘한 줄다리기가 펼쳐진다. 위선과 정상 사이.


물론 위선을 정당화시키는 문장이 있다.


'다 그런거 아냐?'


그런데 ' 다 그런거 아냐?'를 한 열번 정도 하면... 결국 끝까지 가게 된다.


끝을 맛보고 돌아오는 방법이 있고, 지혜를 통해 아예 그길의 초입에 들어서지 않는 방법이 있다.

들어서지 않는 방법을 택하고 있지만, 손이 부르르 떨리고, 눈이 뒤집힐 정도로 괴로웠다.


길의 초입이고 뭐고, 집어치우고, 그냥 현실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이제 서울로 복귀하는 것에 대한 기대감은 거의 사라졌다. 회사의 입장은 변화가 없다.


입에서 나도 모르게 욕이 나온다.


느껴진다. 내 몸 안에 쓴 것이 가득하다.


어느 날 아침에 자취방에서 일어났다. 분명 의자에 앉았는데 몸이 천근만근이다. 어떤 무거운 것이 나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는 상황. 그 때 적시에 찾아오는 무력감. 그 무력감에 더해지는 현실의 자각. 마음이 한없이 꺼지는 것 같았다.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간밤에 온 전화를 확인해보니 부재중 전화가 5통 찍혀있었다. 아내였다.


후-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안았다가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았다.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고, 순간 덩그러니 의자에 놓여있는 나 자신이 보였다. 시간은 7시. 한창분주하게 출근준비를 해야할 시간에 꼼짝할 수 없는 무력감에 휩싸였다.


'나 XX, 여기서 뭐 하는 거지?


나는 XX 무엇을 위해서 여기에 있는 거지?'


'이런 XXXXXXXXXXXXX.

정말 XXXXXXXXXXX 같으니.

으아아아아아아아악!!'


쓴 것이 가득했다. 입을 통해 나오는 한탄과 욕설은 다시 나의 귀를 통해 나에게 인식되었다. 작은 숙소에 그 말들이 뱅뱅 돌아 다시 나에게 계속 돌아와 반복되는 느낌이었다.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아 진짜 X같네'


침묵이 흘렀다. 패잔병 같았다.


누군가가 내리쳐도 저항할 힘 같은 건 없었다.


일어날 힘이 없을 정도로 낙심이 되었다. 그냥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하루는 휴가를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대로 방바닥에 고꾸라지고 누워버렸다.


'기대는 무슨. XX X다'


눈을 반쯤 뜨고 휴대폰을 찾았다. 찾는것이 1초 지체될때마다 입에서는 계속 욕을 중얼거렸다.

팀장님께 전화드리려고 휴대폰을 집어 들었을 때 H에게 연락이 왔다.


울컥했다.


H는 내 고통을 잘 알 것 같기 때문이다.


나는 흐느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