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미쳐버리겠네요. 너무 괴롭고 답답합니다. 정말 미쳐버리겠어요..'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죠? 왜 저에겐 이런 일이 일어나죠? 미쳐버리겠어요! 왜 저만 그런 거죠?'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죠? 왜 저만 이런일이 생기는 거죠? 내가 무슨 죄를 지었죠?'
'저는 버티면 된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면 정상화될 거라생각했어요. 설마 그럴리가 있겠나 싶었는데 하 참나'
거의 소리지르다 싶이 얘기했다. H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H에게 쏟아냈다.
'저는 가벼운 마음으로 갔어요. 이번에는 그만두지 않고 다른 선택을 했으니, 뭔가 다르겠지라고요. 퇴사하지 않은 것을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이대로는 사는 건 말이 안되니,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 계속 꿈을 꾸고 있었어요. 왜냐하면 이번에는 퇴사하지 않았어요. 맞아요 나는 포기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번에도 오답이네요.. 또 틀렸어요.'
'제 잘못이네요. 내가 XX 같았어요. 내가 너무 안일했네요. 코흘리게 같이 이딴걸 기대하다니...저는 곧 모든 것이 나아지리라 기대했어요. 이 생활이 곧 끝날 것에 대한 기대감이라고 해야 될까요? 막연히 기다렸습니다. 생각해보니 철부지가 따로 없네요 XX같으니'
'그 빌어먹을 기대가 나를 갉아먹고 있었어요. '설마 언젠가 돌아 가겠지' 라며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현재에 나 자신을 갈아 넣고 있었어요. 계속 현재를 소비했습니다. 빨리 지나가라.. 빨리 지나가라... 이러면서요. 현실을 계속 부정한거죠. 언젠가 그 기대가 현실에 나타나고, 현재를 바꿔버릴 것이라고 생각하면서요.'
'막연한 기대인 걸 알면서도, 그걸 버리지 못하네요. 설마, 혹시 에이 그래도 가겠지 이런 안일한기대를 하다니, 내가 바보 였고 XX였습니다. 사방이 막혀있는 느낌입니다. 답답하네요.'
방언하는 사람처럼 말을 쏟아내었다. H는 말이 없다. 수화기 너머로도 정적이 흘렀다.
H가 무슨 죄가 있나. 그에게 미안했다.
안에서 묵직한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기름칠을 한듯 미끄러지듯 자연스럽게 나왔다.
'퇴사 밖에 답이 없어요'
'요' 라는 말과 함께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 때 H도 피식 웃었다.
'근데, 저 벌써 퇴사를 5번이나 했어요. 여기서 퇴사했다가는 저는 이제 끝이에요
더 이상 아무 데도 못 갑니다. 저를 아무도 안 쓸 거예요. 퇴사를 너무 많이 해서 안 뽑을 거예요'
그 때, 가정은 어떤지 H가 물었다.
'아.. 가정이요.. 거의 뭐 초토화되었어요. 주말에 가면 아내와 많이 싸우게 됩니다. 아내도 일이 너무 많아서, 많이 지쳐있어요. 애들을 간신히 보고 있는데 무척 힘들어 보입니다. 저도 힘들고요.'
H가 물었다. 회사에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응?
바라는 거?
나는 말문이 막혔다. 딱히 바라는 게 있었나.
이제는 돈 버는 거 말고 바라는 게 없다. 괴롭고, 힘들기만 하니까.
그럼 돈 때문에 내가 이 고생을 하고 있나?
아니다.
사실 아내 때문이다. 아내가 더 다니라고 했으니까.
순간 아내를 향한 원망이 솟구쳤다.
원망의 감정이 언어화 되기 시작했다.
모든 불길이 아내를 향하기 시작했다.
'나를 무시하는 아내 같으니!'
이번주에 가서 쏘아붙여야겠다고 생각할때쯤, H가 말했다.
'근데 퇴사라는 방법이 있는데, 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거니?'
화가 치밀어올랐다. 아까 말했잖아. 퇴사를 많이 했다고.
'너 퇴사 경험자 잖아. 해봤는데, 왜 이번에는 망설이는 거지?'
'누가 하지 말라고 막는 것도 아닐텐데. 어차피 니가 결정하는 거잖아'
'너가 여기서 퇴사하면 잃는게 뭐지?'
H가 몰아부치듯이 말했다.
한숨이 나왔다. 아... 퇴사 안되는데.
아 퇴사 안되는데 라고 생각하면서 뒤에 따라오는 문장이 있었다.
'여기서도 퇴사하면 답이 없어.
망.한.연.쇄.퇴.사.자.'
눈을 질끈 감았다.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실패자.'
그래 이거다.
너무 싫다. 이것만큼은 피하고 싶다.
'실패자가 되기는 싫어요'
'실패자의 뜻이 뭔데?'
나랑 지금 뭐하자는 거지? 아니다 지금 나에겐 H밖에 없다.
으.. 머리가 복잡해졌다. 정의?
'내가 맞춰볼까? 니 정의로 따지면, 결국,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지 않으면 다 실패자 아니야?'
무슨 얼어죽을 피라미드란 말인가. 라는 생각이 처음에 들었지만, 맞는 말이었다.
끝없이 비교하며 살아왔다. 일생을 비교하며 살아온 것 같다. 학교에서도, 친구들과도, 누구하나 비교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아마 나는 계속 비교할 것이다. 여기서 성공하면 조금 더 나은 성공으로.
여기서 입신양명하면 조금 더 나은 입신 양명으로.
그럼 결국. 재벌 총수 수준이 되지 않은 이상 다 실패자다.
내가 만족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아니다. 비교라는 것이 마법이고 저주다.
비교의 끝은 제한이 없다.
결국 이 상대적인 비교는 둘 중에 하나 선택해야 한다.
- 나보다 못한 사람을 보고 즐거워하거나.
- 아니면 넘지 못한 벽을 바라보고 비관하거나.
둘 다 삶을 불행하게 만든다.
H의 말에 동의가 되었다.
그럼 보자. 재벌 총수, 이재용님은 행복할까?
아니다. 그건 확신한다. 수많은 일과 의사결정사항이 있을 것이다. 그에게는 쉴 시간이 정말 없을 것이다.
물론 쉴때 만큼은 제대로 플렉스 하겠지만, 강도에 비하면 한달을 쉬어도 부족할 것 같다.
'아.'
'올라갈..필요가 없는 거였나?'
작은 깨달음이 온 것처럼 느껴졌다. 순간 피라미드의 정점에서도 발견할 공허가 발견되었다.
'니가 원하는게 뭐 인거 같아?'
그 음성은 마치 수화기 너머의 H가 내 눈을 뚫어져라 보는 느낌이었다.
마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진짜 원하는게 뭐지?
스르륵 눈이 감겼다.
찾고 싶었다.
내가 찾는 것을 찾고 싶었다.
수화기 너머도 조용해졌다. 아침이라 오피스텔도 조용했다.
조용했다. 적막이 흘렀다.
그때 나의 귓가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맴돌았다.
그리고 아내의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낄낄대는 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