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의 재발견 #12 행복, 재발견

by As the Deer



'지금 가정이 제일 필요한 사람은 너야.'


눈에서 눈물이 고여서 앞이 잘 안보였다.


나는 가족을 챙겨야하는 대상으로만 생각했다.


웬지 미안했다. 얼굴이 일그러지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성공이 나쁘겠어?

아니야.

"사랑이 없으면 무엇을 하든 울리는 꽹과리" 라는 성경 말씀이 있어.

요란하지만, 결국 시끄럽기만 하지.'


'너는 지금 정서적인 공급이 필요해.

마음이 메마르고, 건강하지 않으면 모든 건 찌그러져 보일꺼야.

마치 깨진 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처럼.

거기서 달려봤자, 요란하기만 하지, 너의 속은 점점 뒤틀려갈꺼야.


'너의 일상이 꽹과리가 되지 않으려면, 니가 채워져야 해.

그리고 채워진 상태에서 얻는 성공은 정말 건강하고 좋은 성공일꺼야.

제대로된 안경으로 보면서 선택한 성공일 테니까.

왜냐하면 꽹과리를 잠재우려고, 움켜쥐려고 잡은 성공이 아니잖아

열매처럼 자연스럽게 시절을 따라 맺히는 성공이 진짜 성공이야.'


마음이 먹먹했다. 어쩌면 이런 얘기를 정말 듣고 싶었던 것 같다.


'이러다가 니가 일탈로 빠지는건 시간문제야. 그게 아니면 너의 정서, 마음 한 부분은 망가져버리고 말거야.

매일 전화를 받는 건 너에게 다행스러운 일이야. 아이들은 정서가 아직 사회화되지 않았어. 아이들이 매일 전화하는 건 마음의 정상적 반응이야. 아이들이 너의 정서를 계속 깨운거야.

보고 싶은 거 당연한 거 아니야 가족인데?'


마음이 더 먹먹했다.


H가 말했다.


'사람이 죽을 때, 눈 감기 직전에 본능적으로 눈을 감지 못한데. 그러다가 기억 속의 어떤 장면들이 필름처럼 지나간대. 그 장면들은 그 사람이 큰 상을 타거나, 크게 돈을 벌었거나, 좋은 차를 샀을 때가 아니래. 그 장면들은 그가 사랑받았던 순간들이래. 사랑받았던 장면들이 필름처럼 지나가고 나면 비로소 사람이 눈을 감는다고 해.'


'너는 결국 종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어.

인생은 소풍이라고 말하는 시도 있잖아.

사랑의 기회들을 잡아. 가족은 너의 소풍을 풍성하게 해 줄 기회야.'


'인생은 마치 고운 황금으로 채워진 모래시계와 같아. 순간순간이 누적되어 너를 만들어 가는 거야. 그리고 그 순간은 다시 되찾을 수 없어.

특히 사랑이 만져지는 순간들이 있어. 특히 가족들하고 말이야. 그 순간들을 잘 잡아.

마치 직장에서 주는 인정으로 우리는 채워지는 것 같지만 아니야. 그것은 중요하지만 삶의 필수 요건은 아니야.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든 아니든, 우리는 공허를 채워줄 건강한 무엇이 필요해.

가족은 특별해.'


'왜냐하면, 그 순수한 사랑을 제한 없이 주고받는 관계이거든. 존재 자체에 대한 사랑, 순수한 사랑, 그 자체의 사랑말이야.

존재 자체에 대한 사랑, 멋지지 않아? 너의 어떠함과는 상관없어. 니 존재가 그냥 사랑스러운 거야. 니가 백점이건 빵점이건, 니가 퇴사하건 말건 가족에게 너는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야.'


'지금은 너에게 참 귀한 시기야. 그 순수하고 건강한 사랑이 니가 넘어져도 언제라도 일어설 수 있게 할 거야. 아이들의 그 순수한 사랑을 누려. 그리고 너의 반쪽, 아내의 사랑을 누려. 가정이 주는 사랑과 공급 안으로 들어가.

니가 아이들과 아내의 울타리가 되는 것처럼, 아내와 아이들도 너의 울타리가 되어줄꺼야.'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른지 오래다. 마침 집이기 망정이지, 잠옷이 다 젖었다.


H의 말은 다 맞는 말이다. 아내는 물론이고, 아이들 역시 나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있다. 갖은 풍파로 마음이 너덜너덜 해졌을 때, 무차별적으로 뛰어들어와, 파고들어와 안기는 아이들과 귓가에서 크게 들리는 아이들의 함박웃음은 마음에 급속한 회복을 가져왔었다.


언제 너덜너덜했었는지 기억도 안나는 그 회복. 얼떨결하게 결핍이 만족으로 채워지는 느낌.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얼굴에 미소가 지어진다.


묘한 기대감이 생기고 있다.


나락으로부터 헤쳐나올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 같다.


아이들이 매일 전화한 것이 힘의 근거를 설명해주고 있다.


'나는 사랑받고 있다.'

뭔가 가슴이 편안해졌다.



며칠 뒤, 아내와 대화를 나누었다. H와 나눈 얘기를 해주었다.


H와 나눈 얘기를 마치자 아내가 말이 없었다. 거실의 시계 소리만 들려왔다.


잠시 후, 아내가 말했다.


"괜찮겠어? 퇴사?"


"글쎄 잘 모르겠어 이제. 근데 이건 아닌 거 같아."


"퇴사하고 잘 버틸 수 있을까? 집에 있기 힘들 텐데"

지난날들이 생각났다. 첫 퇴사 이후, 집에서 널브러져 있었던 날들. 막판에 지겨워했던 날들이 기억났다.


"응 맞아, 근데 그래도, 지금 이 생활은 역시 아닌 거 같아. 나는 여기 여보랑 함께 있어야 하는 게 맞는 거 같아"


"그리고 나는 좋은 성공을 하고 싶어"


아내가 말이 없다.


'좋은 성공을 괜히 말했을까'


라고 살짝 후회하고 있을 찰나, 아내가 대답했다.


"그래, 쉬는 동안 잘 고민해보고. 그리고 애들 잘 챙기고."


"....응"

짧게 대답했다. 어떤 다짐이나, 어떤 부가적인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다. 퇴사가 처음도 아닌데 또 무슨 다짐을 하겠나 싶었다.


다음날, 지방으로 내려갔다. 회사에 퇴사하겠노라고 얘기했다. 팀장님은 당황하셨고, 상무님께 보고를 드리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한 이틀에 걸쳐 상무님, 팀장님, 인사팀장님과 미팅을 연석으로 가졌다.

나를 잡아주는 회사가 고맙게 느껴졌다. 사람들도 아쉬워하는 게 보여서 더 고맙고 감사했다.


마지막 날이 다가왔다. 만감이 교차했다.


생각해보니 5년을 다녔다. 직장 경력상 가장 오래 있었던 곳이다. 고운 정 미운 정 다 들었고, 그리고 원만하게 지냈던 곳이었다.


그래도 가족이 우선이니까 이 결정에 후회는 없다고 마음으로 다시 되뇌였다. 하지만 아쉽긴 하다. 아니, 아쉽다. 그리고 여러가지 생각들이 머리 속에 올라왔다.


사실 이런 퇴사 결정을 하고 있어서 나 스스로도 놀라고 있다.


H와의 대화가 그동안의 경험을 한번 짚어보게 해 준 것 같다. 그리고, 삶의 우선순위에 변동이 생기는 것 같다. 피라미드의 정상으로 달려가는 자신을 보며 스스로 안도하곤 했는데, 이젠 아니다. 지금까지는 끊임없이 취직에 도전하고 열심히 일하는 자신의 모습에 안도했고, 나름 만족했었다. 그 도전하는 열심을 뭐랄까.. 성공을 보장해 줄 만한 보증서로 여겨왔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도전은 도전이고 결과는 결과였다 (나는 또 퇴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 모든 고군분투는 결국 직장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이었을 뿐이었다. 직장에서의 고군분투가 내 삶의 다른 영역에 특혜를 제공하고 있지 않았다.


남편 또는 아빠로서의 역할에 대해 직장을 사유로 면제받고자 했었던 것 같다. '두고 봐. 좀만 기다려줘 여보 그리고 내 아이들아. 성공한 다음에 내가 아빠역할 제대로 할께'라고 외치면서 말이다.


주말부부가 문제가 아니었다. 지난 여섯 번의 퇴사 가운데, 드러난 생각의 방향이 문제였다. 계속 피라미드의 맨 끝으로 가고 싶었다. 입신양명하고자 했다. 그리고, 입신양명의 레이스에 뒤쳐질까봐 서둘러 구직했다.


생각해보면, 사실 보통 생각이 아니다. 아내와 아이들을 후순위로 몰아넣는, '나를 위해 모두 희생하라'는 이기적인 자기 발현의 생각이다.


사실 어떻게 보면 운이 좋은 것이다. 주말부부하면서 그 중요성이 빨리 드러난 셈이니까.


어쩌면 여섯번의 퇴사만에 깨달은 소중한 깨달음이다.


머릿속 에서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결정에 더 힘을 얻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밀린 책임과 역할들을 해보기로 한다. 그리고 온전히 사랑을 공급받기로 한다. 나의 터전인 가정에서, 더 늦기 전에 말이다.


그리고 내 인생에 대한 '책임'은 제대로 다시 해보고 싶다.

스스로도 조금 건강해지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약간 대견스럽다고 생각도 했다.


구직활동을 멈추고 퇴사에 들어간 것은 첫 퇴사 이후 처음이다.



퇴사 다음날, 아이들을 깨우고 있다.


자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니, 역시 너무 이쁘다.


아이들을 깨우고, 아내가 어젯밤에 만들어놓은 장조림과 방금 만든 계란 프라이를 꺼내놓았다.


근데 아이들은 시리얼을 먹겠다고 난리를 쳐서, 시리얼을 주었다. (주는 대로 먹지!라는 말정도는 참을 수 있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나는 남은 장조림과 계란 프라이를 먹었다.


아이들이 먹다 남은 계란을 한입 베어 문 순간

'이게 무슨 꼴이야'라는 생각과

'이게 행복 아니겠어'라는 생각이 충돌한다.


음.....


두 번째 생각을 붙들었다.


그러자, 마음이 살짝 편안해진다. 식탁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아이들의 숟가락을 보며, 이제 가족과 함께 있다는 것이 몸소 체험된다. 그리고, 아까 첫째가 저녁에 계란말이를 먹고 싶다고 했던 말을 기억한다. 빈 그릇들을 싱크대에 넣고, 소파에 누워 유튜브를 검색했다.


'초간단 계란말이 만드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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