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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뇌출혈 그리고 3년이 지났다.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

by yeon

엄마

엄마가 쓰러진 후 벌써 3년이란 시간이 흘렀네.


이젠 아이가 되어버려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는 우리 엄마.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인 밥도 물도 먹지 못하는 우리 엄마.

엄마가 어쩌다 이렇게 돼버렸을까, 이런 앞날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엄마가 쓰러지고 수술실에 들어가고 의식 없이 누워있던 한 달 반동안 제발 살려 달라고 그렇게나 빌었지.

누구든지 들어만 달라고..


그렇게 살아 돌아왔고 처음엔 걷지도, 입으로 먹지도 못하던 엄마였는데 그래도 이젠 손잡아주면 조금 걷고 나도 알아보고 밥도 먹을 수 있게 됐네.


엄마가 의식 없이 누워있던 그때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 후회만 들었어.

왜 나는 엄마와 손을 잡고 걸어 본 적이 없었을까.

왜 나는 엄마와 여행 한 번을 가보지 않았던 걸까.

왜 그렇게나 싸우고 사이좋지 못한 모녀였을까 싶어서.


근데 지금은 혼자서는 걷지 못하니 항상 손을 잡고 걷고 매 끼니 식사를 같이 하고 24시간 붙어서 지내고 있네.


개인 간병인을 고용했다가 경제적 압박에 결국 내가 일 관두고 엄마를 돌보니 내 삶은 참 단조로워졌어.

아침엔 엄마 인슐린 주사를 놓고 끼니를 챙기고 혈압과 혈당을 체크하고 재활 치료를 가는 게 유일한 외출이지.


일을 관두고 병원 생활마저 끝내고 집으로 온 뒤론 사회에서 고립된 것 같아서 가끔은 무서워.


다른 가족들은 없으니 혹시라도 내가 쓰러지면 엄마는 아무것도 하지 못할 텐데 이런 쓸데없는 상상도 하곤 해.


엄마. 긴병엔 효자 없다는데 요즘 그 말이 어떤 뜻인지 너무 피부로 느끼고 있어.

경제적인 압박, 사회적 고립, 언제나 부족한 수면..


엄마가 옆에 있는데 아무도 없는 것 같아.

전쟁터에 걷지 못하는 엄마 어깨에 짊어지고 혼자 싸우고 있는 것 같아.


나만 찾고 나만 있으면 된다고 환하게 웃으면서 말하는 엄마를 보면 죄책감에 나 자신이 너무 싫어지기도 해.


새벽에 30분마다 소변본 다고 깨울 때 그렇게 성질을 내고 죽고 싶다는 막말을 내뱉곤 하는 나에게 혐오가 들기도 하고, 이제는 엄마의 죽음을 꿈꿔보는 내가 몸서리 쳐지기도 해.


엄마가 가끔 왜 이렇게 됐냐고 물어보곤 쓰러졌을 때 죽게 냅두지 하면서 울 때 쓰러지기 전 어느 날 연명치료거부등록을 하고 왔다며 나에게 갈 때 되면 그냥 보내라고 했던 엄마 모습이 생각났어.


그땐 크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서 알았다고만 하고 건성으로 넘겼는데 이젠 그게 무슨 의미인지 어떤 상황에서 진행되는 건지 정확히 알아.

그래서 만약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그대로 보내줄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


엄마,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소풍 끝나는 날엔 뭐든 후회가 남겠지만, 엄마가 쓰러졌던 그때 모든 걸 감내할 테니 살려만 달라고 빌었지만 요즘은 엄마가 너무 오래 살지 않길 바라고 있어.


부디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만..

그때까지만 살다가 내 품에서 편히 떠나 줬으면 좋겠어.경련으로 중환자실 갔을 때도 나만 찾고 있는 엄마를, 요양보호사가 오는 주 3일 3시간 그 짧은 시간에도 나 언제 오냐고 찾는 엄마를 시설에 보내고 내가 살 수가 없을 것 같아서..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날, 내가 엄마를 아직은 감당하고 있을 때, 그때까지만 살아줘.


고작 3년 지난 건데 이마저도 힘들다고 하는 나 참 못난 딸이다. 항상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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