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처음에 언니의 부고 소식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어.
A에게 몇년만에 연락이 왔는데 다른 사람이 언니의 부고 문자를 받았다고 사실이냐고 연락이 왔더라고.
그래서 아닐꺼라고 나한테도 연락 온게 없으니 아닐꺼라고 언니 휴대폰으로 전화를 했는데 어머님께서 받으셨어. 언니가 어제 허망하게 가버렸다는 말에 어머님께 참 죄송하게도 눈물과 신음이 터져나왔어. 그렇게 울음이 터져나오는게 첨이라 나도 당황스러워서 어머님께 계속 죄송하다고 했어.
언니가 입퇴원을 반복한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나랑 통화했을 땐 이젠 괜찮다고 했잖아. 너무 언니의 말만 믿었던 걸까..
이제 중학생이 된 첫째와 초등학교 3학년인 둘째 눈에 밟혀서.. 아이들 생각나서 어찌 갔을까..
언니 처음 만났을때가 20대 첫 회사에 들어갔을 때였는데 그땐 언니도 나도 참 어렸지. 그런데 이제 벌써 40대네.
생각해보면 나의 20대와 30대엔 언제나 언니가 있었어. 첫 회사에 들어가서 언니를 만났고 언니와 함께 이직을 세번했었지. 그때 언니는 두살차이 밖에 안나지만 참 야무지고 항상 나를 잘 챙겨줘서 언제든 기댈 수 있는 존재였어. 작은 체구지만 언제나 꼿꼿해보였고 세련된 언니가 참 좋았어.
우리 보통의 20대들 처럼 사랑고민에 술 한잔 기울이며 울기도 했고 가족이야기 사는 이야기에 많이 웃고 웃었지.
언니가 결혼하고 내가 살고 있던쪽으로 이사왔을 때말이야. 동네에서 술한잔 하기도 하고 언니 친정집에서 보내온 채소나 음식을 나눠주기도 하고, 우리집 김장을 하면 김장김치 들고 언니네 집으로 가서 수육에 소주한잔하고 그랬었는데. 그땐 친언니가 있다면 이런 모습으로 지냈겠구나 싶었어.
그집에서 언니는 첫째를 낳았고 난 친조카가 이렇게 이쁠까 싶었어. 언니네 집에 하루가 멀다하고 아기보러갔었지. 애 재워놓고 언니네 집에서 늦게까지 수다 떨기도 하고 술을 마시기도 했고.
언니.. 우리 한동안 참 못보고 살았다 그치? 그게 참 미안해
언니가 멀리 이사가고 그래도 한동안 주기적으로 모임하기도 했는데 언젠가부터는 그마저도 서로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점차 횟수가 줄어갔어.
참 야무진 언니였는데 유일하게 집에 혼자 있는거 무서워하고 형부가 자리를 비우면 참 외로움을 많이 탔었는데.. 그럴때 좀 더 자주 만났다면 언니가 좀 더 덜 외로워했을까하는 생각에 참 괴롭네.
언니. 나도 엄마가 쓰러지고 아이가 되버린 엄마를 돌보느라 정신이 없었어. 그래서 언니가 아파할 동안 나는 언니 아픈지도 모르고 살았네. 정말 미안해.
언니가 간지 벌써 한달이 넘었어. 난 아직도 언니가 살아있는 것 같아. 언니 가는 길 배웅까지 하고 왔는데도 믿기지 않나봐.
언니 휴대폰으로 전화하면 먹성 좋은 첫째 음식 해주느라 힘들다고 웃으면서 그렇게 말할꺼 같아. 형부 출장이 잦다고 힘들다고 투덜거릴 것 같아. 나 엄마 돌보느라 고생이 많다고 힘내라고 해줄 것 같아. 나 엄마 보느라 힘들다고 언니한테 투정부리고 위로도 받고 싶은데 이젠 그럴수가 없다는게 믿기질 않아.
언니 난 아직 그 동네에 살고 있어서 집 앞 마트를 가도 엄마 병원 가는 길도 언니와 함께 했던 추억 서린 장소들이 곳곳에 남아있어. 그 추억속에 언니는 언제나 웃고 있는데 그 모습이 너무 그립고 그리워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언니.. 나의 언니..
그곳에선 아프지도 외롭지도 말고 아이들 지켜줘. 어린나이에 엄마를 잃은 언니 아이들을 꼭 지켜줘.
그리고 나중에 좀 더 나중에 나도 그곳에 가면 그때도 내 언니 해주라. 비록 친언니는 아니지만 그래도 내 언니 해주라.
말해본적 없지만 나 언니 참 많이 좋아했나봐. 언니 그곳에선 정말 아프지마. 다음에 만날 땐 웃으면서 만나자.
외삼촌과 친한 언니의 부고소식과 엄마의 이런저런 병원 일정으로 정말 너무 힘들었던 한달이 지나갔습니다. 언니를 보내고 온지 한달이 넘었지만 아직도 믿기지 않는 속 마음을 털어내고 싶었습니다. 털어낸다고 털어내지는 감정이 아닐지만요.
나이가 적진 않지만 가까웠던 사람을 보낸게 처음이라 이런 마음들이 참 많이 당황스럽고 버겁기도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