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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에도 잊히지 않는 엄마의 서러웠던 세월

by yeon

오늘 엄마 샤워를 시키면서 물어봤다. 엄마 쓰러지기 전에 나랑 살았는지 혼자 살았는지 기억나냐고.

기억이 안 난단다.


엄만 뇌출혈 이후 혈관성 치매도 있어 유의미한 기억 생성이 되질 않는 상태다.


엄마가 쓰러지기 2년 전 나는 집을 구해 나왔고 그동안 엄마는 혼자 살았었는데 그때 기억조차 온전하지 않구나 싶어 가슴이 시큰거렸다.


농담 삼아 엄마 아빠랑 살았어하니 그건 아니란다. 기억 안 난다면서 그건 어찌 아냐 했더니


“니 아빠 싫어. 경마장 쫓아다니고 일도 안 하고 고생시켜서 싫어”

라고 말하며 갑자기 운다.

왜 울어하니 그때 생각하니 서러워서 라며 운다.


그래 그랬었지. 그래서 엄마가 꽤나 고생했지.

나보다 더 어렸을 나이에 나를 낳았는데 남편은 자식도 일도 돈도 신경 쓰지 않았지.


언젠가 엄마가 했던 얘기가 기억났다.

“너 어릴 때 돼지갈비가 너무 먹고 싶어서 네 아빠한테 가서 먹자고 했더니 아직 어려 말도 잘 못하는 너 데리고 가서 먹으래. 외식 한 번을 해 본 적이 없어”

무슨 대화 끝에 이 이야기가 나왔는진 기억이 안 나지만 그때 엄마는 매우 무덤덤하게 이야기를 했고 오랜 기간 가난에 찌든 사람들이 가진 특유의 체념한 눈빛이었다. 학습된 무력감에 작은 희망조차 가져보지 못한 그런 눈빛.


경마장에 정신이 팔리고 사람들과의 술자리만 좋아하던, 가장으로 남편으로 아비로의 역할을 등져버린 아빠는 엄마에게 치매로 기억을 잃어도 싫은 사람으로 남겨졌나 보다.


우는 엄마는 달래줘야 하기에

“그래 엄마가 그때 고생 많았지. 그렇게 고생하면서 나 키워줘서 내가 지금 엄마 이렇게 돌보잖아. 이런 딸이 어딨어. 이 정도면 엄마 성공 한 거 아냐?”

하니 그제야 울음을 그쳤다. 눈엔 미처 흐르지 못한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배시시 웃는 아기 같은 엄마를 보니 이번엔 내 속에 억장이 무너진다.


난 엄마에게 마음의 부채 같은 것이 있다. 부모에게 자식을 돌보고 사랑해 주는 일은 당연한 일인데 어릴 적부터 부모의 관계가 좋지 않으니 그것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것 같다. 언제나 버림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나 같았어도 도망갔을 것 같은 상황에서 엄마는 내 손을 놓지 않았고 그 당연한 양육이 나에겐 마음의 빚 같은 존재다. 나만 두고 나갔다면 엄만 지금보단 나은 삶을 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러지 못한 게 내 탓이라고 스스로 올가미로 목을 옥죄고 있는 거다.


내 탓인 거라 생각하면서도 아니라고 믿고 싶기에 아빠 탓을 해보기도 했고 이만큼 간병했으면 이제 그런 마음의 빚 털어내도 되지 않냐 스스로 묻기도 하지만 쉽사리 떨쳐지진 않는 게 사실이다.


샤워를 끝내고 뽀얀 얼굴로 누워 나를 쳐다보는 엄마에게 그동안 고생 많았어라고 괜히 말 한마디 건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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