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풀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풀칠 Jan 11. 2022

여전한 위협들





2021년의 마지막 날. 우리는 존경하는 구독자 풀칠러님들께 공들여 준비한 감사인사와 에세이,만화 등을 담은 <연말특집호>를 보내려고 했었다. 1월 5일로 정해뒀던 겨울방학이 끝나기도 전인 크리스마스 시즌에 셀프로 마감 지옥에 걸어들어간 것이니 나름 리소스를 투입한 기획이었던 셈. 하지만 야망백수의 아이패드 고장, 마감도비의 번아웃, 아매오의 음주 등 예기치 못한 악재가 겹치면서 깜짝 <연말특집호> 발송 작전은 실패한다.






이렇듯 우리의 일상은 예상치 못한 위협으로 가득 차 있다. 베란다 창문을 열어뒀다가 보일러가 동파되어 달달 떨면서 동지섣달 긴긴밤을 보내게 될 수도 있고 충실하던 전자기기들이 갑자기 맛탱이가 갈 수도 있고 온 세상에 전염병이 창궐할 수도 있다. 일상이 있는 곳에 위기가 있다. 일상과 위기는 동전의 양면, 일상이 곧 위기다.


모든 위협이 예상치 못하게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어떤 위협들은 너무나 거대해서(혹은 유명해서) 모두가 그 존재를 이미 알고 있다.








이런 위협들을 해결하는 것은 종종 인생의 퀘스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삶은 게임과는 다른 무언가이며, 삶의 목적 역시 위협에 대처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에 우리는 위협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기로 했다. 2021년에 이어 2022년까지 계속해서 일상을 쥐고 흔들 가능성이 높은 위협 관련 열쇳말 4가지(전세, 회식, 주식, N잡.*)  를 선정한 뒤, 각각에 대한** 짧은 에세이를 썼다.




*선정 기준 : 공신력 있는 자료를 활용하진 않았으며 그냥 풀칠 필진들의 피부에 와닿은 것들 위주로 골랐음을 안내드립니다.


**분배 기준 : 사다리타기로 정했습니다.









위협 01: 전세

BY파주


여유를 부리며 연말을 준비하던 어느 날. 전세 만기일이 두 달 남았다는 문자 하나에 무지막지한 두려움이 엄습했다. 2년 전과 비교해 훌쩍 올라버린 서울 집값. 설마 하는 마음에 직방을 켜 동네 원룸을 검색했지만 괜한 절망감만 채울 뿐이었다. 지금 눌러 앉은 방도 전세금이 고새 훌쩍 올라버렸다. 다시 이삿짐을 싸고 대출 서류를 준비해 은행을 오가고...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이사의 알고리즘이 떠올리니 서둘러 다음 스텝을 밟게 됐다.


그날 바로 집주인에게 전세계약 연장을 요청하는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액정에 텍스트 몇 자 적는 거라지만 녹록지 않은 과정이었다. 집주인은 오른 집값만큼 더 많은 보증금을 원했고, 내 수중에는 그런 돈이 없었다. 몇 차례 문자가 오가는 동안 고통의 나날을 보냈다. 그 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마음앓이를 했는지 매일 떡볶이와 곱창전골로 속을 채워도 속이 헛헛했다. 부동산을 사이에 두고 대치한지 삼 주쯤 지났을까. 최근 몇 년 사이 바뀐 부동산 법안을 찾아가며 따진 뒤에야 간신히 계약서에 사인을 할 수 있었다.


당장의 주거지 고민은 해결했지만 불안감은 가시질 않는다. 사는 곳이 보장되지 않는 삶은 늘 근두운에 둥실 떠 있는 것만 같아서다. 계약갱신청구권으로 일단 2년은 벌었지만, 그때가 다가오면 어떻게 집을 구하게 될는지. 도저히 자신이 없다.


하지만 때아닌 전세 공습으로 인해 얻은 것도 있다. 전례 없는 위기감에 한참을 미뤄둔 적금을 드디어 시작했고 연말을 맞아 한껏 사치를 부리려던 소비 목록도 말끔하게 삭제했다. 더군다나 전세로 마음고생한 썰을 팔아 작고 귀여운 원고료를 벌기도 했다. 어쩐지 자기기만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오히려 좋아’라고 외치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다.


어영부영 하는 사이 2022년이 왔다. 새해에는 2023년에 닥쳐 올 전세 재난에 대비해 몸과 마음과 통장잔고를 정비하기로 했다. 더벅머리를 한 채로 앉아있는데도 왠지 목욕재계를 한 것만 같은 말끔한 기분이 든다.




위협 02 : 회식

BY마감도비


2021년이 코로나19로 인해 회식이 적었던 한해로 기억되었다면 좋았으련만.


연초에는 소박한 기대가 있었다. 회식이 적었으면 좋겠다, 저녁에는 집에서 좀 쉬고 싶다, 와 같은 소박한 기대였다. 돌이켜보면 어느 때보다 술을 많이 먹지 않았나 싶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늘고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은 연장되고 있으니 회식 자리가 줄 거라고 생각한 건 오산이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 한국인은 편법의 민족. 점심부터 회식 자리가 시작된다거나 저녁 회식을 4~5시부터 시작해버리니 오히려 회식을 피하기란 더 어려웠다.


“자, 오늘은 (회식을 해야 하니) 일 빨리 끝냅시다!”(실제 대사) 차라리 마음을 다 잡는 데는 그게 더 편하기도 했다. 팀원 간 침목 다지기라는 외피를 벗고 ‘일의 연장’이라는 속성이 여실히 들어났으니 말이다.


회식으로 과음을 하고 난 다음날이면 늘 컨디션이 좋지 않았지만 병가는 막내 격인 내 몫이 아니었다. 쓰린 속과 무거운 머리를 이고 사무실에 갈 때면 차라리 야근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사기는 저하시키고 회사에 이골만 나게 만드는 회식보다는 말이다.


2022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또다시 소박한 기대를 피워 올린다. 부디 올해에는 회식 대신 휴식을. 회식 뒤에는 휴식을. 팀장님, 제가 오래 다니길 바라신다면 부디, 결재 부탁드립니다.




위협 03 : 주식

BY아매오


추민하 선생이 <런닝맨>에 나와 화제의 우량주를 외치며 웃음을 줬던 게 작년 2월의 일이다. 그러니까 그때 이미 그것이 남녀노소 가리지 않는 보편적인 유머 코드로 소비됐을 만큼 많은 이들이 주식을 새로운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주변 사람만 둘러봐도 보통 둘 중 하나에 속했다. 주식을 하거나, 주식을 할까 말까 하거나.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오래된 할까말까족이었다. 남들 다 하는 건 맛이라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향이지만 돈을 굴리는 행위 자체에 막연한 두려움이 실천을 막고 있었다. 게다가 그보다 우선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항목은 또 왜 이렇게 많은지. 아니 그래도그냥 삼성전자에, 현대차에, 카카오에 넣고 존버하는 것조차 못할 건 또 뭐람.


그러다 지난 여름에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다 크게 뽐뿌를 받아 작고 귀여운 시드머니를 빼놓았다. 할까와 말까의 균형감을 깨뜨린 전례가 생겨버린, 긍지를 잃은 할까말까족인 셈이다. 그 돈은 해를 넘긴 지금까지도 얌전히 계좌 속에 머무는 중이다. 하지만 한번 깨진 균형은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노동소득엔 답이 없다는 것도 느끼고 있고. 올해는 나도 주식을 하겠지.


그래도 조금만 더 할까말까족으로 살아볼까 한다(귀찮아서 그런 건 아니다). “지금 안 들어가면 바보"라는 소리에 허겁지겁 들어가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서? 그런 점도 없지 않다. 하지만 좀 더 큰 맥락에서, 내 삶의 템포를 놓치지 않겠다는 다짐 때문이기도 하다. 더 크고 강하고 빠른 것에 휩쓸리는 건 여러모로 나에게 해롭기 때문이다(진짜 귀찮아서 그런 거 아니다).


2021년 내내 주식은 스몰토크계의 인기스타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상승장의 환희든 하락장의 분노든 그 열기는 언제나 그 안에 버티고 선 사람들을 녹여내릴 듯이 뜨겁게 타올랐다. 거기서 조금 비켜서 있었던 나는 그래서 약간의 쌀쌀함을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2022년은 어떨까. 여전할 것 같다. 난 계쏙 쓸쓸할까? 실없는 소리만 늘어놓는 걸 보니 아직도 철이 덜 들었나보다.




위협 04 : N잡

BY야망백수


나는 일자리 하나 꿰차기도 버거운데 세상은 ‘N잡’을 얘기한다. 본캐도 허접인데 부캐까지 키워야 하나 싶다. 더 풍족한 밥벌이를 위해, 시드머니를 모으기 위해, 자아 또는 허영을 위해, 결국엔 집을 위해. 이것들은 모두 '삶의 기반'이라고 할만한 것들인지라 쉬이 포기가 안된다. 호명으로 먹고사는 어른들도 우리가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챈 걸까? 어느새 우리의 꼬리표는 <N포 세대>에서 <밀레니얼 세대>로 업데이트되었다. 별안간 명랑해진 우리는 포기할 것들 대신 직업의 개수를 헤아린다. N잡의 시대, 세상살이는 이전보다 복잡한 N차 방정식이 된 것 같다.


학창 시절에도 나는 빌어먹을 N차방정식이 참 어려웠다. N에 들어갈 숫자가 커질수록 나의 학업성취도는 바닥을 기었다. 그래서 별명이 수학귀신이었던 친구에게 물어봤다. "N차방정식은 도대체 어떻게 푸는 거니?" 수학귀신은 이렇게 말했다. "모르겠으면 그냥 0이나 1로 찍어." 야매 노하우였지만 내겐 이 말이 꽤 그럴싸하게 들렸다. 복잡해 보이는 문제의 답은 0이나 1, 답은 없거나 단 하나.


예나 지금이나 N차방정식을 풀 재간이 없는 나는 요즘에도 이 팁을 써먹는다. 답을 0으로 찍는 날에는 '아 원래 세상살이엔 답이 없구나!' 하며 좌절한다. 1로 찍는 날엔 '어떻게든 지금 하고 있는 일 하나로 밥벌이도 해내고 그놈의 '자아'도 실현해 보겠어!' 하며 만용을 부린다. 가끔씩은 국어 교과서에 나왔던 수필, <방망이 깎던 노인>을 떠올려 보기도 하며.


물론 0과 1 중 고르는 것은 '야매' 노하우라 자주 틀리지만, 찍을 일이 하도 많다 보니깐 이제는 맞고 틀리고는 별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정/오답보다 중요한 것은 계속해서 다음 문제로 넘어가고 있는 것 아닐까? 올해도 아마 이렇게 살 것 같다. 풀이 불가의 N차방정식을 앞에 두고 0과 1사이를 진동하며. 계속해서 찍다 보면 얻어걸리는 날도 올 것이란 희망을 품고.




매거진의 이전글 공든 탑의 심정으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