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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칠 Jul 03. 2022

탈주의 역사

1

내 인생의 첫 번째 탈주는 유치원에 처음 간 날이었다. 선생님은 내 앞에 사과가 그려진 종이를 내려놓고는 말했다. “빨간색으로 칠해볼까?” 사과를 칠하다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


나는 그 길로 조용히 크레파스를 내려놓고, 유치원 밖을 슬쩍 빠져나가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는 상어 인형과 함께하는 흥미진진한 모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더 의미있다고 믿는 일(상어 인형)을 위해선 왜 하는 지 당최 모르겠는 일(사과 색칠하기)을 때려치워야 한다는 교훈을 얻은 최초의 사건이었다.


다음 탈주는 다행히도 학교를 모두 마치고 난 다음이었다. 물론 학교 다니는 동안에도 탈주하고 싶었던 적이 많았지만, 그땐 ‘땡땡이'라는 수습 가능한 일탈로 탈주 욕구를 적당히 관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잡고 나니 더 이상 땡땡이는 가능한 옵션이 아니었다. ‘존버'하거나, 탈주하거나 두 가지 옵션이 전부다. 이 냉혹한 이분법을 견디는 것이야말로 어른이 갖춰야 할 자질이겠지만, 나는 늘 어른 되기보단 탈주닌자로 남는 편을 택했다.


2

나름 크고 안정적이었던 첫 번째 회사는 모든 게 너무 지루하고 좀 우습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오만한 생각이었다. 하루 종일 회사에 있어야 한다면 이왕이면 재밌는 일을 해야겠다 싶었다. 절이 싫으면 별 수 있나, 중이 떠나야지. 탈주.


재밌는 일을 찾아 들어간 두 번째 회사도 그럭저럭 괜찮은 곳이었다. 적당히 재밌고, 업무량도 적당하고. 그런데 이번엔 그 적당함을 참을 수 없었다. 하루 종일 회사에 있는데 그 시간을 적당히 흘려보내는 게 젊음에 대한 죄악처럼 느껴졌다. 어딘가에 다른 삶이 있지 않을까? 매 순간 살아있음을 느끼며 돈과 재미도 놓치지 않는 삶이 있지 않을까? 가보지 않은 길을 향한, 치기 어린 향수병을 대차게 앓다 또다시 탈주.


두 번의 연이은 탈주는 나를 좀 취하게 했던 것 같다.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지만 탈주를 결심하는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가 있다. 내 삶의 방향타를 두 손으로 꽉 쥐고, 온몸의 근육을 동원해서 녹슬고 둔중한 이전까지의 삶이 다른 곳을 향하도록 돌려낼 때의 해방감은 얼마나 상쾌한가. 정해진 항로를 이탈하고도 불안이 아니라 자유를 느낄 수 있는 힘이 스스로에게 있다는 걸 느끼는 순간은 얼마나 벅찬가. 저 멀리 새로운 수평선이 보이고, 심심하기 그지없는 무늬로 내 뒤를 쫓아오던 삶의 물결은 청량한 물보라가 된다. 나는 자유다! 어디로 가야 할진 모르겠지만, 어디로든 갈 수 있다!


그러나 방향을 트는 순간의 청량한 물보라는 사실은 금세 꺼질 물거품이다. 물거품이 꺼지고 난 자리엔 깊이를 알 수 없는 대양이 있다. 언제든 아가리를 벌려 모든 것을 집어삼킬 수 있는 검은 대양. 그 표면 위에서의 위태로운 항해. 위태로움을 깨닫게 된 건 한참 뒤의 일이지만.


3

어쨌거나, 회사에서 탈주하고 나니 장점이 많았다. 매일 면도를 할 필요도, 아침 일찍 일어날 필요도, 주기적으로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다듬을 필요도 없었다. 평일 오전에 카페를 전세 낸 듯이 쓸 수도 있고 해 질 녘에 사무실 창문 너머로 건물로 조각난 노을을 보는 대신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해지는 쪽을 향해 자전거를 달릴 수도 있었다. 물론 규칙적인 수입이 없다는 단점도 있긴 했지만 아직은 탈주의 카타르시스가 가시지 않을 때라 까짓것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다. 고백하건대 그때 나는 스스로를 새로운 삶을 방식을 발명하는 임무를 맡은 우주비행사쯤으로 여겼다. 아니면 새 시대의 신인류거나. 그리고 스스로를 신인류 비슷한 무언가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반드시 빠지게 되는 늪이 하나 있는데, 그 늪의 이름은 바로 창작이다. 나는 창작자가 되기로 했다.


백수 겸 프리랜서 겸 작가 지망생 생활은 즐거웠다. 누군가 꿈이 뭐냐고 물으면 계속 이러고 사는 것이라고 답할 정도로. 나름 부지런히 글을 썼다. 갖고 있는 밑천이라곤 내 이야기밖에 없었지만 쓰다 보면 볕들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다. 생활비는 예전에 다니던 회사와의 인연으로 간간이 들어오는 외주 일, 청소, 배달을 섞어서 얼기설기 만들었다. 이렇게도 살아진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이제 더 이상의 탈주는 없겠다 싶었다.


그러나 시간은 모든 빛나는 것들을 좀먹는다. 꿈, 사랑, 젊음, 설렘, 야망, 낙관 등등. 모든 지켜냄직한 것들은 반드시 허물어진다. 나의 '창작자 되기 인생실험'도 예외는 아니어서 2년이 다 되어가자 슬슬 그만둬야겠단 생각이 고개를 쳐들었다. 다만 이번에 찾아온 관둬야겠다는 감각은 탈주와는 조금 달랐다. 탈주보단 차라리 탈락에 가깝달까. 탈주가 의미 없는 일에서 능동적으로 떠나는 행위라면, 탈락은 어떻게든 견뎌보려 했으나 더 이상 견딜 힘이 없음을 자각하고 놓아주는, 반은 수동적인 행위다. 손 틈 사이로 무언가가 스르륵 빠져나가는 데 더는 손을 오므릴 힘이 남아있지 않은 감각이다. 나의 꿈은 나의 재능없음 때문에 위태로웠다. 2년이란 세월 동안 나는 알바나 열심히 하고 머리카락이나 길렀지 볼만한 무언가를 전혀 만들어내지 못한 것이다.


마지막 발버둥을 쳐보긴 했다. 할 줄 아는 걸 하나라도 늘리겠단 마음으로 그림을 배우러 다니기로 한 것이다. 학원비는 비쌌다. 학원비를 벌기 위해 월급이 꼬박꼬박 나오는 짧은 계약직 일자리를 잡아서 3개월을 일했다. 탈주하기 전처럼 잠시 직장인이 된 것이다. 예전에 도망쳐온 곳에 머리를 긁적이며 돌아간 셈인데, 막상 돌아가 보니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무언가를 위한 준비 기간은 곧 유예기간이긴 한데, 유예기간엔 그저 시간만 보내면 되므로 부산을 떨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발버둥 치곤 꽤나 안락한 발버둥이었던 셈이다. 계약기간을 마치고 학원에 갔지만 그곳에선 내가 바라는 답은 없었다. 사실 3개월 전에 멘토라는 작자에게 상담인 척하는 영업을 당했을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첫 수업을 듣고 바로 카운터에 가서 말했다. “그냥 전부 환불해 주세요"


탈주에 탈주를 거듭하다 마침내 꿈에서도 탈주해버린 날, 미용실에 갔다. 머리카락을 자르러. 2년 동안 신나게 기른 머리카락이었다. 나는 그냥 적당히 돈도 벌면서 재밌게 살고 싶었던 것뿐인데. 복잡하고 기만적으로 구는 대신 단순명쾌하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 머리칼이 바닥에 후두둑, 하고 떨어졌다.


4

요즘 나는 다시 회사를 다니고 있다. 이발도 한 김에 까짓것 취업도 해야겠다고 농담 삼아 뱉은 말이 어쩌다 보니 진짜가 됐다. 이번 회사도 강남에 있다. 내게 강남은 정붙일 곳이라곤 없는 동네지만, 회사들은 강남을 참 좋아한다. 그래도 이번엔 회사를 좀 진득하니 다녀보려고 방도 새로 구했다. 회사에서 엎어지면 코닿을 거리는 아니지만, 지하철을 30분 정도만 타면 되니 이 정도면 나름 가까운 편이다.


새로운 회사는 나쁘지 않다. 같이 나가기 위해 짐 싸는 걸 잠시 기다려 줄 동료도 생겼다. 동료와 같이 역까지 걸어가며 담소를 나눴다. 옛날에도 강남으로 출퇴근을 한 적 있는데, 그땐 바보같이 집을 너무 멀리 잡았다고. 그래서 이번엔 무리해서 집을 좀 가까운데 잡았다고. 지하철을 오래 타면 분명 난 회사를 때려치울 거라고. 그는 내 말을 듣고 웃는다. 지하철역 입구엔 사람들이 많다. 퇴근길의 인파 속에 섞여드는 기분이 나쁘지 않다.


역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위에선 이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그동안 난 여기엔 없고, 저기엔 있을 것 같은 무언가를 쫓는 고약한 버릇으로 신세를 망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아니면 세상이 영 별로라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던 건지도. 뭐가 됐건, 또다시 어떤 삶에 도착했다. 새로 도착한 삶은 궁핍하지도 풍족하지도 않다. 때론 즐겁고 때론 지겹다. 새 삶에서 난 나름대로 열심히 산다. 하기로 한 일을 해내기 위해 출근 시간보다 일찍 나가고 퇴근 시간보다 늦게 집에 돌아간다. 에스컬레이터 위에 가만히 서 있었을 뿐인데 어느새 지하다.


지금의 삶은 언뜻 봐줄 만하면서도 곰곰이 뜯어보면 좀 우습고 때로는 갸우뚱할만한 구석이 많은, 그런 평범한 삶이다. 지하철을 타는데 승강장과 열차 사이 틈과 눈이 마주쳤다. 그 좁고 컴컴한 틈새를 보는 동안 아직 찾지 못한 어떤 삶, 지극히 자연스럽고 그 자연스러움으로 덕분에 특별한 그런 삶을 찾으러 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문은 금세 닫혔고 나는 번질거리는 눈빛을 여기저기 휘두르며 빈 자리를 찾았다. 때마침 빈자리가 나 잽싸게 가 앉는다. 가방을 끌어안고 차창 벽에 뒤통수를 기댄다. 목덜미가 뻐근하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 내게 어찌 그렇게 살게 되었냐고 물어올 것만 같다. 그렇다면 나는 “이것 참, 할 말이 없네"라고 답할 수밖에 없으리라. 물론 그런 걸 누가 묻겠냐마는.


이제 더 이상의 탈주는 없을 것 같단 예감이 든다. 다른 회사를 다니게 될 수도 있겠지만, 그 변화의 이름은 탈주가 아니라 이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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