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만나는 어렵고 위대한 여정
남편과 나는 8년을 연애하고, 결혼에 골인했다. 그때는 정말 몰랐지만, 사실은 가장 아름다웠던 대학생 시절의 우리는 서로를 금방 알아본 후 곧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되었고, 우리는 하늘이 허락한 '운명'임을 확신하며 행복하게 결혼식을 올렸다. 벌써 만 2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부터인가 결혼을 앞둔 젊은 커플들 사이에서 '아기 계획'을 물어보는 일은 무엇인가 멋없는 일이 되어버린 것 같다. 맞벌이 부부라면 혼자 벌때보다 수입이 2배가 되니 지갑이 풍성해진 느낌이기도 하고, 언제나 내 옆에 있는 짝꿍이 생겨 든든한 느낌이라서일까? '아기를 낳을거면 빨리 낳는게 좋다'는 어른들의 말들은 잠시 미뤄두고, 둘만의 자유로운 삶을 보내는게 뭔가 더 멋있고 좋아보인다고 여겨지는 듯 하다.
사실 나는 여기에 100% 동의하지는 않지만, 나 역시 연애시절 못해봤던 많은 즐거운 일들 (예컨대 남편과 늦게까지 술을 마시며 귀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되는 일)을 실컷 즐겨보겠노라 하며 결혼 후 1년간은 피임약을 복용했다. 산부인과 선생님은 피임약을 먹는다고 추후 임신이 잘 안되는 일은 없으며, 오히려 피임약을 끊으면 바로 아기가 생길 수도 있다는 위안의 말씀도 해주셨다.
이맘때쯤, 시아버지는 연말이면 '내년에는 너희 부부가 나에게 큰 기쁨을 안겨다주면 좋겠구나'라고 말씀하시며, 가뜩이나 갓 결혼하여 시댁에 대한 이유없는 전투력이 한껏 상승해있는 나를 더욱 자극하셨고, 그럴수록 열심히 피임약을 정시에 복용하며 역시 나는 주도적이고 계획적인 여성이라고 스스로 뿌듯해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럴수가, 계획했던 1년이 끝나고 우리 부부의 임신이 충분히 가능한 시기가 도래했음에도 불구하고, 아기는 꽤 오랜 시간동안 우리를 찾아와 주지 않았다.
그렇게 수개월이 지나고, 또 친정엄마와 함께 지은 한약 역시 효과가 없었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우리 부부와 '난임'은 전혀 관계가 없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어떤 주제넘은 확신이었을까, '내 인생에 그런 시련은 없어', '좀 늦더라도 다 자연스럽게 찾아올거야'라는 생각을 나도, 남편도 했던 것 같다. 계획적인 성격의 나는 늘 '아기가 생기면 남편에게 요컨대 '임밍아웃' 이벤트를 하는 방법'까지 꽤 구체적으로 구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찰나에 출산/육아 전문가 회사 언니를 만났을 때, 언니는 임신을 준비하는 여성이라면 준비기간이 얼마가 되었건 간에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라는 말을 해주었고 병원 추천도 해주었다. 제법 유명한 병원이 우리 집 근처에 있었고, 비용도 큰 부담이 될 것 같지 않아 한번 가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검사항목 중 하나인 남성의 굴욕의자 체험을 남편에게 끝까지 경험하게 해주고 싶지 않아 망설였지만, 남편은 늘 내 의견을 따라주는 사람이라 흔쾌히 가자고 해주었다.
여러 검사가 끝나고 검사결과를 들으러 가던 날! 이 날을 어떻게 잊을까?
차분하고 안정적인 목소리의 원장님이 우리 부부 앞에 검사지를 꺼내고, 먼저 나의 결과를 보며 '모든 수치가 좋고, 난소 나이도 많이 어리고, 다낭성 소견이 있지만 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며, 나의 결과를 보면 6개월 내 바로 임신이 될 수 있었을만큼 결과가 좋다고 하셨다. 그러나 이내 남편의 결과를 찾아보시다가 '남편의 수치가 많이 안좋네요.' 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말을 뱉으셨을때, 우리는 사색이 되었다.
수치만 봐서는 자연임신이 될 수 없고 인공수정이나 시험관을 권해야 하는 수치라고 말씀하시며, 준비된 그림을 통해 인공수정과 시험관, 우리가 단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고 관심도 가지고 싶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설명해주셨을 때 내 남편은 그 앞에서 펑펑 울고 말았다. 와이프한테 너무 미안하다고, 본인 때문에 안해도 되는 것을 해야 하는게 아니냐고.. 당황한 원장님이 남편을 얼마나 달래주셨는지 모른다. '걱정할 일 아니다, 너희 부부는 금방 임신이 될거다, 확신한다.' 라고 한참을 남편을 위로해주셨다. 남편의 상기된 얼굴 앞에서 차마 나의 놀란 기색까지 더할 수는 없었기에 남편 등을 두들겨주며 '걱정마, 남편! 난 더한 것도 할 수 있어!'라고 호기롭게 외쳤지만 사실 속으로는 앞으로의 여정이 많이 두려웠다.
일련의 시간들이 지나가고 병원을 다닌지 벌써 반년이 넘었다.
인공수정 1, 2회차를 화학적 유산으로 마쳤고, 이제 이번 달 시험관 1차를 시작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병원에 처음 갔던 날, 병원 여기저기에 붙은 난임 관련 위로의 문구와 포스터들을 보고 마음이 불편했던 기억, 그리고 친구에게 '검사 받으러 오긴 왔는데 막 시험관도 해야 되고 그러면 난 아기 갖는걸 포기하지 않을까 싶다'고 쿨한 척 내뱉었던 기억이 무색하도록 이제 난임병원은 나에게 참 익숙하고 편안한 곳이 되었고 아기가 오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리 부부는 더 간절히 아기를 소망하게 된다. 신기한 일이다. 병원을 다니기 전에는 아기가 없어도 살 것 같더라니, 이제는 어떤 소망보다 간절히 아기가 꼭 와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어떤 일도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다. 우리가 과거에 무슨 잘못을 해서,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우리에게는 그런 일들이 충분히 일어날수 있다. '나에게 왜 이런 일이!'라는 생각조차 교만함에서 나왔던 생각임을 고백한다. 그저 하루하루를 충실히, 자고 일어나면 과거가 되어버릴 오늘 하루를 감사하고 담대하게 살아내는 것이 나의 최선임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