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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개의 달 Jan 02. 2019

두 번째 해


 부자 되게 해주세요. 

 수능 대박. 

 취업하게 해주세요. 

 좋은 사람 만나고 싶어요. 

 건강하게 해주세요.      


 눈감고 이런 말들을 듣고 있는 해를 상상해보면 피식 웃음이 난다. 분명 해는 어제도 오늘도 똑같은 해일 텐데. 인류가 처음 나타나서 해의 존재를 알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그런데 고작 24시간이 지났다고 우르르 와서 자기 얼굴 사진을 찍고 소원을 빈다니. 해에게는 우리가 조금 가소로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숫자가 바뀌고 새 출발선에 서면 왠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걸. 그러니 용서해줘-하는 대답을 새해 두 번째 날의 해에게 보낸다. 오늘도 똑같이 일하고 있는 것 잘 안다고. 매일 떠줘서 고맙다고.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은 해에게 조금씩 빚을 지고 있다. 식물이 자라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동물이 움직이고 나이를 먹고. 사람이 눈을 뜨고 활력을 만들어내기까지 모든 것이 해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물론 동굴에만 사는 친구들처럼 전-혀 해가 필요 없는 것들도 간혹 있기는 하겠다.) 나 같은 환자는 좀 더 많이 필요하고. 그래서 가끔 시간이 나면 해를 쓱 본다. 달처럼 지긋이 오래 보고 싶지만 어릴 때 과학책 한 귀퉁이에서 읽은 대로 해를 오래보면 눈이 상한다 했으니 슬쩍 구경하듯이 본다. 어떤 시간에, 어떤 구름과 함께. 어디에서 보냐에 따라 해의 색도 느낌도 조금씩 다르다. 그 중 기억에 남을만한 것은 눈으로 잘 사진 찍고 앞에 이름을 달아 가슴 속 한 구석에 곱게 넣어두기도 한다. 으레 모두가 알법한 따사로운 해, 붉은 해, 둥근 해 등이 들어있지만 가끔은 얄미운 해, 끝내 울린 해 같은 것도 들어있다. 

 흔한 것부터 좀 꺼내볼까. 따사로운 해. 사실 햇살이 따사롭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배워서 잘 알고 있지만, 처음 저것을 몸으로 느꼈던 날은 중학생 때 즈음이었다. 좋아하는 친구가 꼭 가야한다는 행사가 있어 함께 나와 새벽에 가까운 시간부터 줄을 섰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친구뿐인 행사장 밖, 인파를 뚫고 캔 커피를 사러간 친구 대신 가방을 안고 서있는데 어두운 하늘과 웅성이는 사람이 마냥 다 무서웠다. 그러다 건물 너머로 해가 뜨면서 내 자리까지도 해가 닿았는데, 몸이 따끈하게 데워지는 것을 느끼며 얼마나 해가 따듯한지. 어찌나 귀한지 새삼 깨달았다. 그날의 모두가 해가 꼭 반가웠던지 해 들어오는 자리대로 사람이 조금씩 옮겨가곤 했었다. 생각해보면 그날 해가 그렇게 반가웠던 것은 아무도 모르는 세계에 내가 꽤나 잘 아는, 그리고 아주 오래 본 해가 나타나서가 아닐까. 

 몸이 지독하게 아팠을 때는 해가 마냥 얄미웠다. 해가 뜨고 아침이 오면 방이 불 없이도 환해지는데, 그러면 애써 감춰두었던 몸의 상처가 적나라하게 보인다. 이렇게 무너진 사람이 나라고 끝내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데. 어쩌다 거울을 보게 되면 그렇게 화들짝 놀라곤 했다. 그것도 나라고 말하기까지 참 오래 걸렸고 지금도 좀 어렵지만. 괜찮다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는 참 많은 밤낮이 필요했다. 어쩌면 사람 마음도 이 같지 않을까. 자꾸 빛나고 근사한 사람 앞에서 작아지는 것은, 도망치고 싶은 것은. 나의 그렇지 않은 부분이 훤히 보여서. 내가 끝내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들이 거기 산다는 것을 내가 알아서가 아닐까. 더 오래 마음이 쑤욱 가라앉기 전에 그래 볕 좋네. 하고 툭, 팡팡 턴다. 그래야 내일 해도 만나지.

 끝내 나를 울린 해는 어느 오후의 전화를 받다가 만났다. 그날 나는 내가 그래서 뭘 잘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좋아하기만 해서 뭐가 달라지냐고. 전화 건너의 상대에게 울기 직전의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나는 나를 너무 많이 사랑해서 내가 원하는 모습대로 빛나지 않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불 꺼진 방 구석에, 돌보지 않아 엉망이 된 방처럼 엉망이 된 내가 주저앉아 말을 하는데 창 사이로 볕이 들어왔다. 아주 오래된 낡은 집 나무 문틈 사이를 뚫고 그 작은 골방으로. 볕은 노랗게 들어오다가 마시다 만 유리컵을 만났고, 곧 무지개가 되어 온 방 가득 퍼졌다. 꼭 누가 별을 뿌린 것처럼. 온 방이 가득 색으로 가득 차는데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분명 아주 까만 방이었는데. 그 안에 틈이 얼마나 있다고 거길 들어와서 이렇게. 사라질까봐 유리컵을 내려놓지도 못하고, 더 들지도 못하고. 끅끅 거리며 울어서 가끔 덜덜 떨리는 채로. 그렇게 해가 질 때까지 방에 앉아있었다. 무엇이 나를 세웠냐고 누군가 물었을 때 아주 조금의 햇살이었다고 답할 수 있을 것 같은 날이었다.

 오늘도 또 밤이 가면 해를 만날 것이다. 지금까지 살며 일만 개에 가까운 달을 지내오는 동안, 일만 개의 해를 만났다. 만개의 해가 있어야 만개의 달이 뜨기에 해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끝내 만개하기 위해서도. 해를 잊을 수가 없다. 매일 잊지도 않고 찾아오는 해처럼 부지런하기는 영 어렵겠지만, 새해라고 마음을 다시 출발선에 두고 시작할 수 있다면 다만 올해도 꾸준히 마냥 좋아하기만 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만개의 달이 뜨는 내내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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