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좋은날엔 이렇게 좋은날엔
그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고운 빛은 어디에서 났을까
아름다운 꽃송이
이렇게 좋은 날이다. 하늘은 맑고 파랗고 차분하다.
2013년 그날의 봄엔, 그 해에 이런 가을을 함께 맞이할 거라 생각했다.
지난 번처럼 그렇게 다시 일어날 것이고, 병원 밖을 나서서 집으로 돌아올 거라 믿었다.
빠른 처치와 판단으로 지난 실수는 반복하지 않으리라 다짐했고, 그래서 이번의 선택은 긍정적인 후유증을 바랐더랬다. 단순하게.
2022년 병원에서 맞는 아홉 째의 가을날에
엄마는 우리를 생각하고 있을까? 무슨 생각을 할까? 꽃잎을 보고 싶을까?
이제는 생각조차 읽을 수 없는 허공의 눈동자에서 나는 참 많은 것을 듣고 싶어했었다.
괜찮다는 위로, 잘했다는 안도, 사랑한다는 마음, 아프다는 외침, 보고싶다는 소망, 힘들다는 원망, 기다린다는 바람, 답답하다는 절규...
지나친 시간들이 후회되고, 주어진 시간이 절망스러웠다.
끝없는 땅밑으로 꺼지는 느낌 속에서 간절히 바랐던 건, 단 하나였다. 한 번만 듣고 싶은 내 이름 세 글자.
너무나 진부한 되새김질의 연속이었다. 시간을 돌린다면, 아니 지금 깨어난다면, 아니 혹시 내 말을 들을까...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는 엄마만큼이나 우리도 성숙해졌다.
이젠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냥 지금은 어쩔 수가 없다고.
남들의 시선 속에서 한없이 사랑받고 자란 사람으로 해맑고 건강하게 지낸다. 남들처럼, 남들만큼, 남들과 함께 할 것들을 하면서 아주 소소하게, 엄마가 없어도.
그러다 문득, 가을 하늘에 하얀 구름이 진하게 그려지는 것처럼 머릿속에 엄마가 피어났다.
그제서야 고마웠다. 엄마가 매해 좋은 날을 선물해주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엄마는 우리가 너무 슬퍼하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해서 이별의 시간을 벌어주었구나.
갑작스레 떠나가면 남겨진 자가 겪어내야할 그 절망의 크기를 줄여주기 위해, 스스로를 고통 속에 넣어두었구나.
엄마가 없어도 하루를 건강하게 살아낼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주려고 그렇게 가까스로 버터내고 있었구나.
덕분에 우린, 굳이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만큼, 사랑이 가득하게 자랐구나...
그 긴 세월을 병상에 누워서 아무 말도, 표현도, 생각도 못한 채로 갇혀 있으면서도 우리의 곁에 남아 있었던 건, 결국 자식 셋에 대한 끔찍한 사랑이었음을.
그 봄날 바람처럼 사라졌으면 지금까지 겪은 고통에서 자유로웠을텐데도, 끝까지 붙들고 있는 삶의 한 조각은 남겨질 자식에 대한 위대한 사랑이었음을.
그러니 이제는 더 이상 내 곁에 남아달라 조를 수가 없다.
시간을 돌리자는 말도 너무나 무섭기만 하다. 그 앞에서 울부짓는 자식을 안아주지 못하고 바라보아야만 했을 그 눈동자가 서글프게만 떠오른다.
절망의 시간이라고, 왜 내게, 왜 엄마가 이런 시련을 겪어야만 하냐고 외쳤던 시간들 속에서도, 엄마는 남아서 살아내야 하는 우리가 먼저였을 것임을 너무나 확신한다.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면, 함께 거닐었던 해바라기 꽃밭이, 코스모스 꽃밭이 떠오른다.
이렇게 좋은 날을 맞이하면 이제 당신의 사랑이 먼저 느껴진다.
엄마가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의 고운 빛은 모두 엄마로부터 나온 것을.
그래서 우리는 이토록 사랑이 가득한 시선으로 세상을 다시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을 이제는 안다.
엄마, 이렇게나 좋은 날을 우린 앞으로 매해 만나겠지요.
아름다운 꽃송이를 아름답게 바라볼테고, 고운 빛에 함빡 웃음지을 수 있을거예요.
마음에 남은 사랑은 해가 갈 수록 진해질 거고, 그만큼 더 잘 살아낼 거예요. 엄마딸이니까.
그러니 우리를 그만 생각하셔도 돼요. 너무 오래, 너무 깊이, 너무 많이 아파하지 말아요.
정말이지 찬란한 사랑이예요.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