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를 낸 그대를 응원합니다
오늘 글은 몰라도아는척 100화 방송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지난 13일 장애인 이동권시위, 혹은 탈시설권 시설 시위 끝에 전장연 박경성 대표가 YTN에 출연하여 이준석 국힘 대표와 토론을 진행했습니다. 수많은 차별이 담긴 시선에도 용기를 낸 그에게, 소소한 저의 생각과 응원을 남기고자 오늘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준비한 이야기는 '서사와 인권의 역사를 짚어보다'입니다. 뜬금없이 왜 서사와 인권인지는 글의 말미에 다시 한번 정리하겠습니다.
저는 이 정의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보편적? 권리? 두 개념 다 너무 막연하고 어렵습니다. 대신 저는 매클루언의 책 구텐베르크 은하계에 묘사된 인권에 대한 정의를 더 좋아합니다. 인간이 자유로이 쓸 수 있을 때 영웅적 개인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인간성을 얻게 되었다!(실제로 이런 어구가 나오지는 않습니다. 구텐베르크 은하계를 저 나름의 시선에서 정제화시킨 것이죠.) 바로 자신만의 주체적인 서사를 만들어갈 수 있는 권리가 곧 인권이라는 이야기이죠. 또한 서사를 새로이 기록할 매체의 보급은 곧 인권의 확충이었다는 해석도 곁들여져 있습니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한 영화가 성평등적인 작품인가를 평가할 때 자주 사용되는 백델 테스트를 거론해볼게요. 백델 테스트를 통과하려면 3가지 기준이 통과되어야 합니다.
1. 영화에 이름을 가진 여성이 등장할 것
2. 여성들이 서로 이야기할 것
3. 이야기의 주제가 남자에 대한 것 이외의 것일 것.
이 테스트는 최소한의 기준으로 각본 단계에서 여성 캐릭터의 역할이 축소되거나, 남성의 트로피만으로 전락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영화들이 이 기준을 통과하지 못해요. 물론 백델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고 해서 안 좋은 작품이라는 얘기는 아니고 통과했다고 해서 '성평등적인 작품이다'라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그저 최소 기준일 뿐이라는 얘깁니다. 어쨌든 서사란 생각보다 인권과 근접하게 엮어볼 수 있는 소재라는 것이죠. 그 이유를 오늘은 다음과 같은 책과 함께 이야기해봅니다.
우리가 역사 속에서 일반 백성들이 아니라 대부분의 왕과 귀족의 역사를 기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그들에게만 허락된 주체적인 서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역사를 살펴보면 인권은 처음에는 신화적 존재에게만, 그다음은 왕과 귀족 같은 영웅적 개인들에게만 부여되었습니다. 그 외 백성들은? 인권이 없었죠. 사유재산의 차이, 통치의 효율성을 위한 강압적인 권리의 제한. 이런 차별과 함께 작용한 것은 권력층이 자신들만이 서사를 독점하고 시민들의 서사를 억압했다는 것입니다. 제정일치 사회, 문자라는 발명품이 없는 상황에서 구두언어, 즉 사람의 말이라는 것은 굉장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식을 전승시키는 유일한 수단이자, 입과 입을 통해 신화가 쌓아온 권력은 불가침의 성역에 가까웠습니다. 여기에 의문을 가지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죠. 그런데 그렇게 쌓여온 구두언어의 권위에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바로 문자언어와 그것을 기록할 매체의 등장으로 말이죠.
문자 매체의 등장은 전달할 수 있는 지식의 범위와, 영토를 넓혔고 인간의 사회는 단순한 부족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구두언어만 있었을 때는 전달되지 못하던 메시지가 기록매체를 타고 명령, 권력의 분화가 가능해지면서 통치 가능한 영토와 사회의 복잡성이 증가한 것이죠. 하지만 동시에 신화가 지는 권위는 약화되었습니다. 과거엔 구두에서 구두로 전달되던 신화가 기록을 통해 볼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나자 그 권위는 약화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회 역시 제정일치 사회에서 벗어나 문자를 익힐 수 있는 왕과 귀족에게 인권이 확대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역사책에서 배운 내용을 복습하자면 영국의 명예혁명과 권리장전, 프랑스 대혁명, 미국의 독립혁명 등 인권을 진보시킨 대 사건들이 18c에 공통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사회적 변화로는 중상주의로 인해 부유한 시민계급이 등장했고 국가 예산에 시민들이 담당하는 몫이 커졌습니다. 하지만 시민들에겐 여전히 주체적인 서사가 없었어요. 아직까지 왕과 귀족, 영웅적 개인만이 서사를 독점했습니다. 하지만 인쇄매체의 보급은 시민들의 목소리를 기록할 수 있는 공론장을 키웠고, 자신의 불만이나 생각을 책이라는 형태로 남기기까지 했습니다. 즉 시민들의 서사와 기록이 발생한 것이죠.
무엇보다 근대의 이러한 인권 쟁취의 결과물이 인쇄 매체에 문서의 형태로 공표되었다. 이지점이 저는 참 재미있다고 생각합니다. 인쇄매체는 권력을 독점하는 수단이었던 지식을 평준화시키고, 보급화 시킨 매체이자 인권이라는 개념이 적힘으로써 혁신적인 변화를 만들어낸 매체인 셈이니까요. 18세기에 책이란 여전히 부유층만 소비할 수 있는 사치재에 가까웠지만 중세나 고대만큼은 아니었습니다. 중세에 책을 쓴다는 것은 지식이나 의견을 남긴다는 것보다 오히려 종교적 행위에 가까웠습니다. 구텐베르크 활자 및 종이 생산법의 발전은 일반 시민들이 지식을 접하고, 신문이나 글의 형태로 자신들의 서사를 남길 방법의 가짓수를 늘렸습니다. 권리장전이나 프랑스 인권선언, 미국의 독립 선언문 역시 이러한 인쇄 매체에 기록되어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공표되었고, 인권의 범위는 고대와 중세에 비해 훨씬 확대되었습니다. 서사의 보급이 곧 인권의 범위를 넓힌 것이었죠.
물론 이때도 인권에서 배제되어 있던 계층은 여성으로, 여러 편견으로 인해 지식과 서사로부터 격리된 여성들의 인권에 주목한 사람은 적었습니다. 하지만 책이라는 매체의 등장은 메리 울스턴 크래프트 등 1세대 페미니스트 자신의 목소리를 책이라는 형태로, 즉 서사의 형태로 남겼기 때문에 20c 그녀의 글이 재발견되며 페미니즘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근대 이후부터는 선거권의 확대가 곧 인권의 확대를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권리가 선거권이라는 것은 인권을 서사와 등치 시켜놓고 보았을 때 참으로 오묘합니다. 나를 다스릴 권리자를 내 손으로 뽑을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한다는 것은 곧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하나의 주체로서, 서사를 가진 객체로서 존중받고 권리를 획득하였다는 증거인 셈이죠.
영국의 경우 제5차에 결친 차티스트 운동으로 인권이 확대되어갔습니다. 제1차 차티스트 운동이 벌여진 1832년만 하더라도 전체 인구 중 5.9%의 부르주아 시민계급에게만 주어졌던 선거권이 1867년 제2차 차티스트 운동에선 14.5%의 도시 노동자와 소시민에게 확대되었고, 1918년 제4차 차티스트 운동에선 남자는 만 21세, 여성은 제한적으로 선거권이 인정되어 74.8%의 이들에게 선거권이 돌아갔습니다. 1928년 제5차 차티스트 운동을 계기로 남녀평등, 만 21세 이상에게 평등하게 보장되는 보통 선거권이 보급되었죠.
분명 인권은 약 200년 만에 엄청난 진일보를 이루었습니다. 신화시대에서 영웅적 개인의 시대가 오기까지 수만 년, 또 왕과 귀족의 시대에서 시민의 시대가 오기까지 약 2천 년, 그리고 일부 시민들의 사회에서 모든 인간에게 인권이 확대되기까지 약 5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에 비하면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이 인권의 빛을 보고 있는 셈이지요.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 능력사회, 혹은 평등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이번 2022년 대선과 장애인 이동권 시위에 대한 몇몇 사건이 특히 그러하다고 저는 느낍니다. 제가 앞서 인권이 서사의 보급과정이다라고 이야기한 것은, 그러한 점에서 이번 대선과 장애인 이동권 시위에 대한 서사는 정말로 불공평했기 때문입니다.
많은 매체에서 그들의 서사와 이야기가 지워졌습니다. 언론과 매스컴은 이번 대선에서 이대남이라는 신조어를 만들 정도로 20대 남성들의 목소리와 그들의 서사에 귀를 기울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공신력 있는 많은 지표들이 여성들이 차별받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음에도 여성들의 서사엔 크게 기울이지 않았습니다.(이대남 현상에 대한 지표가 궁금하신 분들은 책 '20대 남자, 남성 마이너리티 정체성의 탄생을 참고해보시길 바랍니다.) 여성들이 토로하는 유리천장의 문제부터 성폭력과 성희롱, 격해지는 젠더갈등. 목소리를 내고 여성들이 스스로의 서사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늘었습니다. 그런데 그 서사에 주류 매체는 귀를 기울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대남들은 서사를 획득하고 자신의 인권을 지켜냈을까요? 대선 이후 이대남이라는 용어가 쏙 들어간 것을 보아하니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목소리 역시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강경한 시위에 나오기까지 이들의 서사는 그림자 영역에 있었습니다. 때문에 이들은 자신들의 서사를 널리 알리기 위해 강경한 시위라는 형태를 취했고, 많은 비난과 우려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매스컴 앞에 서기로 결심했습니다. 자신들의 서사를 이야기해야 인권이라는 권리를 쟁취할 수 있으니까요.
정리해 보겠습니다. 인권은 지식의 독점 와해, 매체의 보급과 함께 발전해왔습니다. 처음엔 몇몇 신화적 존재에게 허용된 인권이 영웅적 개인에게, 그리고 부유한 시민, 다음으로는 일반 남성, 인종을 경계를 넘고 여성에게, 그리고 메타버스의 등장은 어린아이들에 게도 인권을 넓힐 기회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지식의 보급과 서사의 분산은 인권감수성이 높은 사회를 만듭니다. 하지만 모든 매체들이 기록을 담당한다고 해서 평등적이진 않습니다. 신문과 텔레비전은 남성의 시대에, 유튜브나 SNS는 밀레니얼의 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다음 세대의 인간들에게 그리 평등하진 않습니다. 땅을 먼저 선점한 이들의 문화나, 영향력이 짙게 배이기 때문이겠죠. 구두 언어는 부족적 특징이, 인쇄 언어는 시각 중심의 파편적 특징과 가부장제가 짙게 녹아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여전히 자신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는 매체가 있고, 거기에 목소리를 남긴다는 행위 자체에 인권을 확대시킬 저력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매체와 역사가 그 과정을 증명해왔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