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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라소라빵 Dec 28. 2021

인권의 시각에서 보는 기후위기

저번에는 기후위기에 대한 위기를 상상력으로 풀어내는 이야기들과 실제로 기온이 1도씩 오를 경우 발생할 시나리오들, 그리고 기후위기의 책임 담론에 대해 이야기했었습니다.


1) 갑자기 뜬금없지만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_기후위기가 불러올 재앙들

2) 기후위기_노는 누가 저어야 하죠?_기온이 오르면 벌어질 일들과 기후위기의 책임 담론


이번 시간에 할 이야기는, 그 복잡한 책임 담론을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들의 사례입니다.



국가 레짐과 책임단위로는 해결할 수 없는 기후 문제. 인권의 시작에서 보자면?


기후위기에는 두 가지 딜레마가 있습니다. 명확하게 책임자를 지목해서 배상을 하게 하기엔 책임관계가 명확하지 않거나, 명확하더라도 배상을 실행에 옮기게 하기까지 마주해야 될 복잡한 문제들이 첫 번째이고, 경제적 책임배상의 관점에선 다른 정책적 안건, 국가안보나 경제적 성장에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는 점이 두 번째입니다. 때문에 기후 인권을 인권과 결부해 해석해, 다양한 관점에서 기후위기를 조명하고, 기후위기를 단순히 어려운 수치나 막연히 터전을 잃는 북극곰의 이야기로 치환시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권의 시각에서 기후위기를 해석하는 것은 매력적이고 새로운 시도입니다. 특히 침해가 인정되는 즉시 시정해야 하는 기본권인 인권의 특성상 당장 행동해야 될 주체와 보상받아야 할 객체를 명확히 지목해준 다는 점 또한 기후위기를 인권의 시각에서 바라볼 때 얻을 수 있는 장점입니다. 대부분의 국가 헌법에는 직간접적으로 나마 환경권을 보호하기 위한 인권 기반 조항을 포함하고 있기에 범용성 있게 적용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 중 하나이죠. 기후위기는 다음과 같은 인간의 기본 권리를 침해할 수 있습니다.



국제 엠네스티가 밝히는 기후위기가 침해할 수 있는 인권조항들

1) 생명권

우리 모두는 자유롭고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후위기는 폭풍이나, 빈번하게 발생하는 홍수, 극심한 산불 이외에도 팬데믹, 퍼져나가는 바이오 해저드인 말리리아나 황열병, 폭염으로 인한 질병 등으로 매년 25만 명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2) 주거권

우리는 자신과 가족의 적절한 주거 수준을 영위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후변화는 다양한 형태로 주거권을 위협하며, 살 터전을 망치고 이재민을 발생시키고 있습니다. 가뭄에서 홍수, 해수면 상승 등 기후위기로 인해 초래되는 재난은 수백만 명을 위협합니다. 유엔은 지금 이대로 기온이 상승한다면 2050년엔 기후난민이 약 2억 명에 달할 것으로 예측하는데, 이는 로마 제국이 전성기를 누릴 시절의 전 세계 인구와 맞먹는 숫자입니다. 한 때 지구에 살았던 전체 인류의 수만큼의 사람들이 거처를 잃고 떠도는 모습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한 일입니다. (유엔의 로버트 왓킨스 2015년 성명문 Mabashar Hasan, "Bagladesh's Climate Change Migrants." Relief Wen, 2015)


3) 담수와 위생에 대한 권리

기온 상승과 해빙, 해수면 상승 등 기후변화로 초래되는 변화는 수자원의 질과 그 냥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탄소배출량이 감소하지 않는다면 21세기가 끝날 무렵쯤엔 해수면이 최소 1.2M에서 최대 2.4M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는 데(Benjamin Strauss and Scott Kulp "Extreme Sea Level Rise and the Stakes for America" Climate Central, (2017)) 침수는 물론 담수를 확보하는 데 치명적인 어려움을 낳을 것입니다. 파리 기후협약에서 정한 기준을 달성하더라도 히말라야 산맥에 존재하는 빙하는 2100년까지 40% 이상 줄어들어 중요한 담수원이 상실될 것입니다.("impact of a Global Temperature Rise of 1.5 Degrees Celsius on Asia's Glaciers" Nature549(2017), pp257-260)


기후위기를 인권으로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은 잘못된 불의에 공분을 느끼는 인류 공통의 정의감을 바탕으로, 타협의 대상이 되지 않기에 앞서 언급된 복잡한 사회적, 정치적 타협을 초월해 하나의 규범으로서 지위를 획득할 수 있는 행동기준이기도 합니다. 또한 기후위기를 인권의 위기로 바라보는 시각은 기후 재난의 여러 측면에 대한 사회적 상상력을 길러, 좀 더 다양한 계층의 시각에서 엿보고, 우리의 문제로 공감하게 합니다. 


1) 인권의 시각에서 바라본 기후 재난 : 바이러스


우리가 최근에 겪었던 팬데믹, 코로나19 바이러스야 말로 기후재난의 여러 속성을 들추어낸 살아있는 예시 중 하나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재난은 모든 이에게 보편적으로 발생하는 것 같았지만, 그 영향은 계층에 따라 차별적이었습니다. 비교적 소득이 안정적이고 병상에 대한 접근이 수월한 고소득층보다 저소득층에게 팬데믹은 치명적으로 작용했죠. 오히려 고소득층은 거리두기로 지역은 물론 국경의 이동이 제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백신을 찾아 전용기를 타고 대륙을 건너는 모습을 보이는 등  자유로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코로나19의 발생원인으로 지목되는 가설 중 유력한 것 은 역시 기후위기와 연관된 현상에 대한 것으로, 환경파괴로 인해 종의 다양성의 감소, 도시의 확장과 삶의 터전을 잃은 야생동물의 도시로의 이동, 그리고 도시의 인구 밀집이라는 여러 정황이 결합해 인수 감염으로 확산된 질병이라는 주장입니다.


그렇다면 누구보다 일차적인 원인을 제공한 사람은 탄소 배출량이 많고, 누구보다 도시개발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고소득층으로, 그런 고소득층이 이러한 재난에 오히려 누구보다 자유로웠다는 사실은 참으로 역설적인 사실입니다. 때문에 인권의 시각으로 코로나 19를 바라본다면 기본권과 생명권을 침해받은 사람과, 이를 침해한 사람이 명확해 짐으로 기본권을 침해받아 보상받아야 할 피해자와, 이를 배상해야 할 가해자를 명확히 지목할 수 있습니다.


2) 젠더에 따른 기후위기의 침해 차이


기후위기와 인권의 결합, 그 두 번째 영역으로는 젠더의 영역이 있습니다. 기후위기로 발생하는 재난도 젠더에 따라 그 피해가 다른 경향이 나타났다는 것이죠. 한 사례로 1991년 방글라데시를 강타한 초대형 사이클론 해일의 사례가 있습니다. 당시 사이클론은 고작 3시간밖에 지속되지 않았지만, 정부 집계에 따른 3시간 만에 약 13만 명의 사망자를 발생시켰습니다.


그런데 이 재난 속에서 사망한 사람은 남성보다 여성이 42%나 많았습니다. 단순히 여성과 남성의 신체적 차이 때문이었을까요? 이를 좀 더 자세히 연구한 학자들이 제시한 가설에 따르면, 사망률 차이의 원인은 인권의 차이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연구자들이 주장하기를, 방글라데시는 젠더격차가 심각한 사회로 여성이 주로 살림이나 양육을 위해 집안에서 지냈기 때문에 급격하게 발생한 재해에 빠른 대피와 대응이 어려웠습니다. 두 번째 가설로, 방글라데시의 여성 전통 복장인 사리가, 온몸을 감싸는 특유의 형태 때문에 폭우 속에서 이동과 수영을 제한했고, 때문에 제대로 된 대피가 어려웠을 거라는 주장입니다. 마지막으로 젠더격차가 심한 방글라데시에선 남성에 비해 여성의 식단이 부실해 여성들의 영양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이러한 사회적 배경이 비상사태에 대비하는 여성들의 운동능력을 떨어트렸고, 결국 가까스로 재난을 피하더라도 남성에 비해 회복이 느려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을 거라는 주장입니다. 방글라데시의 기후재난은 남존여비 문화로 대표되는 젠더격차와 여성의 행동을 통제하는 드레스 코드, 이슬람 생활규범 상의 차별구조가 어떻게 기후재해에도 영향을 주는지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3) 인종과 경제적 차이에 의한 기후위기의 침해 차이


기후위기는 영화 <기생충>에서 연출되듯이 저소득층에게 더욱 치명적으로 작용합니다. 저소득층은 기후위기에 더욱 치명적인 피해를 받는 것은 물론, 회복이 느리고 재해로부터 피해를 입을 가능성 또한 더욱 높습니다. 불평등한 사회에서 저소득층은 주택 가격이 낮은 상습 침수 지역이나 노후화된 주택에 거주하게 되는데, 이는 곧 기후 재난에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아짐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기후 재난에 노출된 뒤 회복할 '탄력성' 또한 부유층에 비해 떨어지는데, 부유층은 보험을 통해 피해에 노출된 뒤 빠른 회복을 도모할 수 있지만 빈곤층은 피해 복구를 위해 얼마 안 되는 모아둔 돈을 쓰거나, 심할 경우 빚까지 져야 해 회복력은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사회 불평등은 더 벌어지고, 경제적 구조뿐만이 아니라 탄소 경제가 불러일으키는 더욱 빈번한 기후 재해가 사회 불평등을 심화, 지속시키는 셈입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미국의 뉴올리언스의 사례가 있습니다. 뉴올리언스는 인종 간 소득 차이가 큰 도시로, 2005년 허리케인 카타리나가 상륙했을 때 공식 발표된 사망자 수만 1500명에 달하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중 침수지역의 거주민 중 80%는 유색인종으로, 기후재난으로 인해 사회 제반 시설 대다수가 마비된 뉴올리언스는 천문학적 경제 손실을 입었고, 백인과 유색인종간의 소득 격차는 더욱 벌어졌습니다. 특히 주의 깊게 봐야 할 점은, 당시 피해를 입은 사람 대다수가 바닷가 근처 빈곤층 거주지역에서 삶을 이어가던 사람들로, 빈곤층 거주지역이기에 투자가 부실했던 제방이 붕괴되어 큰 피해를 입었다는 것입니다. 뉴올리언스 당국이 평소에 빈곤지역의 인프라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기에 사건을 키운 인재인 셈이죠.


이러한 기후재난으로 인한 피해가 저소득층에게 집중되는 것이 더욱 불공정하게 비치고, 인권을 훼손한다고 비판받는 이유는, 이들의 가난은 사회의 구조적인 인종주의의 유산으로 인한 것으로 대부분 대를 이어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 그리고 누구보다도 탄소배출의 책임이 가장 작은 사람들이지만 그 영향과 피해를 가장 크게 받고 취약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경제적 차이로 인한 인권 침해는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일은 아닙니다. 탄소 배출을 둘러싸고 ‘노를 누가 저을 것이냐.’를 두고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의 치열한 신경전 또한 오가고 있습니다. 에너지 빈곤층일수록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력이 떨어지듯이, 선진국보다 제3세계 국가들의 기후위기 대응력은 떨어지지만, 이들은 선진국이 남긴 탄소 기반의 문명의 발전 경로를 그대로 밟아, 화석연료에 투자하는 것 외에는 발전의 선택지가 없습니다. 빈곤에서 벗어나는 현실적인 수단은 선진국이 했던 개발 수순을 따라가는 것뿐이고. 이러한 과정에서 온실가스를 더욱 배출할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탄소배출은 기후위기, 해수면 상승, 담수 부족과 농작물 수확의 감소라는 차례차례 찾아오는 기후재난으로 스스로의 숨통을 조이는 자충수에 가깝습니다. 개발을 통해 당장은 굶지 않으나 가까운 미래에 기후재난에 의해 파멸할 것인가, 당장 굶어 죽을 것인가 사이의 딜레마에서 개도국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개도국이 식민지 사관 아래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지속가능성을 선진국에게 ‘수출’하고 있는 관행 역시 치명적입니다. 빠르게 산업화를 달성한 서구권은 자국의 지속가능성을 망가트리는 자원 추출형 경제를 식민지로 넘겼습니다. 사탕수수와 커피, 차, 면화와 바나나, 고무와 담배로 대표되는 환금작물을 재배하게 했는데, 효율성을 위한 단일작물 재배는 몇 년이 안 되어 토양의 질을 급격히 무너트렸습니다. 그러면 더욱 깊게, 더욱 넓은 숲을 베어버리고, 대규모 농장을 개간하는 형식의 환금작물 재배는 식민지의 지속가능성을 헤치는 것은 물론 탄소를 흡수할 귀중한 산림을 훼손하였습니다. 그런 결과를 불러일으킨 선진국이 최소한 배상해야 할 것은 국가 간 논리가 아닌, 인권 침해에 대한 책임입니다.


인권의 시각에서 기후위기에 대한 배상을 요구한 사례들

자신의 인권을 위해 스스로 행동에 나서고 있는 청소년들. 사진은 미국의 청년 기후 활동가 그레타 툰베리

기후위기를 인권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인권 규범에 따른 법상의 구제 조치와 결합하여 기후와 관련된 법적 소송을 제기하는 형태로 발전하였습니다. 기후 소송은 2019년 12월을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약 1,442건이 다루어졌고, 그중 미국 내에서 제기된 소송이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소송은 기후위기로 인한 인권 침해에 대한 배상을 국가와 기관에 요구하는 수준에서 출발하였지만,  점차 온실 가스 감축을 위한 공공정책에 영향을 주려는 목적에서 , 문명과 자연의 이분법적 논리에서 벗어나 사회의 구조적 근본 원인을 따지는 사회과학적 담론으로 까지 발전했습니다.


기후위기 속 인권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꾼 초기 기후 소송


005년 북미 극지방의 토착민 이누이트는 미주간인권위원회에 미국을 상대로 인권침해 진정을 제기한 적이 있습니다. 소송의 내용은 미국이 기후위기에 대응을 게을리 함으로 빙하가 녹고, 겨울이 없어지면서 이누이트의 문화적 정체성과 영적 생활, 주거 건강과 생명의 기반인 동토가 사라지면서 자신들의 인권이 침해받고 있다는 이유에서 입니다. 운동가 실라 와트 클라우티어(Sheila watt clout)는 '추울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며 자신들의 경제와 사회, 건강권을 해치는 기후 변화로부터 보호될 권리, 그리고 그들의 문화적 경제적 기반인 북극지방의 야생생물이 의존하는 동토를 지킬 권리가 있음을 역설하였습니다. 결국 이 진정은 각하되었지만 미디어를 통해 널리 소개되며 대중의 여론을 환기해 정책 논의를 촉발하고, 기후 정책과 위기를 인권의 시각에서 보는 패러다임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뉴질랜드의 왕거누이강 유역에 거주하는 토착 민족인 마오리 족 역시 2012년 뉴질랜드 정부를 상대로 체결한 협정 또한 사회 구조적으로 기후위기가 어떻게 인권을 침해하는지 그 의미를 제기하며 기후 문제를 인권의 시각에서 바라보았습니다. 왕거누이족은 서구 문명의 시각인 '자연과 문명'의 이분법적인 시각으로 자연을 바라보지 않았고, 자신들이 자연을 바라보는 형태, 그리고 자연과 자신들의 문명이 이룬 관계 역시 보호받아야 할 권리 중 하나이며, 자신들의 생활기반인 강 수역을 지키는 일이 곧 자신의 권리를 지키는 일이라 주장했습니다. 이는 왕거누이족의 격언인 '코 아우 테 아와, 코 테 아와 코 아우(나는 강이고, 강은 나다.)에서도 드러나는 시각으로 그들의 주거지와 문화가 자연에 근원을 지닌 만큼 기후의 위기는 곧 그들의 인권의 위기임을 역설했습니다. 엄격한 법의 언어에서 볼 때 이들의 소송은 적격성을 띄고 있지 않고, 법리적 해석의 관점에서 구체적인 피해 입증을 해낸 건 아니지만 기후위기를 바라보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니고 있습니다.



승리를 거둔 다양한 계층의 기후 소송들 

인권에 기초한 기후 소송으로 기후위기에 접근하는 패러다임을 바꾼 네덜란드 위르헨다 소송

1) 정부를 상대로 승리한 최초의 선례, 네덜란드의 위르헨다 소송

인권을 토대로 제기한 기후 소송에서 탁월한 분기점을 만든 것은 네덜란드의 ‘위르헨다’ 소송입니다. 2013년 네덜란드 환경단체 위르헨다는 네덜란드 정부를 상대로 “기후변화 대응을 소홀히 해 국민 건강권을 헤쳤다.”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소송의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더욱 강화하고, 구체적 이행 계획을 수립하라는 요구로 1심(2015년)과 2심(2018)년 정부에게 “2020년까지 1990년 온실가스 배출량의 25% 이상을 감축하라.”며 환경단체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정부의 항소심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은 하급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해 2019년 12월 위르헨다의 승리로 소송은 막을 내렸습니다. 위르헨다 소송은 인권을 토대로 정부에 기후위기에 적극 대응할 것을 요구해 결국 승리까지 거머쥔 값진 사례로, 이후 위르헨다 소송을 따라 여러 기후 인권 소송을 자극한 케이스로 남았습니다.


2) 농부가 기후 소송을 제기하다.

환경단체가 아니라 농부가 주축이 되어 기후 소송을 제기한 사례 또한 있습니다. 2015년 파키스탄에선 농부 아쉬가르 레가리(Asghar Leghari) 정부를 상대로 기후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소송의 내용은 중앙 정부가 2012년에 발표한 기후변화 정책과 2014년부터 30년까지 추진하겠다고 밝힌 정책을 제대로 실천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2015년 파키스탄 항소법원은 시민의 손을 들어주며 정부의 태만으로 인해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당했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 판결로 인해 파키스탄 정부는 각 정부 부처에 기후변화 담당관을 임명하고, NGO 전문가들을 초청해 구성한 기후 변화 위원회를 조직했습니다. 파키스탄의 기후 소송 사례는 인권에 근거해 시민이 정부를 대상으로 승소한 최초의 사례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3) 가장 막심한 피해를 받는 미래세대. 직접 소송에 뛰어들다.

기성세대가 자신의 욕심 때문에 행동으로 옮기지 못해 발생한 기후 문제에서 주된 탄소 행위 주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큰 피해를 감내해야 하는 청소년이 직접 기후 소송에 뛰어들어 얻어낸 사례들도 기후 소송에 많은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기후위기의 명확한 책임을 지닌 행동 주체로 기성세대를 지목한 기후 소송의 사례로 콜롬비아에서 7세에서 26세의 다양한 젊은 세대 25명이 ‘미래 세대의 요구’라는 이름의 원고단을 구성해, 환경부를 제소한 소송입니다. 소송의 주된 내용은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기업이 아마존 유역과 산림을 보전할 의무를 방치하여, 원고의 기본권을 박탈했다는 것입니다. 1심에서는 정부가 승소하였지만, 대법원이 결국 원고인 젊은이들의 손을 들어주며 “생명, 건강, 최소한의 생계, 자유, 그리고 인간 존엄성이  환경 및 생태계와 실질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며 기후위기와 인권과의 상관관계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특히 기후위기 속에서 누구보다 치명적인 재난에 놓여 있는 미래세대가, 기후위기의 행동 주체로 기성세대를 지목하고, 기성세대가 책임져야 할 몫에 대해 목소리를 높인 이 사례는 ‘미래세대’라는 법적 문법상으론 조금 불명확했던 인격체의 권리를 인정받은 최초의 사례이기에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비슷한 논리로 미국에서도 2015년 8월 12일 국제청년의 날, 미국 전역에서 모인 약 21명의 청소년들이 오레곤(Oregon) 지방법원에 연방정부를 상대로 기념비적인 헌법에 기초한 기후변화 소송을 제기한 사례가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기후과학자인 한센(James E. Hansen) 박사도 미래세대와 손녀의 보호자 자격으로 이 소송에 참여하여 연방정부가 화석연료를 개발하고, 그 사용을 허가 · 장려하여 그 영향으로 기후변화가 일어나 헌법이 보장하는 젊은 세대의 생명과 자유, 그리고 재산권을 침해하여 필수적인 공공자원인 기후시스템을 보장하는데 실패했기에 정부를 고소한다고 밝혔습니다. 연방정부가 수립했던 국가 화석 연료 프로그램의 문제점 또한 지적하였는데, 화석연료가 기후시스템에 끼치는 영향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연방정부가 지속적인 화석연료의 개발에 책임을 지지 않았고, 때문에 이산화탄소 농도를 2100년까지 안전 수준으로 줄이는데 정부가 앞장서 계획을 이행하기를 법원에 요구했습니다. 연방정부와 같이 피고에 포함된 화석연료 회사(전미제조협회(National Association of Manufacturers; NAM), 미국 연료⋅석유화학 제조 단체(American Fuel & Petrochemical Manufacturers; AFPM), 미국석유연구소(American Petroleum Institute; API)등)는 원고의 청구에 소송의 요건을 성립하지 못한다고 각하 신청을 하였으나 오레곤 연방 정부는 이 신청을 기각함으로 기후위기에 대한 정부의 위법성을 다루는 유례없는 사건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소송의 주요 쟁점은 기후위기가 과연 법적인 문법에서 소송의 요건을 만족하느냐 못하느냐에 있었는데, 원고인 미래세대는 이산화탄소의 배출을 고의적으로 증가시킨 피고의 행위가 자신들의 생명권과 자유권을 침해하고 있기에 소송의 요건을 만족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행위로 인해 이득을 본 특정 시민, 이를테면 기성세대의 단기적인 경제적 이익을 우선시함으로 미국 수정헌법 제5조 속에 내재된 미래세대의 동등한 보호권을 침해했고, 미래세대에게 필요한 자연자원을 부정하여 수정헌법 제9조가 보장하는 공공 신탁의 법리, 즉 공적 이익을 위해 자연 자원이 보전되고 보호되어야 할 의무를 저버리고 화석연료의 채굴과 생산, 소비, 이송과 수출을 통해 탄소 오염을 가중시킨 기업과 정부에 책임이 있다는 논리였습니다. 반면에 피고인 기업들인 이 소송이 사법심사의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 즉 사법심사 적격성이 결여된 정치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반발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미래세대의 손을 들어주며 ‘단순히 다수의 같은 사람들이 같은 피해를 겪고 있다는 점만으로 원고의 적격성을 거부할 수 없으며, 기후변화를 둘러싼 논쟁은 다양한 정치적 기구에서 다루어지고 있지만 원고에게 닥치거나 이미 닥친 손해(harm)가 장년층이 받게 될 손해보다 더 클 것이기 때문에 사법심사의 대상이 될 적격성(justiciability)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미래세대가 자신들의 미래 권리를 위해 스스로 움직이고, 기존에 사법심사의 요건으로 충족되기 어려웠던 ‘불분명한 다수의 피해자’라는 요건도 인정받은 케이스입니다.     


미국의 미래세대가 스스로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케이스는 켈시 줄리아나 외 20명의 청소년과 환경 단체, 그리고 유명한 기후학자 제임스 핸슨이 원고로 참여한 소송이 있습니다. 이들은 기성세대가 온실가스를 줄이는데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아, 미래 세대인 자신들의 생명권과 자유권이 침해당하고 있다는 논리 하에 미국 정부에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어른들의 욕심으로 인해 기후대책의 마련이 늦어지고 있고, 그 비용은 오롯이 청소년과 미래세대에게 전가되어 ‘평등한 보호’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논리에서 입니다. 2020년 초 미국 재심 법원은 원고의 소송을 각하했지만, 원고 측은 소송을 계속해서 이어나가겠다고 밝힌 상태입니다. 




지금까지 제기되었던 기후 소송의 결과를 정리하자면, 소송은 원칙이나 규범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때가 금전적인 피해를 보상받기 위한 소송보다 승소 확률이 높았습니다. 앞에서 소개했듯이 인권이라는 관점 아래 기본권을 구제받을 용도로는 활용될 수 있으나 개인적인 차원에서 기후재난이 지닌 복잡한 책임 분배의 문제로 배상책임자를 명확히 집어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기후재난의 악영향을 설명하기는 쉬워도 구체적인 피해가, 누가, 어떻게 입혔는지 인과적으로 입증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워 사법 체계 내에서 온전한 배상을 받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기후 소송은 기후 재난이 어디까지 인간의 ‘불의한’ 혹은 ‘이기적’인 행동이 불러일으키는 결과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용될 때 더욱 높은 효과를 얻을 것입니다.


 


참고문헌


조효제(2020), 탄소 사회의 종말, 21세기 북스


데이비드 월러스 웰스(2020), 2050 거주불능 지구, 추수밭


유엔의 로버트 왓킨스 2015년 성명문 Mabashar Hasan, "Bagladesh's Climate Change Migrants." Relief Wen, 2015


Benjamin Strauss and Scott Kulp "Extreme Sea Level Rise and the Stakes for America" Climate Central, (2017)


impact of a Global Temperature Rise of 1.5 Degrees Celsius on Asia's Glaciers" Nature549(2017), pp257-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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