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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라소라빵 Aug 07. 2022

21세기 정치 팬덤과 빅데이터

정치적 양극화를 부추기는 알고리즘의 역설

오늘의 이야기는 '몰라도 아는 척' 105화와 106화에서 다룬 내용을 기반으로 합니다.


21세기의 민주주의, 그 가장 큰 격변의 중심은 인터넷과 SNS, 그리고 정치 팬덤의 등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의 기적과 같은 당선 스토리에 함께한 노사모,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전까지 지지율을 방어해낸 박사모,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을 둘러싼 팬덤과 안티까지. 이렇게 정치 팬덤은 이미 대한민국 정치 역사에 새로운 장면을 여럿 남겼지만, 수많은 계층이 얽힌 정치 팬덤을 어디에서부터 논하고, 어디까지 다뤄야 할지 조금 망설여집니다. 그러다가 정치 팬덤에 관련된 딱 맞는 이야깃거리를 발견했습니다. 바로, 영화 <국제시장>과 <변호인>. 둘 다 천만 관객을 넘긴 흥행 영화이자 타깃으로 하고 있는 세대나 계층이, 동전의 양면과 같은 영화인데요. 박정희, 노무현 대통령의 시대를 관통하는 <국제시장>과 <변호인>.  이 두 영화를 통해 21세기 정치 팬덤 현상과 정치 양극화 현상에 대해 다루어봅니다.     

  


1. 열정과 맹신의 두 얼굴 '팬덤'

본격적인 영화 이야기에 들어가기 전 하나 고백하자면, 저는 ‘팬’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참 미묘한 기분이 듭니다. 불타오르듯 열정적인 동시에, 어딘가 꽉 막힌 것만 같이 느껴지는 단어. 그런데 ‘팬덤’이란 개념의 어원을 살펴보면 참으로 절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팬덤(Fandom)은 ‘광신자’를 뜻하는 퍼내틱(fanatic)에서 따온 용어인 팬(fan)과 영토를 뜻하는 덤(dom)이 결합한 합성어입니다. 퍼내틱의 어원은 파나티쿠스(fanaticus)라는 라틴어로, 교회에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사람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던 것이 차후 중독자라는 의미를 내포하게 되면서 광신자를 뜻하는 퍼내틱이라는 단어로 변형되었죠. 팬덤이라는 말엔 ‘봉사와 맹신’, 두 얼굴이 공존하는 셈입니다. 넓게 보면 종교야 말로 ‘팬덤’이라는 단어가 가진 양면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나 부처는 자신을 신봉한 팬이 있었기에, 자신의 뜻을 세상에 알리고 선한 영향력을 끼쳤지만, 때로는 팬들의 광신적인 면모로 역사 속 암흑기의 한 장면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예수의 열두 제자와 부처의 십 대 제자는 팬클럽 회장쯤 되는 존재로, 그 찐팬들로 인해 인류사가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지요. 그런데 지금은 이 찐팬들이 전 세계 정치 지형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기적과 같은 당선은 인터넷으로 인한 정치지형의 변화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인터넷은 텔레비전 시대의 정치는 만들 수 없는, 원자에 가까운 개인들을 하나로 묶고, 보이지 않는 연결을 만들어 냈습니다. 무명 정치인이었던 그가 내세운 지역주의 극복과 정치개혁이라는 가치는 인터넷을 통해 지지자들이 서로를 발견하고 응집하였고, 스스로 인터넷에서 선거 운동의 동력을 확보하여 결국 굳건한 지지층을 유입시키는 데 성공을 했습니다. 인터넷이 없었다면 그렇게 빠른 속도로 사람들이 규합되고, 눈에 보일 정도의 원동력을 만들 수 있었을까요?  이러한 배경을 이해한 상태에서 <국제시장>과 <변호인>이 비추는 정치 팬덤의 기반인 ‘집단 기억’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국제시장>과 <변호인>. 각 1970년대 경제 성장의 주역인 박정희와 2000년대 민주주의 신화를 다시 쓴 노무현이라는 인물을 관통하는 영화로, 각자 천만 관객이라는 흥행과, 수많은 안티를 동시에 지닌 영화입니다. 신파극을 좋아하지 않는 저는 사실 이 두 영화 모두 개봉 당시 스크린을 통해 보지 않았습니다. 각 영화는 제가 태어나기 이전 세대의 집단 기억을 바탕으로 했기에 저에겐 재미있는 영화처럼 느껴지지 않았죠. 그러나 이 영화를 다 본 시점엔 어느 측면으론 ‘참 서로 비슷한 영화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변호인>

박정희와 노무현 시대, 전혀 다른 두 세대를 타깃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는, 마치 동면의 양면과 같이 비슷한 구조를 지닌 영화입니다. <국제시장>은 70년대 아버지들이 가진 경제성장기의 투쟁과 가족에 대한 헌신과 같은 집단 기억에 호소한다면, <변호인>은 90년대 아버지들이 지닌 민주주의를 향한 대중의 열망이란 집단 기억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반면 이들은 서로의 집단 기억에서 특정 역사를 배제시켰다는 점 또한 서로 거울에 비친 모습과 같습니다. <국제시장>이 독재와 같은 시대의 어두운 면을 집단 기억에서 배제시켰다면, <변호인>은 노무현 특정 인물로 수렴될 위험이 있습니다. 영화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혹평이 영화의 재미 자체를 훼손시키지 않지만, 각 영화에 담긴 집단기억은 각 정치 팬덤을 응집시키는 주요한 요소가 됩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성장 시대를 다루는 <국제시장>

에밀 뒤르켐은 ‘집단 기억’에 대해 사회적 조건에 따라 일반화된 하나의 심상이라고 정의 내립니다. 이 집단 기억은 타인과 자신을 구분 짓는 ‘아비투스’로써 역할을 수행하기도 합니다. 때문에 기억이란 만고불변의 객관적 진리 라기보다는, 특정한 사람에게만 유효한, 재구성된 경험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국제시장>은 박정희 산업화 시대의 로망만을 엮은, 그 시대 아버지들의 집단 기억으로 구성된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제 성장을 이끌었던 박정희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만을 구성된 영화. 반대로 <변호인>은 민주주의 시대를 갈망하고, 독재시대를 혐오했던 다음 세대 아들들의 기억으로 재구성한 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전자가 <박사모>라면 후자는 <노사모>인 셈이죠. 초기 정치 팬덤의 신화를 써 내려간 가장 강력한 정치 팬덤들. 두 팬덤은 초기엔 각 정치인의 정치적인 목적과 비전에 공감한 사람들이 응집한 후, 이후 팬덤 안에서 등산회, 낚시회 같은 동호회가 자생하면서 일종의 친목 커뮤니티로 발전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는 조직력을 키우고자 하는 팬클럽 설립의 주체와, 정치적 신념이 비슷한 사람들과 연대감을 쌓고 싶어 하는 팬들의 니즈가 부합했기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기류로, 정치적인 쟁점이 없는 경우에도 팬덤 내에서 지속적인 교류가 이루어졌습니다. 비슷한 집단 기억을 공유했기에 서로 친목을 쌓기도 쉬웠던 걸까요?     


그런데 이젠 인터넷을 넘어 SNS를 위주로 정치 팬덤이 구축된 현재는 이런 집단 기억을 공유하는 이들을 발굴해내는 것이 매우 쉬워졌습니다.  빅데이터 알고리즘은 마치 성벽을 쌓아 올리듯 손쉽게 자신의 세계 안에 빠질 수 있게끔, 그 사람이 선호하는 정보만으로 페이지를 구성해줍니다. 그렇게 해야만 소비자가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서비스에서 이탈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이 알고리즘은 상업적으론 완벽할지는 몰라도, 민주주의란 제도 내에선 치명적입니다. 반대되는 이해집단에 대한 혐오감은 키우고, 서로를 마주하고 제대로 갈등할 수 있는 기회는 앗아가니까요. 오랜 연인들이 건전한 갈등을 통해 서로 합의점을 찾아내듯이, 건전한 민주주의엔 갈등의 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알고리즘은 굳이 팬카페에 가입하지 않더라도 비슷한 취향을 지닌 이들을 추천해줌으로써 갈등은 배제하고, 반대 집단에 대한 혐오감은 쉽게 공유할 수 있는 장으로 SNS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더욱더 양극화된 정치 팬덤의 형태로 말이죠.      


2. 빅데이터가 알고리즘이 몰고 온 정치적 양극화      
출처는 자료에 표기된 바와 같음

위의 그래프는 지난 20년 간 정치적 양극화가 진행된 미국 유권자들의 상황을 보여줍니다. 양극화된 시민들은 이전보다 상대 진영에 대한 분노와 적대감을 키웠습니다. 예컨대 보수 성향의 시민들은 절반 가까이가 직계가족이 반대 진영 지지자와 결혼한다면 분노를 느낄 것이라 응답하고 있습니다. 불과 20년 전만 하더라도 이는 20%에도 미치지 않았습니다. 동시에 중위 지지자의 비중은 줄어들고, 약 극단에 치우진 유권자의 수는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출처는 자료에 표기된 바와 같음

물론 정치 팬덤 자체가 이러한 악영향을 몰고 온 것은 아닙니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기존에 정치적 목소리를 응집하지 못했던 여성이나, 소수자 역시 자신들의 구심점을 쉽게 발견하고, 빠르게 응집하여 의견을 표출할 수 있다는 것이니까요. 지난 대선은 ‘이대남’이라는 계층이 주목받았던 만큼, 20대 여성들의 목소리가 빠르게 응집되어 큰 격차로 뒤처질 것이라는 분석이 무색할 정도로 대선의 결과를 치열하게 좁혀냈습니다.     

 

그러나 21세기 정치 팬덤 현상을 눈앞에 두고 하나의 질문만은 던져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고민할 필요 없이, 효율적으로 ‘최적’의 방안과 정보를 던져주는 알고리즘은 과연 민주주의에 있어 ‘최선’의 방법이 될 수 있을까요? 서로의 집단 기억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없는 상태에서의 민주주의가 과연 각자의 입장 차이를 좁히고,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 의문스럽기만 합니다. 그러나 무색하게도 정답은 뻔하고 교과서적입니다. <국제시장>을 보며 70년대 아버지들의 감상을 이해하고 <변호인>을 보면서 동시에 독재의 어두운 면을 이해하는 것. 알고리즘에서 벗어나 최대한 양극화의 벽을 넘어 다양한 길을 따라 걸어보는 것. 그러나 콘텐츠마저 알고리즘에 의해 추천되는 오늘날, 의식적인 행동만이 이를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큰 장벽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참고자료      

「정치인 팬 커뮤니티 분석 ‘박사모’를 중심으로」, 텍스트언어학 31, 2011, pp.279~309, 조국현(한국외대)     

「인터넷 정치 집단의 형성과 참여:노사모를 중심으로*」, 한국과 국제정치 제20권 3호 2004년 (가을) 통권 46호, pp. 161-184, 숭실대 조교수 강 원 택     


한국인의 정치적 팬덤 정서와 영화의 수용 : <변호인>, (2013)과 <국제시장>, (2014)을 중심으로, 

단국대학교 정책경영대학원 문화예술학과 최배석    

 

https://www.pewresearch.org/politics/interactives/political-polarization-1994-2017/     

The shift in the American public’s political values, Pew Research 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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