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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라소라빵 Dec 05. 2021

[영화 베네데타]오름가즘과 엑스터시는 다를 바 가 없다

야외 상영 속에서 자신의 민낯과 마주한 경험

마케팅 소재로 삼고 싶었지만 생각 이상으로 자극적인 내용에 절대 사용할 수 없었던 아쉬운 영화 베네데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종교와 섹스 그리고 젠더. 전부 다루기 어렵고 머리 아픈 주제들이지만 무려 이것을 한 번에 녹여낸 영화가 있다. 조금 과장해서 그때의 경험을 묘사하자면, 관객 500명이 해운대의 핫플레이스 야외극장에 앉아 다 같이 뜨거운 레즈비언 오르가슴과 신음소리를 감상했던... 희귀한 경험. 영화 베네데타에 대한 고찰과 이야기이다.




영화 베네데타는 역사학자 주디스 C 브라운의 ‘수녀원 스캔들’이라는 책을 원작으로 삼는데

수녀원이라는 공간은 페미니즘에 있어서 흥미로운 공간이다. 수녀원의 엄격한 교리와 금욕적인 삶,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인지하면서 겪는 수녀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전통적인 기독교 세계관에선 여성의 몸은 흔히 악마의 유혹, 혹은 선악과를 베어 먹은 이브의 원죄로 자주 묘사된다. 그것이 19세기에 와서는 자본주의에 의해 성적 대상화와 주입된 대상화 사이의 간극이 일어나는 역사 또한 흥미로운 아이러니한 지점인데 때문에 베네데타도 젠더에 대한 이야기인가...?라는 호기심을 품고 선택했지만... 프랑스에서 제작한 영화였을 때 예상했어야 했다.

(과장해서 프랑스 영화에 섹스가 빠지는 걸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래도 역시 '잘' 빠진 영화다.




스포일러 주의
화를 보고 난 후나 스포일러를 감안하고
알고 싶을 때 보세요.

출처-네이버 영화 스틸컷

영화의 시나리오를 간략하게 정리해보자

영화 베네데타는 르네상스 시대를 모티브로 당시엔 유럽 전체에 흑사병의 잔재가 남아 몇몇 곳은 흑사병에 휩싸였다. 수녀원은 큰 금액을 기부받아야 수녀를 받았고, 고위 성직자는 성매매를 암암리에 자행했던 시대이다. 교회는 자신들에게 반항하는 사람을 마녀사냥이나 고문으로 거짓 자백을 받아낼 정도로 부패한 상태.


9살 무렵 수녀원에 들어온 주인공 베네데타는 어릴 때부터 종교적인 환상, 그러니까 어떤 의미로는 기적을 겪어왔습니다. 실제로 성부인 예수를 직접 본다던지, 계시를 받는 등 환상을 강하게 느껴온 베네데타는 그분이 자신과 함께하고 있음을 의심치 않는다. 그런데 어느 날 새로 들어온 동료 수녀를 계기로 자신의 레즈비언적 성적 지향에 눈을 뜬다.


동료 수녀와 성모상을 깎아 딜도로 만들어 자위를 즐기고, 서로의 몸의 에로틱한 눈길로 탐할 정도로 발전하며 엑스터시와 오르가슴을 오가던 베네데타는 성흔이 나타났다는 주장까지 하게 되고, 진위여부를 떠나 수녀원을 성지로 만들려는 교회의 이득 계산과 맞물려 수녀원장에 까지 오르게 된다. 수녀원장의 지위를 이용해 동료 수녀와 정사를 벌이지만, 한편으론 기독교 교리 하에 동성애와 쾌락을 탐닉했던 자신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있기도 하는 베네데타는 점점 위태로워진다.


영화는 주인공 베네데타가 느끼는 종교적 기적의 체험, 즉 엑스터시와 오르가슴을 번갈아 보여주며, 과연 베네데타가 정말로 기적을 행하는 성인인가, 아니면 종교적 엑스터시와 오르가슴 같은 환상을 놓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인지, 관객조차도 헷갈리게 만든다. 그런 부분이 신성모독적인 영화로 느껴지게 하지만 , 감독은 인터뷰에서 쐐기를 박는다. “1625년에 실제로 일어난 일이 어떻게 신성모독인가. 일어난 일은 바꿀 수 없다”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감독이 던지는 메시지를 이렇게 해석한다.


종교적 엑스터시나 오르가슴이나 다를 바가 없다!

거참 기독교 인들에게 단체로 돌팔매질당해도 할 말없는 아찔한 선언이지만, 일단 종교적 판단은 보류해주길 바란다. 종교적 엑스터시를 기독교에서 금하는 성적 쾌락에 빗댄 거 자체가 이미 종교 모독적인 영화가 아닌가 어느 정도 동의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부분이 과연 정말 신성 모독적인지 아닌지에 대해 깊게 이야기해보고 싶어서 굳이 가져왔다.


뭐 물론 종교적 엑스터시는 물론 오르가슴도 겪어본 적이 없는 제가 이 얘기를 할 수 있는가 싶지만은 뭐 어떤가? 둘 다 잡히지 않는 환상 같은 거라 실제로 알고 있는 사람도 드물다.



출처-네이버 영화 스틸컷

수녀분들의 가치와 행적을 모독할 생각은 추호도 없음을 미리 알린다.

먼저 영화에 묘사된 수녀의 삶의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에서 출발해보자.


나는 이 영화를 여성의 정치적 젠더 권력 전복 시도 영화쯤으로 해석한다.

물론 오락적인 성격이 강한 만큼 진지하게는 아니고, 그렇게 비춰볼 요소가 많다는 것뿐이다.


중세 유럽 전통적인 가톨릭은 여성의 몸을 남성을 구원을 방해하고, 유혹하는 잠재적 위협으로 보았다. 수녀의 복장은 이러한 인식에 기원한다고 생각하는데 수녀의 머리카락을 포함해 몸 전체를 다 가리는 복장은 스스로 청렴을 유지하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궁극적으로 남성의 영혼을 ‘부정’하게 만들게 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즉 여성의 몸은 전적으로 남성에 좌우되었다. 교회의 세계관이란 페미니즘의 시선에선 남성 중심의 세계관이나 다를 바가 없는 셈이다.


그런데 시기적으로 비슷한 시기, 르네상스 초기 프랑스 법원은 3세기 넘게 두꺼운 와이스트, 그러니까 몸을 감추는 의상을 금지시킨 적이 있었다. 심지어 당시엔 허리를 얇게 해주는 코르셋과 가슴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로우컷 드레스가 대 유행이었다. 판단 기준은 조금 과장하자면 남성의 성적 쾌락 및 관람 쾌락이 어디까지 용인되느냐, 그 선의 차이에 의해 여성 노출의 한도가 정해졌다.


이런 얘기를 레즈비언 영화에 왜 하느냐 하면... 베네데타가 했던 사기극과 탐닉을 어떻게 보면 이런 남성이 소유하는 여성 신체에 대한 전복으로도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 CDD20, 출처 Pixabay

페미니즘 내부에서도 자본주의 사회 이후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가부장적 사회에 길들여진 백 래시로 볼 것이냐, 아니면 여성이 주도적으로 신체의 자유를 되찾은 증거냐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사실은 여성인권이 그만큼 진보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는 것. 이런 점을 고려하고 다시 베네데타의 이야기로 돌아 가보자.


기독교, 그러니까 수도원이 어떤 곳인가? 기독교인 분들은 동의를 하실지 안 하실지 모르겠지만 교회의 서사, 그러니까 기독교적 설화란 기호적으로 남자만이 신부가 될 수 있고, 신적으로 대상화되는 사람도 흔히 남성으로 우상화되는... 남성적 파워가 지배하는 곳이다. 여성은 원죄로 자신의 온몸을 가려야 하는... 전형적인 피지배 계층이라고 할 수 있다.


베네데타 역시 처음엔 하느님과의 결혼을 상상하는 기독교의 순리대로 살아오다 자신의 레즈비언적 성 정체성을 깨달은 뒤 변하기 시작한다. 정확하게는 절대적인 교회의 권리에 의심을 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는 쾌락에 대한 탐닉과 권력욕으로 이어지는데, 동료 수녀랑 간음도 하고, 쾌락을 즐기며, 교회의 시스템을 교묘히 이용해 성흔을 위조해 정치적 지위까지 얻고, 교황의 입김을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입지를 굳힌다. 목소리를 남성처럼 내어 마치 예수님이 몸에 깃든 것처럼 행동하는 부분은 영화의 감초 부분이기도 하다.


베네데타의 행동은 당시 사회적 공적 담론에서 배제되어 있던 여성과 성소수자인 레즈비언의 정치적인 야망의 표현일 수도 있다. 물론 베네데타의 끝은 좋지 않았다. 당연한 것이 그녀가 빌려온 정치적 지위는 교회적 질서, 즉 남성적 질서 위에 성립된 것으로 여성의 완전한 해방이 아니라, 남성의 권위 그러니까 예수님과 교회의 권위를 빌린 정치적 지위였기 때문에 여성이나 성소수자의 지위를 온전히 찾아오는데 한계가 있었다. 남성의 지위를 빌린 권위는 그 권위가 빌려온 것인 이상 남성과의 다툼에서 베네데타는 결국 패망한다.


© kimsuzi08, 출처 Unsplash

이런 영화가 굳이 야외극장에서 상영되었다는 걸 누군가는 불편해할 수 있고, 말 그대로 불편한 지점이 많은 영화다. 여전히 한국에서 금기시 되는 여성의 성적 쾌락과 퀴어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고, 심지어 성행위 및 여성의 신체를 클로즈업한 장면이 집요하게 나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야외에서 집단 상영하는 것이 신의 한 수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영화는 관람행위의 성격상 관음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분석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유명하다. 안전한 곳에서, 어둠에 감추어 자신의 모습을 잊고 영화 속 인물에 몰입하는 시청각 형태는 그야말로 관음이다. 근데 야외상영은 불을 끈다고 해도 어쨌든 밝다. 다른 관객의 반응과 모습도 자신만큼 잘 보이고, 소리도 쩌렁쩌렁하게 밖으로 울 리퍼 진다. 어찌나 신음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는지 당시에 난 옆 건물인 KNN의 야근의 불빛을 보며 '야근하는데 옆에서 에로틱한 영화를 틀어주고 있으니... 저쪽 도 불쌍하군...'이런 생각까지 했었다. 이런 곳에서 베네데타를 본다는 것은 ‘내가 신음소리 겁나나고 야한 영화를 보고 있다’라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실제로 영화 중반 여성 간의 베드신이 나오자 자리를 떠나는 관객도, 조용히 키득거리는 사람, 부끄러워서 고개를 돌리는 사람 다양한 인간군상이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상영이 끝나고 많은 사람이 그 자리에 남았을 때 적어도 사회의 지향이 이 정도는 수용할 정도가 됐구나 생각이 들었다(물론 대다수 시네필인 사람들임을 감안해야겠지만)


그래서 이 영화가 진지하게 섹슈얼리티와 젠더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영화냐 물어본다면.... 글쎄... 아니다.


감독이 애초에 원초적 본능을 찍은 감독으로 적절한 의문을 잘 버무려 자극적인 정사신을 던지기로는 정평이 난 감독이다. 그 물음은 진지한 수준까지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 이 영화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공론장을 만들겠다는 의지보다는 그런 메시지를 포함해서 즐길거리로 던져준 것이 감독 본래의 의도와 부합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감독은 분명 자신이 좋아하는 '성적인' 콘텐츠에 점잖은 채 한 마디씩 던지는 종교가 썩 달갑지 않았던 것은 확실하다. 그러니 '오르가슴과 엑스터시가 다른 게 뭔데? 너희가 오르가슴을 몰라도 짐짓 아는 체 얘기하는 것처럼 나도 엑스터시에 대해 아는 체 얘기할 수 있다.(그것이 역사적 사실에서 모티브를 딴 것이라면 더더욱)'라 말하는 감독의 메시지는 언뜻 설득력 있게 나에게 들려온다.( 나도 둘 다 겪어본 적 없으니까.)


오르가슴이 조금 환상적으로, 과장되게 묘사되는 것처럼 엑스터시 또한 비슷한 고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것만은 당부하고 싶다.


종교가 신성한 이유는, 종교 자체의 신성성보다는 종교가 추구했던 가치, 자비와 박애 같은 철학을 지지하고, 인간을 이끌어왔던 역사에 있음을. 물론 영화에 묘사된 것처럼 타락한 종교라면 신성이고 뭐고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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