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와이너의 '행복의 지도'와 함께
이 글은 '몰라도 아는 척 102화'방송을 기반으로 합니다.
지난번에 찾아가 본 조용한 만족의 나라, 그리고 신뢰할 만한 이웃이 있는 나라에 이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가치로 대표되는 나라로 떠나봅니다. 이번엔 유엔 산하기구 SDSN이 측정하는 행복의 기준을 6가지 중 '자유'가 높은 수준으로 보장되는 나라 '네덜란드', 국내 총생산 GDP....으로 측정을 한 것은 아니지만 누가 봐도 부가 넘쳐나는 나라 '카타르'의 모습을 살펴보며 행복에 대해 고찰해봅니다.
*에릭 와이너의 책'행복의 지도'를 바탕으로 책에서는 소개되지 않는 사회적 지표를 더해봤습니다.
자유가 높아서 행복한 나라 하면 어딜까요? 바로 2021년 행복지수 5위를 차지한 네덜란드입니다. 얼마나 자유롭냐면 일단 많은 나라에서 금기시되는 것들이 자유롭습니다. 이를테면 마약이나 성매매같이 존재만으로 개인의 도덕성을 타락시키고 결국은 사회를 부정으로 물들일 것만 같은 것들 말이죠. 마리화나, 대마초 같은 대다수 마약은 가볍게 합법적으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성인이라면 이러한 중독성 물질을 길거리의 커피숍에서도 자유롭게 습득할 수 있습니다.(물론 외국인에게 함부로 팔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성매매를 노동으로 인정한 나라 이기도하고, 동성결혼과 동성 부모의 입양이 합법이라 길거리에 자연스럽게 동성애 데이팅 앱이 광고판에 버젓이 걸려있는 나라 이기도합니다. 호모포비아가 네덜란드에 여행을 가면 뒷 목을 잡고 기절할 수도 있겠네요.
그래서 네덜란드에게 주어진 별명은 ‘다른 나라에서 금지한 것을 처음으로 가장 많이 시도한 나라’입니다. 딱히 숨길 것도 없고, 남에게 관심도 없다는 게 네덜란드 인들의 설명입니다. 이런 네덜란드의 자유가 부러워서 일까요? 혹자는 네덜란드의 끝없는 자유가 마약범죄나, 카르텔을 키워 치안을 어지럽힌다고 비난합니다. 그들의 자유는 방종이며, 때문에 여러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말이죠. 일부는 일리 있는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사회적 지표만 따져보면 꼭 그러한 자유가 네덜란드를 불행하게 만들지는 않는 듯합니다. 가본 적조차 없는 나라를 기사와 수치 몇 가지로만 안전하다, 아니 다를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만, 그럼에도 몇몇 사회적 지표는 그들의 자유가, 치안을 해칠 정도로의 방종으로 이어지지 않음을 증명합니다.
관용! 이곳이야 말로 '나를 짓밟지 말라'는 태도의 원조격인 나라다... 심지어 비관용에도 관용을 베푼다, 에릭 와이너 '행복의 지도' 중에서
이러한 네덜란드의 모습과 행복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관용의 행복’입니다. 심지어 비관용에도 관용적입니다. 자유롭고 동성애에 대한 편견도 없기에 차별적인 문화가 없을 것 같지만, 오히려 타인의 차별에도 너그럽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비관용에도 베푸는 관용을 네덜란드 어로 표현하면 헤도혼(gedogen)이란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처음 들어보는 이 단어는 네덜란드 특유의 법률 문화로, 특정 법률을 시행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대마초를 소유하는 것과 같은 일부 행위는 공식적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네덜란드 정부는 마약 범죄자에 대한 형사고발을 자제합니다. 기껏 질서와 규칙을 지키기 위해 제정한 법인데 시행하지 않는다니요? 우리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개념입니다. 오히려 네덜란드의 범죄율이 낮은 건 범죄를 문제시하지 않는 않는 기적의 논리로 이루어진 것일까요? 우리의 시선으로는 쉽게 이해하기 힘든데, 앞서 언급한 네덜란드의 ‘자유’의 형태를 제도에 비추어 생각했을 때 비로써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로 마약. 네덜란드의 법에 따르면 마약은 하루 인당 5 그램 구매가 가능합니다. 구매가 쉬운 것에 반해 의외로 마약 판매와 구입은 관련 사항을 엄격히 기록하기에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방종을 즐기기는 어렵습니다. 두 번째로 성매매. 암스테르담은 공창제도를 운영합니다. 즉 정부가 성매매를 합법적으로 인정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성매매자의 건강상태나 방에 비치해야 하는 물품의 종류, 방의 청결상태에 이르기까지 조건을 법으로 정해 철저히 관리 감독합니다. 성매매자가 노동자라면, 그들 역시 다른 노동자들처럼 건강한 환경에서 근무할 권리가 있을 테니까요. 실제로 2000년대 이후 암스테르담 성매매 공창은 이 기준을 지키지 못한 성매매 업체는 대부분 철거당해, 현재 암스테르담에는 3분의 1 정도의 공창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네덜란드의 관용은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딱 한 가지 시각과 정답만을 제시하지 않는 듯합니다. 때문에 자유롭게 행복의 추구 수단에 관용적이지만, 법이 제한하는 불관용의 기준도 명확합니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진 말아라. 어떻게 보면 최대한의 합의된 자유를 누리는 나라라는 생각도 듭니다. 어찌 보면 행복이라고 하면 몇 가지의 길밖에 모르는 우리보단, 이들의 관용이 행복에 더욱 가까운 것은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행복에 이르는 답이 적어도 몇 가지 더 많을 테니까요.
물론 이런 문화가 완전한 행복만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닙니다. 이를 반영하듯 영미권 국가에선 Direct Dutch라는 밈이 있습니다. 우리보다 개방적이라고 생각되는 영미권 국가들도 네덜란드는 ‘지나치게 솔직하다!’라고 느끼는 것이죠. 과연 관용의 국가답지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도 꽤 있나 봅니다. 다음은 Direct Dutch밈 중 하나입니다. 하루는 파트너가
‘나 일이 너무 힘들어 회사 그만둘까 해...’
라고 얘기했습니다. 여러 분은 여기에 뭐라고 대답하실 건가요? 에둘러 '그래도 힘내자!'라고 응원하거나, '일이 너무 힘들었지? 조금은 쉬면서 하자!' 등 에둘러서 위로해주는 게 보통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네덜란드 식이면 이런 대답입니다.
‘무슨 소리야, 우리 아파트 대출이 아직 2억이 남았어. 지금은 우리 같이 일 해야 해!’
과연 더치페이의 국가답습니다. 물론 이렇게까지 극단적이진 않겠지만 이런 밈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네덜란드 사람들의 성향을 나타낸다는 것이겠죠. 비관용에도 관용적이라는 말은, 반대로 융통성 없다는 얘기기도 합니다. 언뜻 관용성이 높으면 융통성이 높을 것 같은데 이상합니다. 하지만 나의 정의를 밀어붙이는데 타인이 관용적이라는 말은, 서로의 황소고집을 꺾을 방법이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한 네덜란드 여행을 소개하는 글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어린 자녀와 식사를 하는데 부모님이 맞담배를 피고 있었다는 겁니다. 아이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부모님이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게 싫지 않니?
그러자 아이는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부모님이 행복을 즐길 권리이기 때문에 불편하더라도 용인하겠습니다.
물론 네덜란드에 아이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걸 반대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반대를 하죠. 그럼에도 그들이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며 이를 관용합니다. 아예 반대편에 살고 있는 한국사람으로서 그들의 관용은 조금 선 넘은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그들의 문화와 배경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겠죠. 저런 형태의 행복도 있을 수 있군,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각자의 몫이겠지만요.
마지막으로 GDP, 즉 부가 넘치는 나라로 가봅시다. 정확하게 국내 총 생산량, 즉 GDP는 인구나 산업의 규모의 영향을 받으니, 빈부격차가 심해도 부자가 그만큼 잘 살면 GDP는 높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 개인이 평균적으로 얼마나 잘 사나?를 보려면 GNI 1인당 국민총소득을 보는 것이 적절할 듯합니다 GNI는 물가와 통화가치를 따지기 때문에 실제로 얼마나 풍족하게 사느냐를 보기 적절한 지표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질문입니다. 돈이 많으면 행복할까요? 물론 개인마다 목표로 하는 적절한 부의 수준은 다르겠지만, 저는 저번에 알아본 스위스식 대답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돈이 많다고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불행을 일으키는 대부분의 요인을 제거하거나 예방할 수는 있겠죠. 그런데 태어나자 말자 연봉이 1억이고, 대학 졸업은 기본에 유학비 전액 보장, 소득제를 비롯한 세금이 없는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1인당 국민 총소득이 1위인 나라, 곧 월드컵이 열리는 나라 카타르가 바로 그런 국가입니다.
2020년을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GNI는 4만 달러, 카타르는 무려 12만 달러입니다. 무려 대한민국의 3배나 풍족한 생활을 누리고 있는 것이죠. 카타르가 이러한 말도 안 되는 부를 누릴 수 있는 이유는, 1939년 석유를 발견한 산유국이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카타르의 인구수는 약 300백만 명. 부산광역시가 3백30만 명으로 광역시 하나 보다 작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셈이죠. 그중 외국인 노동자를 제외한 자국민 12%는 석유에서 파생되는 부로 막강한 사치를 누립니다. 심지어 국민들에게 세금을 부과하지도 않고 공공기관, 교육과 의료 부문 서비스를 거의 무상에 가까운 형태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라마단 기간 중에 길거리에 즐비한 슈퍼카를 볼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명품 구매력과 미술품 구매력은 세계 최고를 다툽니다.
사실 사람이 사치를 즐기다 못해 지겨울 정도가 되는 상태를 저 같은 소시민은 조금 상상하기 힘듭니다. 그렇다고 카타르에 날라 가서 ‘행복하십니까?’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죠. 다행히 저 대신 먼저 용감하게 물어본 사람이 이미 있습니다(바로 에릭 와이너요). 인상 깊은 대답은 두 가지 정도가 있었습니다.
품위를 지키려면 어느 정도 돈이 있어야 하죠. 하지만 그 단계를 넘어서면 돈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돈으로 문화를 살 순 없습니다. 하지만 예술 작품을 많이 살 수는 있죠
그 말 그대로 카타르엔 역사가 없고, 때문에 문화도 없었습니다. 아니 정확하겐 수많은 미술품을 사모아 전시한 박물관은 있지만 자국의 문화는 종교적 풍습을 제외하곤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카타르는 100년 전만 해도 겨우 진주를 캐다 생계를 유지하는 황무지였으니까요. 카타르 사람들이 때문에 가끔 뿌리 없이 떠도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고 합니다. 모든 것이 풍족한 사회에서 정체성이 얕아서 기시감을 얻는다니 얄궂은 일입니다. 대신 이들은 다른 아이덴티티, 예를 들면 명품을 통한 개성 표현, 이런 방향으로 그런 기시감을 해소하는 듯합니다.
세계적인 건축사 야오밍 페이가 설계한 카타르의 이슬라믹 아트 뮤지엄은 이란, 터키, 시리아, 이집트, 아프가니스탄, 인도, 심지어 중국의 유물이 장엄하고 아름다운 전시공간에 비치되어 있지만, 카타르에서 출토된 물품은 없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온 유물들도 대부분 막대한 달러를 통해 사들인 것으로 이들에겐 돈으로도 메꿀 수 없는 뿌리의 부재와 공허의 역사가 존재합니다.
지금까지 사회적 지지와 자유, 자본이 풍족한 행복의 나라들을 살펴봤습니다. 에릭 와이너의 책 '행복의 지도'에서는 이외에도 많은 나라들의 모습이 소개되지만, 적절하게 사회적 지표와 엮어낼 자신이 없어 여기서 글을 마칩니다. 그리고 그 모든 나라들의 모습을 보고 성급하면서도, 무시할 수 없는 유일의 결론을 내려봅니다. '어차피 100% 행복한 건 불가능하지 않겠어?' 주어진 불행과 상황을 덤덤히 견뎌내며, 내일의 행복을 찾아 떠나는 것이 진정으로 행복한 길이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