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살아 있다는 것

ㅣ 다니카와 슌타로, '산다' <이십억 광년의 고독>

by 은작


산다

다니카와 슌타로

살아 있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목이 마르다는 것
나뭇잎 새의 햇살이 눈부시다는 것
문득 어떤 멜로디를 떠올려 보는 것
재채기하는 것
당신의 손을 잡는 것

살아 있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미니스커트
그것은 플라네타륨
그것은 요한 슈트라우스
그것은 피카소
그것은 알피스
아름다운 모든 것을 만난다는 것
그리고
감춰진 악을 주의 깊게 막아내는 것

살아 있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
울 수 있다는 것
웃을 수 있다는 것
화낼 수 있다는 것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

살아 있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
지금 멀리서 개가 짖는다는 것
지금 지구가 돌고 있다는 것
지금 어디선가 태아의 첫울음이 울린다는 것
지금 어디선가 병사가 다친다는 것
지금 그네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
지금 이 순간이 흘러가는 것

살아 있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
새가 날갯짓한다는 것
바다가 일렁인다는 것
달팽이가 기어간다는 것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당신의 손의 온기
생명이라는 것

- 다니카와 슌타로 '산다' <이십억 광년의 고독>




<오늘의 '살아 있다는 것'>


오늘 좋은 친구를 만나고 왔다. 공동육아를 같이 한 우리는 나이는 다르지만 '만나면 좋은 친구'다. (만약 이 멘트에 음이 자동 연상된다면 당신은 연식이 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각자가 타고난 기질이 직관형인지 분석형인지 그리고 시를 보는 관점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아주 형이상학적인 주제로 고품격 대화를 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형이하학적 수다를 막 떨다가 어쩌다 보니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지인은 교사다. 그는 시는 직관의 영역 같은데 지금 우리 교과에서 시를 분석하고, 정답을 맞히라고 하는 행위 자체가 너무나 이상하다고 했다. 나도 백 프로 동의했다. 이런 교육의 효과(?)는 단 하나다. 아이들이 시를 싫어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읽고, 천천히 써보기만 해도 좋을 것이다. 꼭 시험을 봐야 한다면 정말 마음 가는 시를 외우고, 써보기 정도면 적당할 것 같다. 그러나 지금처럼 시구를 분석하고, 그 뜻을 유추해서 정답을 찾는 건 너무나 이상하다. (언젠가 수능에 나온 시문제를 시인이 풀었더니, 자기도 정답이 틀렸다는 기사를 읽은 것 같다.)



image.png?type=w966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중 : 아, 너무 귀엽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에는 다니카와 슌타로의 시 <산다>가 등장한다. 이 영화를 볼 때는 몰랐는데, 시가 너무 좋아서 나중에 찾다 보니 알게 되었다. 교과서에 실린 시를 천진하게 읽는 아이가 바라는 '기적'은 가족과 함께 '지금 살아가는 것'이다. 그저 살아가는 것. 가족들이 함께 모여 아름다운 것을 보고, 함께 울고 웃는 일상들.


그러나 아이는 끝내 자신의 기적이 아닌 세계의 안녕을, 타인의 일상을 선택한다. 그 마음이 그런 작고 고운 마음이 모여 우리는 함께 살아간다.


image.png?type=w966 가족보다 세계를 선택한 아이 _ 아, 역시나 너무 귀엽다.


학교에서 시를 배운다면, 이런 방식이면 좋겠다. <산다>를 같이 읽고, 나에게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인지, 어떨 때 그런 걸 느끼는지 그 이야기를 나누고, 모으고, 그걸 천천히 기록하기. 그 기록은 다시 한 편의 시가 될 것이고, 다른 타인의 일상을 든든하게 해주는 버팀목이 될 것이다.


그렇게 아이들은 자신의 세계에 시를 들여놓게 될 것이고, 시적 직관으로 보다 넓고 깊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