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 놓기만 해도 솔숲 지나는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 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 다 와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문자메시지
이문재
형, 백만 원 부쳤어.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이야. 나쁜 데 써도 돼. 형은 우리나라 최고의 시인이잖아.
- 이문재 <지금 여기가 맨 앞> 문학동네 (2014)
<오늘의 '기도'>
어제 이우학교 원서를 썼다. 원서는 내게 물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는지, 우리 아이는 어떤 성향과 행동을 보이는지, 관심과 흥미는 무엇이며 어떻게 도움을 주고 있는지.' 나는 아이를 생각하고, 과거의 행동을 떠올렸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다 아이의 탄생까지 갔다. 순수한 존재, 그 존재만으로도 내게 '기도하던 마음'을 안겨 준 나의 첫아이.
2페이지, 질문 4개를 채우는 데 하루 종일 걸렸다. 오늘 이문재 시인의 시를 읽으며 깨달았다. 나는 어제 원서를 쓴 게 아니라 '기도'를 했구나. (물론 당연히 합격 기도도 했겠지만) 붙기만을 기도했다는 게 아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답게 잘 클 수 있게, 내가 아이의 '한 세상'이라는 걸 잊지 않고, 잘 살아가야겠다는 '기도'.
어제저녁에 실종된 아이의 비보를 들었다. 나는 그 아이가 마지막으로 문제집을 샀다는 게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아이는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어째서 문제집을 사고, 산으로 올라갔을까. 발밑에 밟히는 흙이 얼마나 서걱거렸을까. 문제집의 무게가 얼마가 버거웠을까. 산 바람이 얼마나 서늘했을까. 그 마음과 아이가 떠나고 무너진 세계에서 살아갈 이들을 생각하면 자꾸 손을 모으게 된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게 된다. '오래된 기도'를 하게 된다.
살아가면서 힘든 일도 있고, '나쁜 데 돈을 쓸 일'도 있을 것이다. 아이가 공부도 잘하고, 착하고, 예의 바르고, 잘 웃어서 아이를 사랑하는 게 아니다. 그런 부모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그렇게 느끼게 만들 수는 있다. 그래서 내가 살아가는 세상을 열심히 아름답게 만들어야 한다. 어렵고 힘들지만, 실수도 하고 얌체처럼 굴 때도 있지만 반성하고 돌아와야 한다.
나의 세계는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아이와 나는 '어떤 경우에도 서로에게 한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