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에 뛰어들었다. 7살, 골목, 공을 쫓고 있었다. 교과서에 나올 법한 전형적인 ‘어린이 사고’였다. 나는 그 일로 다리가 부러졌다. 지금 와 생각하니, 택시 기사님은 얼마나 황당했을까. 죄송하다. 가만히 가는 데, 갑자기 아이가 뛰어나와 내 차에 뛰어든 것 아닌가(세상에, 정말 끔찍하다).
반면 어렸던 나는 이 상황이 꿈같았다. 허리 아래로 감각이 사라졌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웅성거렸다. 일어나고 싶었는데 일어날 수 없었다. 저 멀리 뛰어오는 엄마가 슬로 모션으로 보였다. 그때의 장면, 공기의 질감이 아직 생생하다. 그때부터였을까. 나의 이 비이성적이고, 무조건 반사적으로 나오는 ‘사고’에 대한 두려움이.
지독한 방향치라 길을 자주 잃었다. 운동 감각도 없다. 거기다 사고의 두려움이 항상 있다. 당연히 평생 운전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지 않았다. 그런 내가 30대에 면허를 땄다. 남편이 등 떠민 덕이었다. 사실 그는 로망이 있었다. 본인이 술을 먹고 와이프가 운전하는 차를 타보고 싶다고(응?). 꿈은 실현됐다. 딱 5번 정도? 허허허. 사실 내가 운전면허를 딴 건, 당시 수원에 살았는데 안산에 있는 대학원에 다녔기 때문이다. 차 없이는 아무래도 힘들었다. 어쩔 수 없이 면허를 따고, 연수도 학교랑 집만 왔다 갔다 했다. 학교만 겨우 다녔다.
그 와중에, 어이없는 사고를 연달아 냈다. 도로 옆에 가만히 서 있는 차 백미러를 부쉈다. 검은색 그랜저. 백미러값은 12만 5천 원이었다. 몇 달 뒤, 주차장에 주차된 차를 빼다가 옆 차를 긁었다. 주차장에 서 있던 아저씨가 '어떻게 하면 저 각도로 굳이 저 차를 긁지?' 하는 눈빛으로 안타까워했다. 또 몇 달 뒤, 아파트 출입로에서 좌회전으로 나가기 전, 브레이크 대신 액셀을 밟았다. 전형적인 초보의 실수였다. '어~~' 하는 순간, 차가 붕 나갔다. 제어가 안 됐다. 도로로 바로 튕겨 나가, 직진 차의 옆면을 들이박았다. 다행히 속력을 줄인 상태여서, 아주 크게 사고가 나진 않았다. 그러나 그 차에는 아이가 타고 있었다. 다행히 아이 쪽은 아니었지만, 너무나 미안했다. 고개 숙여 사과하는데, 볼록한 내 배가 보였다. 나 역시 둘째 임신 중이었다. 남의 아이와 내 아이에게 몹쓸 짓을 한 내가 몹시 어이없었다. 미웠다. 결국, 집에 혼자 와 울었다.
둘째를 낳고, 한동안 운전을 안 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다시 시작했다. 교통이 안 좋은 곳에 살면서, 애 둘을 차 없이 키우기는 힘들었다. 1년 정도 지나자 여전히 무서웠지만, 살짝 익숙해졌다. 어느 날 도전하는 마음으로 대학 친구들과 약속에 차를 가져갔다. 무사히 잘 도착해 주차도 잘했다. 모임을 끝내고 집에 오는 길. 나는 살짝 흥분상태였다. 뭔가 이뤄낸 것 같았다. 그러나 역시, 그럴 때가 제일 문제다. 집에 거의 다 와 갈 무렵, 백미러도 안 보고 갑자기 차선을 변경했다. 왜 그랬는지 나도 모르겠다. 사고가 나려니 그랬겠지. 나의 급작스러운 차선 변경으로 놀란 뒤차가 피하다가 옆 가드를 박았다. 나는 그것도 몰랐다. 나를 쫓아오면서 빵빵거리기에, 보복 운전인 줄 알고 덜덜 떨며 한참을 도망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 차 때문에 박았다고 따라온 것이었다. 그 차는 1억이 넘는 아우디였다. 허허허. 연신 허리 숙여 사과하는 데, 또 눈물이 났다. 아찔했다.
운전, 잘하고 싶다! 허허허
이 사고들은 모두 나의 100% 과실이다. 나는 자주 생각한다. "나는 사고를 낼 수 있다. 그것도 아주 크게!!!" 내가 다치는 것도 무섭지만, 누군가를 해할까 봐 나는 내가 너무 무섭다.
그래서 나는 내 차가 있지만, 운전을 정말 가급적 안 한다. 10년이 다 된 내 차의 주행거리를 보면 다들 놀란다. 부끄러우니 비밀로 하겠다. 허허허. 비가 와도 잘 안 하고, 멀어도 잘 안 하고, 어두워도 잘 안 한다(그럼 도대체 언제?). 새로운 곳에 가려면 걱정이 앞선다. 어디 가면 대중교통 길 찾기부터 먼저 검색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면 어렵게 운전한다. 아니면 여기저기 얻어 타고 다닌다. 이런 상황이라 사실 우리 집에는 차 두 대가 필요 없다. 남편은 코로나 팬더믹 이후, 재택근무 중이고, 간혹 나가도 (술 먹으러 가는 거라) 차를 안 가져간다. 그러나 운전이 두려운 나는 큰 차를 몰수가 없다. '레이'인 내 차만 겨우 몬다. 작고 높아 운전하기 좋다.
지금까지 나는 이런 비이성적이고, 절대적 두려움과 긴장을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타인은 물론, 나 자신에게도 그랬다. 누구나 운전은 어느 정도는 어려워하니까. 그 수준에서만 이해했다. 나 역시도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운전을 과도하게 피하는 못난 내가 부끄러울 때가 많았다. 그러나 오늘 이렇게 써놓고 보니, 나의 상태는 그 이상이다(일단 사고의 전적들이... 너무 수준 이하 아닌가). 그리고 내 병명도 알게 되었다. '운전 기피 쭈글이병'이다. 처음 들어보는 병명인가. 그렇다. 내가 지금 만들었다. 이 병에 걸린 나는 『먹는 것과 싸는 것』의 작가 가시라기 히로키의 표현 대로 사고는 타인에게 일어나는 일이고 나와는 상관없다는 식으로 생각하지 못한다. 항상 긴장한 상태로 있다. 가시라기 히로키는 궤양성 대장염이라는 난치병에 걸려, 먹고 싸는 것 전반에 문제가 있다. ‘먹고 싼다’라는 당연한 행위가 어려워지면서 저자의 삶의 규범 자체가 달라진다. 사람들과의 관계, 방역에 대한 민감도,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 타인을 대하는 태도, 가치관 모든 것이 새롭게 재구성된다. 그러나 타인에게 이 상황을 설명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저자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어려움은 그들의 상상 너머 영역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단순한 '투병기'가 아니다. 다른 형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조금씩 만들어 온 전혀 다른 세상의 이야기다. 작가는 스스로에게는 아주 심각했을 이 상황을 최대한 힘을 빼고 보여준다. 저자의 안타까운 상황이 안쓰러운데, 필연적으로 웃게 된다. 물론 책을 덮으면 알게 된다. ‘비극인데 희극 같은 것은 당사자에게 한층 더 비극적인 법’(p172)이라는 것을 말이다.
안산으로 4월 연극제를 보러 간 날,『먹는 것과 싸는 것』을 읽었다. 솔직하고 구체적인데 문학적이다. 이런 '개인적인 경험'에 대한 에세이가 우리에게는 더 많이 필요하다.
사고를 당했고, 사고를 냈던 경험은 내게 강력한 시그널을 준다. 그래서 익숙지 않은 장소에서 운전하면 심하게 쭈글이가 된다. 무사히 집에 돌아오면, '역시 난 잘해!'가 아니라, '오늘은 운이 좋아, 다행히 사고는 안 났네. 다음에는 어쩌지...?'라는 식으로 비관적으로 사고 회로가 돌아간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우리는 각자의 육체 안에서 살아간다. '빨간색 좀 봐!'라고 했을 때, (색맹 등의 여부를 떠나) 모두가 같은 색을 보지 않는다. 아니, 보는지 확인할 수 없다. 감각은 고유의 영역이니까. 고통은 더욱 그러하다. 그래도 모두가 비슷한 병을 앓는다면 감각의 공유는 어느 정도 가능하다. 그러나 소수가 앓는 희소병은 이조차 힘들다.
『먹는 것과 싸는 것』은 재미있고, 담대하며, 솔직한 책이다. 무엇보다 세상을 보는 새로운 필터를 장착하게 해 준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경험하지 않으면 모른다’(p148)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동시에 내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세상이 보이고, '아, 그렇구나'하면서 상상력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p148) 된다. 나의 세상도 새롭게 열린다. 완벽하지 않지만, 이해하는 만큼, 이해받을 수도 있게 된다. 우리는 모두(나의 '운전기피쭈글이병'처럼) 어느 부분에서는 다 부족하고 아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