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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작 Oct 20. 2023

너와 나의 다중 우주

다니엘 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변규리<너에게 가는 길>

  식구 4명이 한 침대에 누워 구글 포토를 봤다. 중학생인 첫째가 6살의 모습으로 춤추고 노래 부르고 있었다. 이제는 방에 박혀 생사 확인만 하는 수준인 첫째는 보다 진저리를 쳤고, 우리는 좋아했다(아 귀여웠던 나의 첫 아이여!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이여!) 그때도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게 계속 춤추고 노래하는 둘째의 영상도. 그리고 뽀송한 피부를 가진 젊은 부모였던 우리의 모습도 보였다. 그땐 몰랐는데 30대 초반이면 아기였다. 그 시절, 우리가 살던 우주는 세계 어딘가를 둥둥 떠다니고 있다. 구글은 그 단면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한참을 깔깔거리며 보다 잠시 후 각자의 현 우주로 흩어졌다. 첫째는 다시 친구들과 카톡을 한다. 둘째는 기괴한 웹툰을 보며 낄낄거린다. 남편은 뉴스를 들으며 핸드폰 블록(?) 게임을 하고, 나는 양영희 감독의 『카메라를 끄고 씁니다』를 읽는다. 그 세계는 서로가 침범할 수 없다. 각자 다른 우주에서 각자의 삶을 즐긴다. 우리는 고작 '한 줌의 시간'동안만 만날 뿐이다. 다니엘 콴 감독의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이하 <에에올>)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에블린(양자경/엄마) :  난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너와 여기 있고 싶어
조이 (스테파니 수/ 딸) : 그래서 뭐? 나머지 문제들은 다 무시할 거야? 뭐든 될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잖아. 왜 그런 곳으로 가지 않는 거야? 엄마 딸 모습이... 안 이런 곳. 이곳은 그래봐야 상식이 통하는 것도 한 줌의 시간뿐인 곳이야.
에블린 (양자경/ 엄마) : 그럼 소중히 할 거야. 그 한 줌의 시간을.
- 다니엘 콴 감독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2022)     

    

  <에에올>은 다중 우주를 기본 배경으로 한다. 각기 다른 우주에서 만들어 낸 나의 모습이, 지금의 나를 돕고, 만든다. 그 모든 것이 나다. 황당한 설정 때문에 초반에는 웃지만, 뒤로 갈수록 내면을 파고드는 현실적 이야기에 울게 된다. 정말, 소문만큼 대단한 영화였다. 보고 있는데,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다 보고 나면 든든하고 뿌듯하고 뭉클하다. 이런 마음을 일으키는 요소는 사방에서 흘러넘친다. 눈이 돌아간다. 주인공 양자경의 액션과 아우라, 아귀가 딱딱 맞는 멀티버스라는 설정, 현란한 화면 구성(스토리보드는 도대체 어떻게 그렸을까?), 취향 저격인 B급 감성까지! 

그러나 단지 화려한 외부적 요소뿐이라면 이처럼 사랑받지 못했을 것이다. 바탕에 깔린 '철학'의 힘이 세다. <에에올>은 세상 모든 곳에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지만, 굳이 이 우주를 선택한 ‘나의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나에게는 비록 '한 줌의 시간'에 불과하더라도 함께 보내고 싶은 '너'가 있다. 그 길 사이에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성소수자 부모 모임의 두 엄마이자 여성 ‘나비’와 ‘비비안’의 성장 이야기를 담은 장편 다큐멘터리 <너에게 가는 길>(변규리 감독)에도 '너'가 있다. '너'와 함께 하는 '이 한 줌의 시간'을 만들기 위해 울고 웃으며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우주에서 자기의 세계로 제대로 살고 싶은 아이가 걷는 길, 그리고 그 아이에 닿기 위해 부모가 걷는 길. <너에게 가는 길>은 '성 소수자 부모'가 주인공으로 나오지만, 사실은 모든 부모의 이야기다. 모든 아이는 자기 우주를 만들어 가고, 부모는 이해가 힘들지만, 결국은 그 세계를 지지하고 이해하며 성장해 가니까.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퀴어 축제에 간 부모, '나비'(별칭)의 이야기다.     

 

"대명천지(大明天地)에 경찰들이 그렇게 많이 서 있는데,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마음 놓고 때릴 수 있는 세상. 부모들이 이런 데 나오면 무서워서 다시는 애들에게 그런데 나가지 말라고 할 것 같은데, 사람은 그게 아니더라. '이런 세상에서 애들이 살고 있단 말이야? 부모라도 싸워야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비/ 성소수자 부모) 
- 변규리 감독 <너에게 가는 길> (2022)    

 

  퀴어 반대 집회에 나온 사람들의 언어적, 물리적 폭력에 놀란 나비는 온몸으로 새로운 우주를 맞이한다. 그것은 부모인 나는 몰랐던 '우리 아이가 살고 있는 세계’였다. 나비는 다짐한다. 이 폭력적인 세계에 널 혼자 두지 않겠다고. 그는 축제에 온 아이들을 누구보다 꼭 안아준다. 비단 나의 아이만이 아니라. 모든 아이를 참으로 다정하게.           


내가 유일하게 아는 것은 우리 모두 다정해야 한다는 거야. 다정함을 보여줘. 특히 우리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를 때 말이야
-다니엘 콴 감독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2022)      


  다중 우주는 픽션이 아니라, 논픽션으로 읽어야 한다. 동시대, 같은 공간에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는 모든 다른 세계에 산다. 각자의 아픔이나 세계에 모두 공감할 수 없다. 그래서 최대한 공부하고, 이해하고, 노력해야 한다. 특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를 때'는 더 '다정해져야' 한다. 서툴고 힘들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그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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