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와이너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어크로스, 2021)
아이의 손에 들린 것은 ‘화분 만들기 세트’였다. 코로나로 몇 달 만에 간 학교에서 준 선물이었다. 이런 선물이라니! 순간 교육부(?)를 향한 분노(?)가 솟구쳤다. 집에서 세끼 먹이고, 줌 수업 봐주는 것도 힘든데, 이제 화분까지 줘? 사방으로 폴폴 날릴 흙과 그 뒤처리를 해야 할 내 모습이 자동 연상되었다. 내가 이런 상상을 하는 사이 아이는 거실에 턱 하니 앉아, 흙 주머니를 펼치려 하고 있었다. 나는 황급히 아이를 낚아 베란다로 나가 신문을 펼쳤다. 아이는 신이 나 이것저것 해본다. 역시 사방에 흙이 날린다. 호흡을 가다듬는다. 괜찮다. 여기는 베란다다.
막상 베란다에 앉아 햇볕을 쬐며 손을 움직이니 기분이 풀린다. 좋다. 따뜻하다. 역시, 나는 단순하다. 자리 편 참에 미뤄둔 화분 분갈이도 같이한다. 선물 받은 라벤더가 많이 자랐다. 어느새 화분이 작아져, 오븐에 들어갔다 온 아이처럼 마르고 있다. 큰 화분 3개에 따로 옮겨 담았다. 흙이 보들보들하다. 살짝만 만졌는데 손끝에서 라벤더 향이 번진다. 상쾌하다. 마음까지 말랑해진다.
아이는 계속 베란다 여기저기에 흙을 뿌리고 있다. 아이에게 ‘흙을 안 흘리며 해야지’라고 하니,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다. ‘어떻게?’ 말문이 막힌다. 맞다. 흙을 만지며, 옮기는데 어떻게 안 흘리겠는가. 그래, 마음껏 해라. 새롭게 옮겨진 라벤더와 학교에서 가져와 옮겨 심은 다육식물을 보며 아이가 "아, 예쁘다~" 탄성을 지른다. 오동통한 아이의 볼살이 예쁘게 일렁인다. 웃음이 내 마음에도 번진다. 흙바닥도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다.
소로는 다르게 생각했다. 아름다움에 익숙한 사람은 쓰레기장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아내지만, 흠잡기 선수는 낙원에서도 흠을 찾아낸다.
- 에릭 와이너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어크로스, 2021)
아이는 정말로, 쓰레기장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아낸다. 자신이 그린 돼지 그림에서도, 난장판인 집에서도, 흙바닥 위에서도. 아이 특유의 '감성 근육'이 살아있다. 아직 퇴화하지 않은 아이의 근육이다. 반면 나는 아주 부지런히 감성 근육을 억지로 기르지 않으면 안 된다. 아니면 자동으로 일었던 ‘귀찮다는 마음’ 같은 것이 점점 커져, '흠잡기 선수'가 되기 십상일 것이다(선물을 받고도 교육부를 원망했던 나를 보라!).
아름다움을 찾고, 만들어내고, 향유하기 위해서는 훈련과 경험이 필요하다. 이렇게 글을 쓰며 다짐하고, 베란다에 나가 꽃향기도 맡는다. 물론 아이가 만든 흙바닥도 부지런히 쓸어야 한다. 투덜대지 말아야지.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 아름다움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더 그렇다.
에릭 와이너의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콘셉트가 독특하다. 열차를 타고, 각 철학자가 실제 살았던 물리적 공간을 찾아간다. 새벽에서 황혼으로 가는 이 열차에 동행하면 총 14명의 철학자를 만날 수 있다. 저자는 매우 쉽고 재미있게 철학자들의 사상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술술 읽힌다. 순한 버전의 ‘빌 브라이슨’ 같다. 유쾌한 문장 속에 통찰과 매력이 흘러넘친다. 나는 주로 누워서 책을 보는데, 이 책은 읽다 보면 자꾸 앉게 된다. 줄을 긋고 메모할 부분이 너무 많아서다. 이렇게 계속 긋고 인덱스를 붙이다가는 모든 페이지에 다 붙을 텐데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은 부분이 많다.
요즘 지인들을 만나면 주식이나 부동산 이야기를 많이 한다. 나 역시 관심도 있고 기웃하기도 하고 실제로 아주 소액으로 이것저것 해보기도 한다(결과적으로는 안 하는 게 나았다). 그중에는 아주 열심히 해서 지금은 자산가가 된 사람도 있다. 부럽기도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계속 의문이 들었다. 지금 삶이 만족스럽고, 어느 정도 자산이 있다면 그 이상이 내게 어떤 의미일까. 누군가에 비한다면 턱없이 적은 자산이겠지만, 그렇다고 내게 충분히 있지 않은 것은 아니지 않나. 얼마나 더 필요할까? 그걸 얻기 위해 (물론 한다고 될까 싶기는 하다) 아등대는 시간 동안 정작 내 삶의 중요한 것 - 예를 들면 아이와의 수다, 책을 읽고 생각하는 오후, 노을을 보며 감탄하는 저녁 같은 것들- 시간을 잃진 않을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 말이다(물론 자산가인 지인은 이런 생각 따위는 하지도 않을 것이고, 나의 자산은 ‘충분하다’의 'ㅊ'에도 못 미친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무튼, 그런 생각 중에 이런 문장이 내게 왔다.
난 충분히 좋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다고 봐요. 이런 것들이 삶에서 더 중요한 일에 시간을 쏟을 수 있게 해 줘요.
- 에릭 와이너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어크로스, 2021)
시간과 관심은 한정적이고, 삶은 유한하다. 나만의 충분함에 대한 기준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소설 『모모』 속 인물처럼, 자신도 모르게 시간 도둑에게 중요한 걸 빼앗길 수 있다. 자본주의의 사슬은 그만큼 촘촘하고 강력하다. 많이 쌓고, 많이 벌어서 잘 노는 게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충분히 좋은 일을 찾아 잘 놀고, 재미있게 열심히 일해야 한다.
나는 다시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를 펼치고, 에피쿠로스가 한 말에 감응한다.
나의 지금은 '특별하지 않다. 충분히 좋다. 다른 말로, 완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