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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작 Oct 22. 2023

순간과 영원

사이몬 스톤 감독 <더 디그> (2021)

  <더 디그>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제2차 세계대전을 앞둔 영국. 남편을 잃고 혼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이디스는 학위가 없는 고고학자 배질 브라운을 고용한다. 그녀의 사유지에 있는 둔덕을 파헤치기 위해서였다. 얼마 뒤 그곳에는 거대한 유물이 묻혀 있음이 밝혀지고, 대영 박물관을 비롯해 전 국민적인 관심을 받게 된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단지 '고고학으로 밝힌 위대한 유물의 발견 신화'가 아니다. 이 영화의 주제는 따로 있다. '찰나와 영원성'이 그것이다. 예외 없이 유한한 시간(찰나)을 부여받은 인간이 어떻게 '영원성'을 발견해 가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유물이 나오는 땅의 주인이자, 이 유물의 발견을 주도한 이디스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1930년대 의학으로는 그녀의 병을 고칠 수 없다. 게다가 지금은 제2차 세계대전 전쟁 직전이라 모든 것이 불안정하다. 

자신의 몸도, 외부적인 상황도 나빠지고 있는 ‘현재’에 서서, 그녀는 아주 오래전 '과거' 시간을 파헤친다. 그녀 앞에는 홀로 남겨질 어린 아들의 '미래'가 있다. 나날이 얄팍하게 쇠약해져만 가는 그녀의 ‘현재’ 위로, 그렇게 ‘과거’, ‘미래’가 바스라 질 듯 포개어진다. 그녀는 버겁다. 슬프다. 외롭다. 무섭다. 무엇보다 막막하다. 그러나 이 감정을 나눌 사람이 없다. 


<더 디그> 포스터


  테드 창의 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에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 개념이 동시에 존재하는 외계인이 나온다. 주인공은 외계인과 소통하기 위해 그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다 그들의 언어를 배우게 되고, 그들의 사고방식과 시간 개념도 익히게 된다. 그 결과 그녀의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 선형으로 흐르지 않고, 동시에 존재하게 된다. 그래서 <네 인생의 이야기> 주인공은 이별을 알면서도 사랑을 하고, 아이의 죽음을 알면서도 아이를 낳고 사랑하며 기른다. 그녀는 말한다. 이 모든 걸 알지만, 나는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고 '지금'을 살아간다고.      

  시간이 포개어진다는 것. 그것은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즉, 이 일의 결말을 뚜렷이 안다는 뜻이다. 이는 사람에게 어떤 의미일까.      

  이디스의 사유지에서 발견된 ‘과거’는 굳건하고 위대하다. 그러나 자신의 ‘현재’는 바닷물에 쓸려 내려가는 모래성처럼 위태롭다. 아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한없이 불안한 이디스는 흐느끼며 말한다. 


이디스 프리티(랄프 파인즈) : 우리는 죽어요. 결국에는 죽고 부패하죠. 계속 살아갈 수 없어요. 
배질 브라운(캐리 멀리건) : 제 생각은 다른데요. 인간이 최초의 손자국을 동굴 벽에 남긴 순간부터 우린 끊임없이 이어지는 무언가의 일부가 됐어요. 그러니 정말로 죽는 게 아니죠.  
-사이몬 스톤 감독 <더 디그> (2021)      


  그렇다. 우리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무언가의 일부가 되는 순간, 사라지지 않는다. 이어진다. 이디스는 자신 옆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사랑으로 이어진 아들이 있었다.   

  어린 아들은 이디스를 발굴 현장으로 데려간다. 거대한 배 모양을 한 과거의 공간에 엄마를 눕힌다. 그리고 이곳을 우주선이라고 한다. 아들과 엄마는 그곳에 누워 먼 미래의 공간과 시간을 함께 본다. 아들은 엄마에게 놀랍고도 다정한 상상이야기를 들려준다. 


"왕비가 모든 걸 남겨두고 우주로 긴 항해를 해야 해요. 그래서 걱정해요. 여기에 남겨진 사람들이 못 살까 봐요. 그러나 우주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서 500년이 아주 빠르게 흘러요. 어느 날 지구를 보니 아들은 우주 비행사가 되어있어요. 왕비는 아들이 첫 비행을 하는 날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어요."   
-사이몬 스톤 감독 <더 디그> (2021)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시간과 공간이 포개어지는 찰나의 순간. 그 순간을 영원이라 부르지 않으면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렇게 이디스의 순간은 영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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