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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수정 Apr 13. 2024

기술과 감각사이


어느날 나는 컨텐츠 부서의 담당자를 급히 호출했다.


“담당자님, 000 병원 미팅 언제 잡았죠?”

“지난번 미팅 후 이번달은 아직 계획이 없는데요?”

“음, 뭔가 지금 느낌이 좀 그래요, 빨리 시간 잡아주세요

“왜요? 어떤 아젠다 때문이시죠?”

“특별히 아젠다가 있다기보다.. 그냥... 지금 들어가야 할 때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 그래요.”

..%#$%@


가끔 이런 근거없는 쎄함은 어김없이 기가막히게 상황과 맞아 떨어진다. 객관적 설득과 이해가 중요하다고 매번 말하는 나이지만 때때로 이렇게 감으로 결정하고, 앞뒤없이 요구한다.  당황스러운것은 시간이 갈수록 이런 상황이  많아지고, 타이밍까지 정확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예상에 없던 미팅을 잡거나 잊혀졌던 어떤 일을 갑자기 이유없이 시작하는  등이다. 대표실의 문을 닫아놓고 있어도 문 밖의 상황이나 직원들 속내가  느껴져서 괴로울 때도 있다. 이런 나를 보고 예전에 한 직원이 이렇게 말했다. 


"대표님은 촉이 엄청 좋으세요."


심각한 J성향인 나는 즉흥하고는 거리가 다고 생각했다. 논리와 근거로 판단하고, 계획대로 움직여야 편한 인간이다. 헌데 어느 날부터 '감'으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심지어 나를  아는 가족들은 나한테 뼈속까지 감각적인 사람이라고까지 했다. 이런 '감'의 영역에는 계획에는 없었으나 갑자기 불현듯 떠오르는 어떤 주제나 때(시기)를 포함해서 이유를 설명하긴 어렵지만 이거여야만 할 것 같은 알 수 없는 의사결정도 포함이 된다. 하지만 회사가 더 커지고, 회사에서의 내 의존도를 줄이려면 내 업무나 나의 역할 등이 복제되어 직원이나 시스템등으로 대체되어야 하는데, 점점 더 이런 '감'의 영역이 커지게 되니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요즘 시대에 평범한 사람이 기술(기법)로서 무언가 가치를 발현하는건 한계에 도달했다(챗 GPT를 개발하거나 세상에 없는 제품을 개발하는 정도나 되면 모를까)는 점은 이견이 없을 것 같다. 특히 AI 기술은 더 언급할 필요조차도 없을 정도로 발전해서 그 영역이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사람을 뽑을 때도 어떤 기술을 가지고 있는지 보다 솔루션이나 다양한 플랫폼을 활용할 줄 아는 감각을 더 본다. 대중화된 기술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기에(카피던 디자인이던 컨텐츠이던 마케팅이던 모두 플랫폼 기술 기반이다. 챗GPT 를 안쓰는 마케터가 누가 있나?) 앞서기 위해서는 감각을 끌어오지 않으면 안된다. 똑같은 일을 마주해도 '감'에 따라 한 끗이 달라지고, 그 한끗이 일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이렇게 '감'을 잘 활용해서 결과가 좋은 경우 흔하게는 센스있다, 감각있다라고 말한다. 같이 일하고 싶어한다. 실수를 해도 동기를 알기에 넘어가는 것이 아무렇지 않고, 그 다음의 기회가 주어진다.


심지어 감각은 때로는 기술을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한다. 30년된 문어잡이 아저씨는 특별한 기능의 통발없이도 순수 손맛, 감각으로만 문어를 잡는다고 했다, 문어가 어디에 많이 있을지를 감으로 안다는 거다. 

그럼 어떻게 이런 감각을 늘릴 수 있을까?  결국 일의 본질을 아는 것이 감각의 영역을 쓰이게 한다. 예를 들어 성전을 짓는 벽돌공의 경우 아무리 벽돌을 잘 자르는 기술을 가진 벽돌공이 있다 해도 내가 하는 이 일이 영혼을 살리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앞설 수 있을까? 기술에만 집중한 사람은 반듯한 벽돌이 최상의 목표이겠지만, 영혼을 살리는 벽돌공이라면 이 벽돌이 완성할 성전을 모습을 보기에 벽돌에 그림을 그려넣을수도 있을 것이다. 목표가 아예 달라진다. 감각을 발휘한 벽돌공이 작업한 성전은 벽화가 있을수도 있고, 체온이 느껴지는 따뜻한 벽돌이 씌일 수도 있는 노릇이다. 일의 본질을 바라보고, 문제해결적 관점으로 접근하는 이 사고의 차이가 감각의 영역을 깨워낼지를 결정한다. 


사회적 역할에서의 가치 피라미드를 보면 하위는 단순 기술의 가치를 제공하는 단계이고, 상위로 올라갈 수록 더 큰 프로젝트 관점으로 일을 바라보고 통솔하고 지휘하게 된다.(출처: 핑크펭귄)  j 성향인 내게 요즘 '감'의 영역이 자꾸 늘어난다는 것은 기술영역을 넘어 일에 대한 몰입과 경험과 의지가 누적되어 감으로 발현되는 피라미드 상위로 올라간 단계라 그러한 듯 하다. 결국 피라미드에서 상위로 올라가려면 결국 기술이 아닌 감각의 영역을 계속 확장해나갈 수밖에 없다. 효용가치 보다 의미가치가 더 높아진 요즘 가치 피라미드에서 위로 올라갈 수록 자신의 영향력과 인지도를 높이고 수입은 증가된다. '감'으로 의사결정 하는 순간이 많아진다면 체계적이지 않음에 자책하지 말자. 이미 피라미드에서 대체되기 어려운 상위의 단계일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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