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거절감에도 분노했던 이유
“제가 언제까지 이렇게 매출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야 하나요?”
내과 경영 10년차인 모원장의 말이다. 병원 매출 올려주는 컨설팅을 하는 나는 종종 원장들에게 매출에 대한 푸념을 듣는다. 그 때마다 잘도 넘겼는데 그 날은 쉽사리 넘겨지질 않았다. 몇 년전 이 병원을 처음 맡았을 때는 월매출 3천만원도 안되는 병원이었다. 그 때는 5천만원만 되도 소원이 없겠다더니 최근 평균 7-8천을 유지하는 지금 6천만원 중반대가 나오니 심하게 불만을 토로한다. 월말 결산보고를 들어갔을 때 매출 폭이 생기는게 스트레스라며 눈도 마주치지 않고 하던 말이다. 만족할 줄 모르는 그가 미워지지 시작했다. 억울함과 원망감이 빠르게 올라왔다. 물에 빠진 놈 건져 놓으니까 내 봇짐 내라 한다는 게 이런 거구나! 그동안 말없이 했던 고생들이 떠올랐다. ‘감사할 줄 모르면 매출은 더이상 오르지 않을거에요!’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억지로 눌러 삼켰다.
며칠 뒤 컨설팅이 진행 중인 다른 병원에 방문했다. 보통 컨설팅 초기에는 직원들을 동기부여하기 위해 그들이 원하는 복지를 도입하거나 개선시키기도 한다. 병원은 진료일이 주 6일이기 때문에 대부분 병원 직원들은 주 6일을 근무한다. 최근엔 병원도 주 5일제가 늘어나긴 했으나 이 병원은 아직도 주 6일제를 고수하고 있었다. 이 직원들의 최우선 바램은 단 하나였다. “우리도 주 5일하면 더는 바랄게 없어요”. 나는 힘들어하는 직원들을 생각하며, 원장을 6개월동안 어렵게 설득해 주 5일제로 바꾸는데 성공했다. 그 후 몇 달이나 지났을까? 그 날 스텝 미팅을 하러 들어갔을 때 실장이 굳은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주 6일 할때가 좋았어요, 지금 너무 힘들어요”
그 무렵부터 였던 것 같다. 슬럼프가 시작된 것이. 사람들의 만족하지 못하는 끝없는 욕구가 아니 욕심이 지겨워졌다. 배가 터질때까지 먹어도 배고파하는 돼지같아 보였다. 마음의 상심이 회복되지 않았고, 일이 손에 잡히지가 않았다. 갑자기 집중력, 기억력이 저하되고, 심한 무기력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냥저냥 하루 하루를 때워 나갔다.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진채 기계처럼 회사를 드나든지 얼마나 되었을까? 나를 유독 잘 따르던 직원이 내게 조심히 말을 건넨다. “대표님, 좀더 여유를 가지시면 안되요? 대표님이 웃으면 정말 좋겠어요”
잘 굴러가던 일상의 궤도에서 나를 이탈하게 만든 이유가 다른 사람들의 욕심 때문이라고 원망하며, 비난했다. 그들의 탓으로 돌렸다. 그런데 그 날 부끄럽게도 내 안의 더 큰 욕심을 봤다. 좋은 성과를 내야 한다는 욕심, 내가 이만큼 했으니 인정받아야 한다는 욕심, 사람들이 좋은 평가만을 해야 한다는 욕심들이 흉하게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는 것을. 솔직히 나는 두려웠던 거다. 성과가 없으면 계약을 그만 둘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직원들을 이끌지 못하면 안된다는 두려움,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그 두려움 때문에 무리한 욕심을 부린다. 욕심은 분노가 되고, 분노는 독이 되어 독 품은 전갈에 물린 것처럼 사고를 마비시킨다.
사람들은 잘 차려진 집밥을 보면 '식당밥' 같다고 칭찬하고, 맛있는 식당밥은 '집밥'같다고 말한다. 손에 없는 걸 바라는게 본능일까. 불만족은 특별히 악의 없는 사람들의 삶과 입에도 배어있다. 점심시간 일상 수다에도 불만 이야기를 뺀다면 할 수 있는 대화가 몇 개나 될까. 타인의 불만족에 두려워하지 말자. 아니 내가 조절할 수 없는 것에 반응하지 말자. 타인의 불만을 인정하면 실패를 허락하는게 될까봐 강박적으로 그 감정을 거부했다. 그냥 잠깐만 멈춰 볼 것을. 원장과 직원들이 불만을 말해도 ‘그래, 그럴 수 있지’하며, 잠깐 멈춰 호흡하면 될 것을. 잠시 멈춰 나를 느낄 시간도 없이 무작정 감정에 휩싸여 너무 내몰아치고 있었다. 나를 가장 많이 이해하고 허용해줘야 하는건 나 자신인데, 그동안 내가 너무 힘들었을것 같다. 등이 굳고, 잠을 못자고, 위가 아파 먹지를 못하고, 힘들어도 쉬지 못할 때 알아차릴껄. 너무 외면했다. 이 정도는 혹사시켜야 원하는 걸 얻어낸다고 착각했다. 그 혹사 때문에 작은 거절감에도 그렇게 분노했나보다.
앞으로도 나는 더 잘하려고 할 것이고, 좋은 것을 원하고 바랄 것이다. 하지만 모두를 만족시키겠다는 아집, 작은 실패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그 집착은 내려놓겠다. ‘수정아 괜찮아. 클라이언트한테 짤리면 어때? 안하면 좀 어때? 까짓것 상처 좀 받으면 어때? 잘 안되면 좀 어때?’라고 받아들이면 아무렇지도 않게 만족이 되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웠다. 하지 못했고, 내게 허용해주지 못했다. 불만이 가진 다른 면을 본다. 수용하는 순간 결국 만족이라는 이름으로 남는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