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니 몸이 굳는다
나는 척추측만증이 있다. 그것도 척추가 우측으로 20도가 휜 심각한 상태이다. 스물살때 남자친구가 내 뒷모습을 보고 등이 비뚤어졌다고 말했다. 그 후로 병원을 여러 군데 다녀봤지만, 물리치료, 도수치료, 운동치료 등만 권유할 뿐 원인을 속 시원히 알려주는 곳은 없었다.
나는 오래 앉아있는 습관이 있다. 한번 앉으면 왠만해서는 움직이지를 않아서 화장실만 안가면 8시간이고 10시간이고 버텨낸다. 장시간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어도 힘들지 않은 것은 오래 앉아있는 습관 덕이다. 이런 습관 때문에 측만증이 생기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결국 언젠가부터 무리하거나 오래 앉아있으면 어김없이 등에서 통증이 생겼다. 나중엔 통증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와 목덜미를 건드렸고, 가끔은 하루 종일 누워있어야 할만큼 머리를 쿡쿡 쑤셨다. 그 때부터 통증을 없애기 위해 갖은 방법을 다 썼다. 재활치료, 요가, 운동교정, 물리치료, 도수치료 등등. 온갖 곳을 떠돌다가 재활치료로 유명한 필라테스 선생님을 만나 1대1로 3년간 운동하면서 많이 개선되어 한동안은 측만증을 잊고 살았다.
그런데 요즘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다시 등이 아프기 시작했다. 최근에 운동을 하면서 일할때는 괜찮았던 몸이 글을 쓰면서 굳어지기 시작하고,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원래 오래 앉아 있으면 관절이 접힌채 고정되고, 근육들은 그 자세를 유지하려고 긴장하게 된다. 그래서 오래 앉아있으면 만성통증, 척추질환 등이 유발되고, 대사기능 저하로 질병이 발생할 확률이 올라간다. 하지만 가끔씩 스트레칭을 하며 휴식하는 정도로 이런 증상은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 오래 앉아있다고 해서 모두가 병에 걸리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나는 중간 중간 스트레칭은 물론 운동도 하고 휴식을 취해도 나아지지 않았다. 과거에 측만증으로 고생했던 나는 최근에 다시 생긴 이런 통증에 예민해질 수 밖에 없었다. 일하면서는 오래 앉아있어도 괜찮은데, 오래 앉아 글을 쓰고 나면 아픈 이상한 현상때문에 한참을 고민했다.
하지만 통증의 원인은 전혀 엉뚱한 곳에서 발견됐다. 글을 쓴다는 것은 다른 누구의 도움없이 오롯이 혼자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 그 원인이었다. 음식을 할때는 내가 국을 맛없게 끓여내도 다른 요리가 맛있으면 그 밥상은 만회가 된다. 회사에선 팀웍을 발휘하면 내 머리에 없던 아이디어가 나오고, 팀원과 챕터를 나눠 작업하면 최종보고서를 완성해 나갈 수가 있다. 하다못해 디자인도 컨셉이나 기획의 도움을 받는다. 프로젝트는 나외에 다른 사람과 같이 합을 맞추기 때문에 혼자는 불가능했던 1+1=3이라는 시너지가 만들어진다.
그렇지만 글을 쓸때는 온전히 혼자가 된다. 혼자 시작해서 혼자 마침표를 찍는다. 글감을 찾고, 글의 구조를 짜고, 마지막 문장을 쓰기까지 온전히 나 혼자만의 몫이다. 나는 다양한 역량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 각자가 잘하는 일을 분배하고, 조정해서 합치된 결과를 이끌어내는 경영을 한다. 이런 내게 혼자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은 오랜만이었다. 팀원이 생긴 이후부터 타인에게 한치의 도움도 받지 않고 결과물을 내 본적이 없는 것 같다. 항상 주변에 내 부족함을 채워주는 누군가가 있었고, 서로 볼트와 너트처럼 맞물려 같이 움직여나갔다. 내가 채우지 못할땐 어김없이 다른 누군가가 메꾸어주었고, 미흡한 부분은 누군가와 함께 완성해나갔다. 이런 패턴에 익숙해진 내게 글쓰기는 홀로서기와 같았다.
게다가 글쓰기는 나를 있는 그대로 글 위에 올려놓는다.
글쓰기는 내 생각과 내 의도, 나의 모습이 문장 마다 묻어나온다. 글자 하나하나가 곧 나이다. 원래 개인의 나를 잘 드러내지 않는 나는 그래서 더욱더 힘들었나보다. 소설가 김영하가 세바시 강연에서 통계적으로 가장 수명이 짧은 직업으로 작가라고 말한 적이 있다. 글을 쓰고 나면 정말 수명 밧데리가 갑자기 줄어든 것 같이 느껴졌다. 마치 와이파이가 잡히지 않아 버퍼링 걸린 핸드폰 밧데리가 무서운 속도로 줄어들듯이.
측만증 증상이 좋아지고, 틈틈이 휴식을 취하는데도 글만 쓰면 몸이 아픈 이유가 이제야 보인다. 무대에 서는 주인공도 나이고, 무대연출까지 모두 내 몫이기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근육이 긴장해서 그렇다는 것을. 글을 쓴다는 것은 외로워지기로 결심하는 것이구나. 완전히 홀로서는 것이구나. 아직까지는 글을 쓰는 것이 힘들고, 시간이 걸리고, 어김없이 몸이 아프다. 하지만 내 글을 보는게 좋다. 그 안에서 읽히는 내 모습이 좋다. 글 속에 묻어나는 내 취향이, 숨어있는 내 생각이. 새로운 무대에 서면 매번 막막하지만 결국 그 공간을 채운 새로운 나를 만난다. 그래서 글은 결국 작가 그 자체를 만나게 해주는 것 같다. 다른 사람에 대해 관심이 없던 내가 글을 읽으면 그 사람이 궁금해지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까?
글쓰기가 더이상 내 몸을 긴장시키지 않을 즈음 나는 아마 측만증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글쓰는 것은 근력운동 같다. 조금씩 근육을 키워서 스쿼트 100개를 해내는 근력을 얻듯, 글쓰기를 통해 삶에 대한 근력을 연습한다. 나를 온전히 드러내고, 자유로와지는 연습, 이완하는 연습, 홀로 서는 연습, 굳은 살을 만들듯이 그렇게 조금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