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필요하면 연락할께요!
몇 주전에 있었던 일이다. 내가 컨설팅하는 A병원 원장의 주선으로 B병원 원장을 만났다. B원장은 A원장의 병원이 잘되는 것을 보고, 어느 컨설팅 회사와 함께하는지 소개해달라고 했다. 그렇게 만난 그 날 미팅은 계약서에 도장만 찍지 않았지 도장을 찍은 것과 다름없는 긍정적인 제안미팅이었다. B원장은 제안 내용도 마음에 들어하며 미팅 내내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약간 상기된 목소리로 ‘계약서는 언제 줄거냐, 바로 시작하자, 원래는 마케팅만 생각했는데 당신들 이야기들어보니 다른 것까지 맡기고 싶다’고 하며, 호들갑스러운 모습까지 보였다.
나는 돌아오자마자 구체적인 스케줄을 작성해서 날인된 계약서와 함께 발송했다. 하지만 바로 시작했으면 좋겠다며 급하게 서두르던 미팅과는 다르게 답신이 오질 않았다. 수신확인이 되었음을 확인한 뒤 며칠을 기다리다가 먼저 연락을 했다. 한두번 전화연결이 되지 않고 드디어 통화가 되던 순간이다. 확인해보셨는지 궁금해서 연락드렸다는 물음에 돌아온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지금 바빠서요, 제가 필요하면 연락할께요”
그렇게 몇 초밖에 안걸린 통화를 마치고 나는 한동안 어안이 벙벙했다. 미팅때 계약을 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표현했고, 컨설팅 시작일까지 협의를 마친 후라 일의 시작에 대해 솔직히 의심하지 않았다. 그 예상이 180도 바뀌어서 좀 당황한 점도 있다. 하지만 ‘거절이라는 결과’보다 더 당황했던 것은 ‘거절을 하는 내용’이였다. 영문도 모른채 지금은 필요가 없으니 필요가 생기면 연락을 하겠다는 말이 내 존재 전체를 부정당한 기분이었다. 거절이 문제는 아니다. 일을 하다보면 거절을 해야 할 일이 종종 생긴다. 그리고 거절을 해야 할때는 물론 해야 한다. 문제는 거절하는 태도이다.
상대방은 거절을 받더라도 존중받고 싶어한다. 그래서 거절의 이유가 궁금하다. 그 날 제안 미팅을 위해 우리는 병원의 당면한 상황을 진단하고, 분석을 해서 최선의 전략을 도출한 제안서를 작성했다. 며칠간의 시간을 들여 고민하고, 먼 거리를 오며 가며 대기하며, 하루를 다 할애했다. 그런 것에 대한 보상을 받겠다는 것이 아니다. 충분히 할 수 있다. 당연히 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태도에 대한 매너는 지켜야 하지 않을까. 가끔 미팅을 빌미로 고급 정보만 받고 입을 씻는 경우가 있어서 보통 자세한 전략까지는 제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엔 믿는 분 소개였고, 워낙 사전에 긍정적인 입장이어서 조금 더 준비한 것이 당혹감을 증폭시킨 내 잘못이라면 잘못이었다.
통화 후 잠시 격해진 감정이 제자리를 찾은 뒤 나는 되레 안도했다. 이런 사람과 일을 했으면 큰일났겠다, 애초에 시작을 안하게 된것이 다행이다라고. 그리고는 리더의 그릇과 병원 성장의 크기를 어림잡으며 병원의 부정적인 미래를 기원해 버렸다. 내가 받은 거절감을 당신이 불행할거라는 부정적 기운으로 반사시켜 버렸다. 나도 그도 안타까왔다. 거절을 당할때 무조건 상대가 이처럼 상실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상대가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게 하면서도 충분히 거절할 수 있다. 오히려 잘 거절하면 거절이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도 있다.
“제안해주신 내용은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미팅 때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이러저러한 이유로 이번에는 함께 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저도 아쉽게 생각합니다. 그래도 마케팅이 필요한 다른 의사들에게 추천해줄 의향은 있습니다”
이렇게 말했다면 어땠을까. 다음에 꼭 인연이 닿기를 고대하며, 뭘 하더라도 잘 할 분이라고 마음으로 진심 응원했을지도 모른다. 거절을 하더라도 사람을 거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상황, 그 제안, 그 요구를 허락하지 않을 뿐이다. 거절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면 그것이 사람을 성장시키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거절할 때 응원을 받을 것인가 저주를 받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