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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 자서전 May 13. 2019

행복한 시간

월요 에세이

 우리는 삼형제가 있습니다. 제가 장남입니다. 둘째는 나보다 8살이 적고 막내와는 10살 차이가 납니다. 우리 형제들은 닮았습니다. 얼굴만 닮은 게 아니라 이런 것도 똑같습니다. 3형제가 모두 남매를 낳았습니다. 처음 난 아이가 딸이고, 두 번째로 난 아이가 아들인 순서도 똑같습니다.

 

 막내 동생의 딸 이름은 정은이 입니다. 정은이는 서른이  넘은 나이에 치과의학전문대학원을 입학했습니다. 입학을 하고 1년 후에 아이를 낳았습니다. 학업과 육아를 해내는 조카가 대견합니다. 그런 딸을 둔 막내 동생이 할아버지로서 첫돌잔치를 마지 했습니다. 온 가족이 모여 축하를 보내주었습니다. 가족이 함께 모이는 시간은 즐겁습니다. 어느 집이라고 다르겠습니까.   형제들이 여기저기에 흩어져서 사니까 이런 날이 아니면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둘째는 서울에 살고, 막내는 춘천에 살며, 저는 평택에 삽니다. 나이가 모두 60이 넘은 형제들이지만, 아직까지 직장을 다니고 있으니까, 날짜를 맞춰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만나면 반갑고 기쁩니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마음이 즐겁습니다. 예전에는 형제들이 모두 서울에 살았습니다. 그때는 정기적으로 만났었습니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면 서로 의지가 됩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지금은 이런 날이 아니면 만나기가 힘듭니다. 이런 시간들이 있을 때, 가족들은 서로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해주는 시간이 됩니다. 시름도 걱정도 사라집니다.

 

  일본의 여류 영화감독 스나다 마미가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면서 찍은 다큐영화 <엔딩노트>가 있습니다. 아버지 스나다 도모아키는 죽음을 앞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장 후회되는 것이 손주들과 많이 놓아주지 못한 거야.”

 

 딸집에 온 김에 손주와 놀아주어야 겠습니다. 손주와 지하철을 타고 서점에 갑니다.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선물을 사주고 싶습니다. 나도 손주와 있으면 동심으로 돌아간 듯합니다.

  다른 일을 잊고 손주와 함께 하는 ‘질적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바빠도 짬을 내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질적 시간‘이라고 합니다. 아들딸을 키울 때는 ‘질적 시간’을 낼 수 없었습니다. 손주에게는 ‘질적 시간’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형제들과 헤어지고 딸집으로 갔습니다. 딸집은 불편할 수도 있는데, 사위가 잘 해주어서 마음이 놓입니다. 장인을 배려해주는 사위에게 고맙습니다. 여기서 하룻밤을 자고, 내일 할 일이 세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 손주와 놀아주기입니다. 손주가 좋아하는 게 있습니다. 지하철과 버스를 타는 걸 좋아합니다. 딸과 같이 살 때는 손주가 좋아하는 지하철을 타고 여행을 많이 다녔습니다. 딸은 아들 하나를 낳았습니다. 손자는 집에서 티비를 보거나 컴퓨터 게임, 핸드폰 게임을 합니다. 그래서 도서관에도 다녀보았습니다. 도서관에선 오래 있지를 않습니다. 어린이 놀이터, 어린이 실내놀이터에도 데리고 다녔습니다. 손자 혼자 있는 것을 보면 외로워 보여 조금이라도 같이 있어 주고 싶었습니다.

  

 성장을 할 때의 놀이는 애착, 배려, 신뢰, 애정, 사회적 유대감을 형성해 주는 수단이 되고 어른이 되어서는 사회성을 유지하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합니다.**

 손자와 시간을 보내면 즐겁습니다. 육아일기를 쓰기도 했었습니다. 글을 쓰려니 손주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같이 놀아주어야 합니다. 김한민 작가는 《그림여행을 권함》에서 여행을 하고 그림을 그리려면 깊이 관찰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육아일기를 쓰고 손주의 행동을 관찰하면서 손주와 더욱 친해졌고 아이의 행동을 이해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손주와 놀아주면서 은퇴 후에 생긴 우울증이 사라지는 걸 느꼈습니다.    

 

 두 번째, 서울에 온 김에 영화를 보고 가려고 합니다. 평택에도 극장이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이 없어서 보고 싶은 영화를 못 봅니다.

 보고 싶은 사람을 못 보면 마음이 힘들 듯이, 보고 싶은 영화를 못 보면 마음이 힘듭니다.   그래서 서울에 오면 보고 싶은 영화를 보고 갑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장르는 예술영화, 독립영화입니다. 서울은 예술영화 전용극장이 여러 곳에 있지만 평택은 한 곳도 없습니다. 인천에 ‘영화공간 주안‘, 서울 성북구의 ’아리랑시네센터‘는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예술극장입니다. 지자체에서 비어 있는 문화공간을 이용해 예술영화를 사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평택에서의 내가 원하는 문화생활은 어렵습니다.  
 백상경제연구원에서 발간하여 베스트셀러가 된 《퇴근길 인문학 수업》에서 ‘사람이 산다는 것은 문화를 즐기는 것’이라고 합니다. 문화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보고 싶은 영화는 <안도 타다오>입니다.  아침7시20분 롯데월드타워시네마에서 상영합니다. 딸집이 있는 화곡동에서 대중교통으로 1시간 20분이 걸립니다.

 

  영화를 보고 나니 기분이 좋아집니다. 내용도 만족해서 더 좋습니다.

 ‘안도 타다오’는 건축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세계적인 건축가가 되었습니다. 건축을 배우고 싶어서 무작정 유럽으로 갔습니다. 돈이 없어 건축물을 보고, 열 시간씩을 걸으면서 명상을 했습니다. 건축물을 보고 명상을 하는 시간이 쌓이고 쌓여 세계적으로 유명한 ‘콘크리트와 빛의 건축가’가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명상이 왜 중요한지를 느낀 영화였습니다. 영화를 보며 대사를 적는 습관이 있는데 심리학에서도 응용할 명대사가 눈에 뜨입니다.


  셋째, 다니고 싶은 교회를 갔습니다. 이 교회의 특징은 삼무(三無)입니다. 목사님이 없고, 교단이 없고, 교회건물이 없습니다. 오랜 역사가 있는 명문 고등학교 소강당을 빌려 예배드립니다. 설교는 내부에선 예배위원, 외부에선 초청을 합니다. 예배위원은 사회적으로 저명한 인사들이 많습니다.

 오늘은 열린 예배로 드렸습니다. 형제, 자매 3명이 나와 이런저런 말씀을 했습니다. 여기선 장로, 집사가 없습니다. 모두가 형제이고 자매입니다. 젊은 여성과 남성이 ‘가족’이란 주제로 설교단에 섰습니다.

 남자 설교자는 어머니가 아파서 돌아가시면서 “죄가 많아 병이 걸렸다.”라는 말이 듣기 싫어서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교회를 다니지 않았답니다. 어머니가 '많아 병이 걸렸다'고 가르친 교회가 싫었답니다. 그런데 이 교회를 알고부터 신앙생활을 다시 시작했다는 내용입니다. 세 명의 말씀이 모두 신선했습니다. 유기농 야채를 오독오독 씹는 느낌입니다.


  예배 후, 식사를 합니다. 식기는 각자 가지고와야 합니다. 부득이 식기 준비를 못한 사람은 오백 원을 내고 식기를 빌립니다.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지만 이런 분위기가 좋습니다. 식사 중에 말을 건네며 같이 식사를 하자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화를 나누어서 더 좋았습니다. 마음이 통하고 뜻이 통하면 처음 본 사람과의 대화도 즐겁습니다.


 좋은 상담자는 자신이 행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행복하지 못하고 내담자를 행복하게 할 수 없습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공자의 사상은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알려주기 위해선, 내가 먼저 행복해야 한다는 긍정심리학 행복원리와 같습니다.***

 주말에 행복지수가 올라갔습니다. 내가 행복하고, 우리 가정이 행복해야 되겠습니다.  


* 《공감의 시대》 209p (제러미 레프킨, 이경남 옮김, 민음사 2010)  

** 《공감의 시대》 116p (제러미 레프킨, 이경남 옮김, 민음사 2010)

*** 《긍정심리학》 44p (마틴 셀리그먼 지음, 김인자, 우문식 옮김, 물푸레,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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