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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 자서전 Jan 13. 2021

그때 그 선생님

“아름다운 시절 속에 머문 그대여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뤄져 가기를

힘겨워 한 날의 너를 지킬 수 없었던

아름다운 시절 속에 머문 그대여”

-보컬 그룹 ‘부활’ 이승철의 <네버앤딩 스토리Never Ending Story>      


 보컬 그룹 ‘부활’은 김태원이 만들고 지금까지도 많은 히트곡을 만들어냈다. 부활의 리더인 김태원이 텔레비전에 나와서 한 이야기가 불현듯 떠오른다.

  중학교 때 소풍을 갔다. 소풍을 가서 노래를 부르는데 남학생이 기타를 치니까 여학생들이 모두 그 학생을 에워쌌다.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남학생에게 모두 몰렸다. 이를 지켜보던 내가 “저건 기타 치는 게 아니야 장단 맞추는 거지.”라고 한마디 던졌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학생들이 내게 물었다.

 “너 기타 칠 줄 아니?”
  “내가 기타를 못 치면 이런 말을 하겠니?”

  김태원은 기타를 칠 줄 몰랐다. 그 후에 그는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지려고 기타연습을 열심히 했다. 그런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의 기타리스트가 되었다고 한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첫 번째 국어 시간이었다. 선생님이 과제를 내주셨다.

  “다음 시간까지 작문을 한 편씩 써내세요.”

  공부보다는 놀기를 좋아했던 나는 그만 숙제를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숙제를 안 한 이유는 그동안 작문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작문할 생각을 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원고지를 샀다. 몇 번 종이에 습작하였다. 하지만 글이 되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좋은 글을 읽으면 작문에 도움이 될 듯했다. 청소년 잡지 『학원』에 있는 글을 읽었다. 그 글을 모방하여 써보기로 했다. 글의 내용이며 감정을 모사模寫해보고자 했다. 그런데 남의 글을 모사든 모방이든 쉽지 않았다. 이 또한 기술이 있어야 하나보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글이 완성된 걸 보니 비슷하게 쓴 것이 아니라 거의 똑같아 보였다.


  아침 조회시간이었다.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 교장 선생님의 훈시가 있었다. 훈시가 끝나고 국어 선생님이 단상으로 올라오셨다. 

 “000학생이 작문을 잘 써서 여러분에게 읽어드릴게요.”

  선생님이 작문을 읽어 내려갔다. 어디선가 본 듯한 귀에 익은 내용이었다. 어떻게 귀에 익었을까? 생각하니 내가 써낸 작문이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두려웠다. ‘이 일을 어쩐다.’ 걱정이 앞섰다. 나의 창작품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글을 베껴서 낸 작품이 아닌가. 선생님이 알면 벌을 받을 일이 뻔해 보였다. 그렇다고 사실을 고백할 수도 없었다. 무사히 그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비로소 나의 성찰이 시작되었다.     

  글쓰기 공부를 열심히 해서 내 실력이 탄로 나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나는 결심했다. 선생님에게 실망하게 해드리고 싶지 않았다. 그 일이 있은 다음 나는 글쓰기 공부를 하고, 문예반 활동에도 참여했다. 문예반 선배들이 글쓰기 공부를 도와주기도 했다. 덕분에 글쓰기가 실력이 조금씩 나아져 갔다.      


  글쓰기 실력이 늘어나니 친구들이 나에게 부탁하는 일들이 더러 있었다. 연애편지의 대필이었다. 지금과 같은 이메일이나 핸드폰과 같은 통신수단이 없던 시절이었고, 펜팔 등 연애편지가 많았다. 여학생들에게 연애편지를 잘 써서 보내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나에게 연애편지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그 대가로 나의 숙제나 공부를 도와주기도 했다. 때론 뇌물 공세도 없지 않았다. 어떤 친구는 ‘여학생과 잘 되면 여자 친구를 소개해 주겠다.’라고 까지 했다. 나는 글쓰기를 배워 ‘연애편지 전문 작가’가 된 셈이었다. 


후일에 알게 된 일이었지만 국어 선생님은 내가 다른 작품을 베껴서 낸 것을 이미 눈치채고 계셨다. 그런데 선생님은 끝까지 나에게 그 말을 하시지 않았다. 나는 더 글을 잘 쓰고 싶어 글공부를 계속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글쓰기를 놓아버렸다. 주간엔 직장, 야간에 대학교를 다니느라 너무 바빴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취업 후에도 글쓰기를 계속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돌이켜 보면 다른 글을 베껴서 숙제를 낸 나의 잘못을 꾸짖지 않고 모른 척 넘어가 주신 선생님 때문에 글을 배웠고, 지금도 글쓰기를 하고 있는지 모른다.   

   

  김소연 시인은 자신의 시집, 《마음 사전》에 실린 <거짓말>이란 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의 간절한 소망들은 결국, 거짓말의 그릇에 담긴 간절한 진실과 같다.”

 거짓말이 간절한 진실을 담을 수 있다. 김태원의 거짓말은 진실로 바뀌었는데, 나의 거짓말은 아직 진실을 담지 못했다. 지금도 그때 그 국어 선생님에게 한 거짓말을 간절한 진실로 만들기 위해 글을 쓰고 싶다. 


 이승철의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라는 노래를 들으며 그때 그 선생님을 떠올린다.  

    

 “천 번이고 다시 태어난 데도 그런 사람 또 없을 테죠 

 슬픈 내 삶을 따뜻하게 해준 참 고마운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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