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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 자서전 Feb 26. 2022

며느리에게 보내는 편지

외상후스트레스장애 PTSD

    지혜씨가 결혼한 지가 벌써 십 년이 넘어 이십 고개를 넘어가려 합니다. 시집을 온 지 얼마 안 되어 고국을 떠나 미국에서 생활하니 자주 볼 수 없습니다. 영상통화를 하지만 가끔 만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나와 아내가 딸과 아들을 키웠지만, 양육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습니다. 그렇게 된 연유는 나의 어렸을 때 가정생활에 있습니다. 내가 초등학교 때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해서 2달 가까이 있었습니다. 트럭에 매달리다 떨어졌는데 죽지 않은 게 다행입니다. 이때 사고로 어머니는 충격을 받으셨고, 나도 외상후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를 겪었지만, 당시에는 그런 걸 몰랐습니다. 나는 그 외에도 몇 번의 PTSD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625 피난길에 트럭이 눈길에 넘어지면서 논에 떨어졌는데, 나는 논두렁에 떨어져 무사했습니다. 피난 중에 진짜 무서웠던 일은 따로 있었습니다. 추운 날 햇볕 쬐는 양지바른 곳에 앉아 있는데, 흑인 병사가 술을 먹고 친구랑 같이 지나가다가 뭐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나에게 권총을 겨누었습니다. 권총을 겨누는데 나는 꼼짝도 할 수 없이 떨면서 쳐다보았습니다. 당시 나이는 다섯 살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서울로 올라와서 초등학교에 다녔습니다. 1학년 겨울방학 때 눈이 온 날이었습니다. 당시는 눈이 많이 오면 길에서 썰매를 타고 놀았습니다. 자동차가 별로 다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같이 놀던 이종사촌 누나가 “우리 아버지다!” 하면서 제무시(GMC의 일본 발음, 당시는 화물차를 그렇게 불렀음)로 뛰어갔습니다. 나도 뛰어갔습니다. 누나가 에 올라타서 나도 올라타려고 하는 순간 제무시가 출발했습니다. 그래서 달리는 제무시에 매달리다가 떨어졌습니다. 서울 백병원에 2달간 입원을 했었습니다. 이때도 PTSD가 생겼습니다. 어머니는 그 일로 충격을 받아 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모범학생으로 반장을 했었는데 병원에서 퇴원한 뒤로는 학업에 흥미를 잃었습니다. 공부보다는 놀기를 좋아했고,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했습니다. 심리학을 공부하고 생각해보니 이게 불안장애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 뒤로도 계곡에서 놀다가 머리가 깨졌고, 수영장에서 수영하다가 빠져서 죽을 뻔했었습니다. 그 일로 물이 무서워 수영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특히 5학년 때 어머니가 눈앞에서 돌아가셨고, 어머니를 염하는 것부터 매장하는 것까지를 직접 지켜보았습니다. 《한결 쉬워진 정신장애진단》에는 “아동기에 부모를 사망으로 상실하는 경험은 때때로 성인기에 발병하는 우울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나의 심리적 불안으로 인해 아들을 따뜻하게 키우질 못했습니다. 아이에게 따뜻하게 공감해주는 말보다는 지적하고 질책을 한 것이 많이 있어 죄책감을 느낍니다. 내가 불안했기에 나의 심리적 불안을 물려받은 아들도 불안증세가 조금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내가 우울증이 있는 것도 PTSD에 의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Sharon L, Johnson이 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PTSD는 우울증을 야기(惹起)한다.”라고 말합니다. 어려서부터 우울했지만, 그걸 모르고 살았지 않았나 추론합니다.      


 시아버지의 이런 과거를 알리는 게 부끄럽지만, 그런 아버지에게 양육 받은 아들을 이해하는 데 조금이라고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먼 나라에서 세 자녀와 함께 따뜻한 가정을 꾸리기 바랍니다. 자녀들에게 엄마는 가장 큰 힘입니다. 한국가족복지연구회 임종열 회장은 엄마를 모신(母神)이라 부릅니다.      

22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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