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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 자서전 Apr 21. 2022

여행의 즐거움

관광 중에 여행

위로나 아래로나 길이 보이지 않더라도 길은 

뻗어 그대를 기다리리라

이 우주가 하나의 길.

많은 길, 여행하는 영혼을 위한 길이라.

깨닫기 위해서 

  -월트, 휘트먼, <열릴 길을 위한 송가> 중에서  

     

  나는 여행하는 게 즐겁다. 얼마 전에 조경을 공부하는 사람들과 함께 제주도로 2박 3일 일정으로 관광을 갔다. 나는 관광은 좋아하지 않지만, 여행은 좋아한다.  관광과 여행은 다르다. 2016년 11월 24일에 내가 쓴 <관광과 여행의 차이점>이란 에세이의 한 부분을 인용해 본다. 

    

  “관광은 보는 것이고, 여행은 자신만의 무언가를 찾아내는 작업이다. ‘Tour’는 휴식 속에 충전을 하고. ‘Travel’은 힘듦 속에 충전을 한다. 관광은 목적지에 도달해야 시작되지만, 여행은 떠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관광은 돈이 있어야 하지만 여행은 돈이 없어도 가능하다. 관광은 어디를 가더라도 몸에 배인 습관 그대로 데리고 다니지만, 여행은 가는 곳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습관을 털어내야 한다. 관광은 가서 편하고 돌아와서 몸살 나지만, 여행은 가서 힘들고 돌아와서 힘이 난다. 관광은 관광지의 배경지식을 얻는 것을 주목표로 한다. 사람을 보고 만나기보다는 풍경과 그 곳에 문화에 중점을 둔다. 여행은 가이드를 별로 필요로 하지 않고, 그 속의 문화를 현실적으로 체험하고 느끼며 마음 깊숙이 즐길 수 있다. 상당히 많은 정신력을 필요로 한다. 몸과 마음이 상대적으로 힘들지만 그만큼 얻는 것도 많다.”     


  고등학생 때는 친구랑 둘이서 무전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완행열차를 타고 다녔다. 낮에는 돌아다니고, 밤에는 기차를 탔다. 돈이 없어 입석을 했다. 서서 졸았다. 잠이 들면 다리가 풀려 깨고 다시 잠을 자기를 반복했다. 그때는 고생인 줄도 몰랐다. 그냥 좋았다.       


  나는 제주도 관광 속에서 여행을 꿈꿨다. 그래서 일정 중에 하루는 나만의 여행을 했다. 일행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어디 가느냐고 물었다. “가볼 때가 있다.”고 말했다. 그들에게 여행을 간다고 하면 이해를 시키기 어려울 것 같았다. 관광을 따라가면 맛있는 걸 먹을 수 있고,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지만, 골목길을 걸으며 시장에서 국수를 먹어도 나만의 여행이 좋기 때문이다. 

  리조트에서 나와 시내버스를 탔다. 제주도에서 시내버스를 타기는 처음이다. 2014년 가을에 대중교통만으로 전국을 여행한 일이 있었다. 제주도에서도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고 싶었다. 제주도의 시내버스도 여느 곳의 버스와 같지만 느낌은 다르다. 제주도에 몇 번을 왔지만, 매번 렌터카를 이용했다. 시내버스를 타보는 건 처음이다. 시내버스를 타면 승객들의 모습이 보인다. 제주 지리에 어두운 내가 어디서 내릴지 몰라 물어보면 친절하게 알려주는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정겹다. 이런 마음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나는 포근함을 느낀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은 도서관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도서관을 찾으려니까 도서관이 너무 멀다. 도서관 위치를 아주머니들은 잘 모르시는 것 같다.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인근에 있는 서귀포전통시장을 찾았다. 

  내가 여행을 할 때 가장 즐겨 찾는 곳이 전통시장이다. 전통시장에는 사람냄새가 난다. 민초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역동성을 볼 수 있다. 2014년에 자전거로 전국을 혼자 여행을 했다. 그때 찾았던 순천의 전통시장은 잊을 수가 없다. 전통시장에 사람들이 모여 앉아 오후의 피로를 달래는 낭만의 술집들이 보였다. 나도 거기에 앉았다. 이 집은 전煎집인데 명태 대가리로 만든 전이 어디에서도 먹어보지 못한 일품이었다. 그 명태전을 생각하니 입에 침이 고인다.       

  서귀포 전통시장에는 해산물이 많다. 해산물을 맛보고 싶었다. 한 가게에 들어가니 코로나 때문에 포장만 가능하다고 한다. 시장바닥에서 먹고 싶었다. 아쉽지만 발길을 돌렸다. 전통시장을 들러보고 도서관으로 가려다가 인근 카페에서 책을 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페를 찾으니 카페는 안 보이고 다방이라고 쓴 간판만 두 군데가 있다. 


  다방엘 들어가니 시간여행을 온 것 같다. 옛날 다방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마담도 있고 레이지도 있는 그 모습 그대로다. 조금 어색했다.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오늘 읽을 책은 정신과 의사 송형석이 쓴 《나라는 이상한 나라》이다. 다방에서 노트북을 꺼내고 책을 읽는 사람은 아마 처음일 것 같다. 나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이 다방은 나이 먹은 남자들의 휴게소인 것 같이 나이든 남자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책을 조금 읽다가 시장으로 다시 들어갔다. 물건을 사고 서귀포 시내를 거닐었다. 시내 보도블록이 모두 제주도 하루방을 만드는 자연석으로 되어 있다. 거리도 깨끗했다. 거리에 그 흔한 쓰레기 하나 보이지 않았다. 시민들은 친절했다. 곳곳에 ‘제2공항 건설을 반대’한다는 표어가 보이는 것 이외에는 대한민국의 어느 도시보다 잘 정비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성 아우그스티누스는 “세상은 책이다. 여행하지 않는 사람은 기껏해야 한 줄의 글을 읽는 사람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누군가는 “여행은 걷는 독서이고,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다.”라고 말했다. 관광 중에서 나만의 독서 여행을 했다. 나의 여행은 끝나지 않고 계속되기를 바란다.  

  ‘나짐 히크메트’의 <진정한 여행>에서 한 대목이 떠오른 건 여행의 즐거움 때문이었으리라.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쓰여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러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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